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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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님의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20여년 전 ‘개밥바리기별’로 선생님의 북토크에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선생님의 시원시원한 강의가 인상깊었다. 아름다운 성장소설을 쓰셨던 대작가로 기억하는데...그 때가 언제인가... 이번에 다시 황석영 님의 글을 만나게 되어 감동 그 자체이다. ‘철도원 삼대’도 좋았지만 그 뒤로 5년만에 나온 이 책은 정말 대작이다. 작가 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작가 님은 글 속에서 늙지 않으셨다.


시작은 흰 점박이 개똥지빠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개똥지빠귀는 시베리아 아무르 강변에서부터 짝을 만나 새끼를 낳고 키우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조선반도로 무리와 함께 이동해 사활을 걸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다 팽나무 열매를 먹고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 뱃속의 씨앗은 자라나 팽나무로 자라난다. 팽나무가 자라면서 만나는 갯개미취, 하루살이, 개똥지빠귀 무리들의 이야기가 다시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다가... 세월이 흘러 조선 초기, 팽나무 밑 유랑민 가족 속에서 큰 아이라도 살리려던 어머니가 큰 스님에게 맡긴 아이는 승려‘몽각’이 되고 절과 다른 곳에서 수도하다 다시 찾아온 팽나무에게 ‘할매’라 칭한다. ‘몽각’의 이야기 속에는 마치 구운몽의 이야기같은 꿈같은 이야기도 나온다. 다큐멘터리같은 새와 자연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후 나무 속 할매와 교감하는 무당 당골네 ‘고창댁’, 그 곳이 싫어 뛰쳐나간 아들 배춘삼, 그들의 이웃이자 도움을 주던 도사공 유분도, 배춘삼의 아들이면서 동학군으로 산화한 배경순 등 그 어떤 역사대하소설보다 방대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600년의 세월을 살아간 팽나무 ‘할매’는 그 이후가 더 비극이다.  일제강점기 비행장 활주로가 옆에 생기며 자식같던 어린 팽나무(그래도 몇 백년 살았는데...)가 사격 표적으로 이용되다 베어지는 것을 보았고 해방 후 미군기지 확장과 새만금 간척사업 등으로 수백년 간 함께 했던 새와 조개, 생명들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갯벌 지키려는 활동가 배동수, 순교자의 후손이자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유 방지거 신부는 파괴된 땅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고 그들은 ‘할매’를 껴안으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생생하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미화가 없고 악인도 없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기적처럼 아름다운 해피엔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이 땅에 기억과 자연과 삶을 '할매'의 나이테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야기들을 보니 나무가 주인공일 수 밖에 없는 필연성과 작가님의 천재성을 다시금 느껴본다.


좋은 기회로 가제본으로 이 책을 먼저 만나 너무나 벅찬 감동을 느꼈다.

600여년 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환경친화적이면서 역사와 사회를 반영하고 아우르면서 이렇게 몰입감있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작가 님이 또 계실까?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작가 님은 아직 글 속에서 젊고 생생하게 살아있으신 것 같다. 이후의 작품이 더 기대된다!!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 뭔지, 정말 잘 산다는 것이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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