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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괜찮아요
전성태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창비미션으로 만난 작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에는 참 많은 작가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글도 너무 좋은 것들이 많아서 놀라곤 한다. 이 작가님도 나는 첨 알았는데 나이도 있으시고 활동도 제법 하셨나보다.
단편이 8편 실려있는 이 책은 오랜만에 만나는 서정적인 글이었다.
전형적인 소설 같은 아름다운 글, 서정적인 그리움, 인간미, 아름다운 한국어, 정감 어린 방언, 순수한 이야기로 읽기가 편했다. 사회파와 비정한 현실을 담고 있는 글이 많아서 오랜만에 편안하고 따뜻하게 읽은 소설이다.
깡통... 한몽사전 편찬 작업을 하러 한국에 온 네르귀의 이야기다. 여기서 네르귀는 몽골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몽골에서는 태명을 지어주지 않는다거나, 첫눈이 오는 날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말에 한국 연구원들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신비로운 세계를 접한 양 관심을 가진다. 어릴 적 네르귀의 부모는 돈을 벌러 한국으로 왔고 네르귀는 몽골에 할아버지와 둘만 남았는데, 어느 날 여행자들이 네르귀에게 콜라 다섯 캔을 선물한다. 네르귀는 이 달고도 톡쏘는 맛에 매혹되지만,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 깡통에 두려움을 느끼고 네르귀에게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울란바토르에 콜라 캔을 버리고 오라고 시킨다.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바로 이 책에 반해 버렸다. 콜라에 대한 그 소년의 갈망과 외로움이 너무 아름다웠다.
숲으로...수아와 의붓어머니 금이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죽음은 수아로 하여금 금이의 생애를 돌아보게 만들고, 금이가 남모르게 겪어온 차별과 수모가 환상으로 분하여 수아를 찾아온다. 적절한 방언들과 환상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
가족 버스...어머니의 장례식을 따라가며 ‘올바른’ 애도의 방식에 의문을 던진다. 중년의 딸인 ‘나’는 어머니에게 드릴 편지를 써서 낭독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부담을 느낀다. 게다가 고2 딸 지민은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팽목항에 들르고 싶다며 고집한다. 반대하던 ‘나’는 “무슨 대단한 걸 하겠다는 거 아니었”다며,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87~88면) 지민의 말에 수긍하고, 자신도 어머니에게 보낼 편지를 완성하게 된다.
합석... 글쓰기 교실에서 만난 중년, 동네에 있는 큰 상을 받은 작가 이야기와 그를 찾아온 이방인, 작가로 추정되는 분과의 만남
상봉 ...일흔 넘은 노인 장시곤은 천신만고 끝에 이산가족 상봉 장소인 금강산에 도착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헤어져서 얼굴조차 모르는 친동생을 만나기 위해서다. 상봉에는 그의 아들과 며느리도 동행해 장시곤을 보필한다. 우여곡절 이후 만남이 성사되었는데, 형제의 외모는 닮은 듯 안 닮은 듯 아리송하다. 이윽고 양가의 가족사가 이어지는… 장시곤은 상봉 장소에서 친동생을 찾을 수 있을까.
조용한 생활... 상실을 온전히 수용한 뒤에야 다음으로 갈 수 있다는 감각을 극명히 드러내는 빼어난 소설이다. 준모는 고등학생 시절을 지낸 탐매마을에 모교의 선생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어느 날, 주인집 허 노인이 여순사건 희생자의 학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해온다. 마을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여순사건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희생자를 찾을 수 있게 된 시점, 준모는 허 노인의 부탁을 이행하며 유일한 친구 양태민과 보낸 어두웠던 학창시절을 되짚는다. 그러면서 탐매마을에 “아직 끝내지 못한 자신의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닫는다. “기억으로 구부러진 골목을 매일같이 걸”으며 두갈래의 과거를 직면하는 사이에 흐드러졌던 홍매화는 져 내리고, 비로소 준모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된다(192면).
이웃... 왜 생각이 안 나지?
섬으로 가는 엉뚱한 여행 ...뭔가 이국적인 외모로 추정되는 조상의 뿌리를 찾아보려는 여행
여기는 괜찮아요... 인공 ‘나’는 대학교수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때, ‘나’는 비대면 강의를 하면서 섬에서 혼자 지내는 수강생 경진의 글쓰기 과제를 첨삭한다. 그러던 중 오래전 청산도에서 만났던 공무원 어르신 오동순씨는 기억에도 없는 책을 돌려달라며 연락해 온다. 두 사람은 ‘나’와 직접 만나본 바 없거나, 만났더라도 기억에서 잊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암울해 보이는 경진의 글로부터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오동순씨가 시간을 거슬러 터무니없는 부탁을 해온 사정을 헤아리고자 한다. ‘나’가 먼저 건네는 물음에, 두 사람은 비로소 “여기도 괜찮아요”, “아즉 여그는 청청한게”라며 화답한다(275면). 코로나 시국을 담은 이야기로 비정하지만은 않은 뭔가 따뜻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