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
이수연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사실 요즘 소소하게 예쁜 책들을 연속 보고 있어서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나는 그냥 그냥 이쁜 책인줄 알았다. 요즘 뻔한... 뻔하다는게 나쁜 말이 아니다. 나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위대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근데, 이 책을 그런 책이 아/니/었/다/
‘자살’, ‘죽음’... 이라는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고 그렇다고 미스테리 장르나 어둡기만 한 책이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 들었던 심리부검센터 라는 단어. 이 소설은 자살자와 자살시도 생존자, 그리고 자살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 등을 모두 섬세하게 다루며, 성숙한 애도와 극복의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 책을 집필한 이수연 작가 역시 자살시도 생존자로서 살기 위해 상담을 받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소개에 적혀 있다. 현재는 자살 예방 및 정신질환 인식 개선 강연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며, 그간의 경험과 상담 사례를 소설로 풀어냈다. “아파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짜 소설”이라는 독자평처럼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는 이수연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아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인 것이다. 진정성 있는 진짜 이야기, 상대를 위로하고 존중하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가 이 안에 있다.
보다가 너무 절절하고 가슴이 아픈 순간이 많았다.
먹먹했고 눈물도 나고...
읽고 나서 상담사인 언니에게 꼭 권하게도 되었다.
간절한 마음이 모여 생긴
최소한의 기적
죽은 사람의 마음을 탐구하는 심리부검센터장 지안. 그녀는 우연히 자신이 어릴 적 살던 골목에 위치한 공중전화에서 특별한 비밀을 발견한다. 바로 그 공중전화에서 간절히 듣고 싶었던 사람의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 아무나 아무 시간에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정말 소중했던 사람, 정말 간절한 사람만이, 그것도 고인이 세상을 떠난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기적이다. 그 사실을 발견한 지안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 그 시간만 되면 이 공중전화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심리부검 일에 이 공중전화를 활용하기로 한다. 고인의 마지막 마음을 듣는 행위가 남겨진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연들이 모이는 심리부검센터에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은 연아, 자신 때문에 남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하는 나은, 시시때때로 자해하던 첫째 딸을 잃고 둘째 딸마저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유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자살한 나이 든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싶은 아들 남진, 그리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자살시도 생존자인 상우까지. 지안은 이 모든 남겨진 사람 혹은 생존한 사람에게 슬퍼하고 애도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희망을 전한다. 동시에 그녀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상실로 인한 슬픔을 이겨내고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어머니와 화해하는 새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리고 독자들도 깨닫게 된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음은 어때?”라고 물어봐 주는 일이라는 것을. 서로의 마음을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결국 이 삶을 지탱하게 하는 기적이란 것을. 당신의 삶에도 작은 기적이 필요하다면, 이 작품이 당신의 기적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마음이 들리는 공중전화』를 읽은 독자들은 이런 심리부검센터와 공중전화가 실재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나를 두고 먼저 떠나간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원망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나 온전히 그의 부재를 슬퍼할 수 있지 않을까. 적절한 애도의 과정을 거쳐 결국 지금 살아 있는 다른 소중한 사람과 함께 다시 살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 고인의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 있다는 설정은 판타지지만, 그 밖의 다른 모든 요소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길. 그러면 당신도 풀지 못하고 오래 묵혀둔 가슴 속 가장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책 속 ....
“심리부검이 끝나진 않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어머님은 아영이를 죽이지 않았어요. 다만 어머님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안다면 다른 마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어떤 게 있을까요?”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요. 똑같은 슬픔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그 둘은 다른 슬픔이에요. 지금 슬픔의 방향은 어머님을 향해 있죠. 내가 이렇게 못 해서, 내가 이렇게 말해서. 하지만 아영이의 마음을 안 순간부터 슬픔은 아영이를 향할 거예요. 소중한 아이가 떠나갔구나. 힘든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구나. 그걸 저희는 ‘애도’라고 말해요. 저희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3장 두 개의 얼굴」중에서
그제야 지안이 왜 그를 불렀는지 눈치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대한 회고였다. 애도란, 그 삶을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는 과정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게 바로 수용이란 걸 지안은 진작 알아챘던 것이다.
---「4장 어쩌면 진실보다 중요한」중에서
―마음은 어때요?
지안 씨는 이 통화가 마지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상 해외에 있더라도 인터넷이 되니 연락은 주고받을 수 있는데. 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빌미로 삼아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죽으려고 했던 날들. 모두 완전히 무너졌던 날들이었어요. 그때는 그렇게 모든 게 끝나는 것 같았어요. 지안 씨가…… 그렇게 묻기 전까지, 아니, 물어왔던 날도.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 완전히 무너져 봤기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라고. 새롭게 살아볼 수 있다고.
―지금도 무너져 있어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상태랄까. 그러니까 지안 씨도…….
―……?
―지안 씨도 이제 쌓아 올려봐요. 다 무너트려서라도, 끝까지 떨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해 봐요. 지금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요. 이렇게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대화하는 지금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곳이잖아.
---「5장 완전히 무너졌을 때」중에서
그때는 언제라도 공중전화를 통해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놓아야 한다. 떠나간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던 날들을. 앞으로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은 아빠의 목소리가 아닌 함께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것이 아빠가 말한 마지막 바람이었다고 믿어야 했다. 그래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믿을 수 있으니까. 아빠의 목소리는 다시 들을 수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빠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울고 또 울었다.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6장 마지막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