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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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책을 제법 사두었다. 제법 유명하더라고....

예전에 단편 등으로 만났고 파씨의 일기디디의 우산으로 친숙해졌다.

사실, 황정은 님의 책은 내게는 쉽지 않았다.

다들 문장이 좋다고 하고, 사람들이 칭송하였지만 해피엔딩 좋아하고 예쁜 이야기를 좋아하는 단순 아이같은 나에게는 사실 와닿지 않았고 그냥... 재미가 없//.

이 책은 그 해 작가들과 독자들이 최고의 책으로 하도 많이 뽑길래 진작에 사두었지만 이번에 클럽창비에 미션이 있어 이제야 읽게 되었다.

 

~~!

 

근데 재///.

연작 이야기 하나하나도 좋았고 연작으로 보게 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 이래서 황정은, 황정은... 하는가 보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순자씨가 많은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연년세세年年歲歲에 실린 소설 네편은 ‘1946년생 순자씨이순일과 그의 두 딸 한영진 한세진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며 이어진다. 어머니와 자매의 지난 삶과 현재의 일상을 통해 지금, 여기의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이 연작소설은 담백한데 날카롭고 섬세한데 쪼잔하지 않고 다정하지 않지만 불친절하지도 않은.... 아 이것인가...

 

작품 하나하나도 다 이해가 되고 무엇보다 잘 읽혔다. 내게 잘 읽히는 것는 재미있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황정은 님책 다시 읽기의 기회를 제공한 점.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예전에 못 봤던.. 놓쳤던 좋은 점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내게는 참 의미있는 읽기였다.

다시 황정은 님의 책을 찾아 읽겠다.

 

이 책은 길지 않은 네편의 연작소설 속에서 나를 둘러싼 가족, 사회, 국가, 싫든 좋든 엮일 수 밖에 없는 시대 흐름 속 비극과 참사, 슬픔, 고통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1946년새 순자씨로 불렸던 이순일의 삶은 항상 누군가를 돌보고 밥상을 차리면서 이어진다. 열심히 살아내도 성공 스토리로 짜잔 요약될 수 없는 인생을 보니 주변의 우리 어머니, 이웃들, 내가 보였다. 모두에게는 고통과 슬픔이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해가는 우리네 모습... 가족이라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끝내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용서받지 못 하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 일들도 있고 실망시키며 살아도 여전히 삶은 이어진다는 그런 이야기...

 

글을 읽을수록 작가 님의 글이 참 좋았다.

많은 사유를 거친 문장들. 깔끔하고 담백하지만 할 말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

참 좋은 글이다.

 

 

책 속으로

 

그래도 누나, 너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지는 마.

그런 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 pp.4344, 파묘중에서

 

한영진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순일에게 묻고 싶은 오랜 질문이.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두었는가. 한영진은 그러나 그걸 말할 자신이 없었다. 그 질문을 들은 이순일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을 대면할 용기가 없었다. 이순일은 이제 칠십대였고 일생 아이들을 돌보느라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다. 아마도 끝까지, 그걸 묻는 순간은 오지 않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그런 걸 물으면 엄마는 울지도 몰랐고 한영진은 엄마가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 p.83, 하고 싶은 말중에서

 

예쁜 가정용 우물이었지만 그것이 집 안에 생긴 뒤로 이순일은 더 나가지 못했다. 반찬거리를 사거나 고모 부부에게 점심 도시락을 전하러 시장에 갈 때 말고는 외출할 일이 없었다. 하루가 매우 번잡하면서도 고요하게 지나갔다. 얕은 그릇에 담긴 채 양달에 놓인 물처럼 시간이 증발해버렸다. 세제와 파 뿌리 냄새와 물 얼룩이 밴 우물가에서. 누가 오지 않는다. 궤짝에 담긴 조기 한뭇에 소금을 뿌리거나 하며 이순일은 생각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누가 안 와.

--- p.119, 무명중에서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 p.138, 무명중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 p.182, 다가오는 것들중에서

 

출판사

<줄거리>

파묘破墓는 이순일과 둘째 딸 한세진이 이순일의 외조부 묘를 없애기로 하고 마지막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강원도 철원군으로 떠나며 시작한다. 한세진은 그 묘가 엄마에게는 친정일 거라고 여기며 묵묵히 성묫길에 동행하지만 남편인 한중언이나 장녀인 한영진, 막내인 한만수에게는 이해받지 못한다. 딱 한번 남편이 동행한 적이 있었는데, 절도 올리지 않고 뒤돌아서서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잡소리를 하는 모양새가 야속해 이순일은 남편에게 더는 동행을 권하지 않았다. 이제는 일흔이 넘어 불편한 다리로 산을 오르내리기가 어려워 이순일은 결국 파묘하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순일이 신은 양쪽 등산화 밑창이 차례로 떨어져나간다. 그들은 흙바닥에 깊이 박혀버린 밑창 두개를 그대로 남겨두고 그곳을 떠난다.

 

하고 싶은 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온 이순일의 장녀 한영진의 이야기이다. 판매에 능한 한영진이 담당하는 매장은 늘 매출이 높았다. 한영진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이순일은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한영진을 기다렸다가 새 밥과 국을 지어 딸의 저녁밥을 준비했다. 한영진이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이순일이 두 가정의 살림을 돌보았고, 그 일의 대가로 한영진 부부는 늙은 부부의 생활비를 댔으며 엄마의 사물들과 엄마의 짜증을 감당한다. 어느날 한영진은 이순일에게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그 이야기를 갑작스레 듣게 되고 순간 한영진은 끔찍해한다. 한영진은 엄마가 자신에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하면서 자신도 엄마에게 왜 나를 당신의 밥상 앞에 붙들어두었는가묻고 싶었지만 그걸 말할 자신이 없다.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이순일은 어릴 적 순자로 불렸다. 무명無名에서 이순일은 열다섯살에 김포에서 만난 동무, 이웃, 동갑이자 동명同名인 순자를 떠올린다. 1960년 여름, 이순일은 외조부를 떠나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한 고모를 따라 김포로 가지만, 이순일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고모네 살림을 맡아 일곱 아이를 돌봐야 했다. 학교에도 못 가고 외출을 단속당해 집 안에 갇혀 답답해하는 이순일에게 옆집에 사는 순자가 물을 길으러 오며 둘은 친구가 된다. 이순일은 순자의 노트를 받아 순자의 고운 글씨를 베끼며 글을 배운다. 하지만 오랜 식모살이에 지친 이순일은 1967년 고모네에서 도망을 나온다. 순자의 소개로 남대문에 있는 병원에서 간호조무 일을 배우며 반년 정도 일하다 고모부의 손에 이끌려 다시 고모네로 돌아가게 되고 이순일은 순자를 원망하게 된다. 고모네로 돌아와 보름 만에 만난 순자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고 이순일은 그런 순자의 뺨을 때린다. 세월이 지나 한참을 잊고 살았던, ‘생각할수록 너무 선명해 꿈이고 거짓인 것 같은 광경들로 기억되는 순자를 떠올리며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고 이순일은 생각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한세진은다가오는 것들에서 북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닷새간 뉴욕에 머문다. 그곳에서 한세진은 노먼 카일리의 딸인 제이미를 만나게 된다. 노먼은 이순일의 이모인 윤부경의 아들로, 1987년 이순일과 윤부경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 윤부경의 옆에는 노먼 카일리가 이순일의 옆에는 한세진이 있었다. ‘현재와 미래로 쪼개진 두쪽 거울에 비친 상처럼꼭 닮은 이모와 조카가 만나는 장면을 그들은 함께 보았다. 제이미는 미국에서 안나라는 이름의 이민자로 살던 윤부경의 삶과 엄마가 양갈보, 양색시라는 말을 들으며 커야 했던 노먼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한세진은 그의 여자친구 하미영의 말들과 미아 한센뢰베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L’avenir(2016)의 장면을 겹쳐 떠올리고 병원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며 무사히 지나간 하루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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