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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평점 :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글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 책이 나오면서 바로 샀었다.
시작글을 읽어보고... 어...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어서 덮었다가... 한참 뒤에 읽기 시작했다.
나는 작가 님을 모른다. 전작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제목은 들어봤지만 읽지 않았다. 나는 불편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왜 제목부터 저런 악담을 하지 하는 원초적인 생각 때문에 책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정보 없이 이 책을 샀지만 시작 부분이 불편했고 전투적이거나 정치적인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굉장히 그렇게 쎄게 느껴져서 이 책을 보지도 않고 팔아버릴까.. 했지만 그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책에 대한 나름의 책임감이 있는 내게 그건 또 아니기에...연말 결산을 위한 책읽기로 이 책을 읽었다.
시작글(이걸 뭐라고 해야 되나? 여는 글이라고 해야하나)은 좀 불편한 듯 읽고 머리글을 넘어가니... 이 책 시작글 보고 덮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 대한 이토록 치열한 안내 책이 있을까...너무 감사하고 직접적이면서 힘이 되는 글들이 많았고 좋은 구절도 많았고 좋고 나쁘고는 지금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말그대로, 나를 휘저어 놓은 책이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그 ‘방’의 개념은 자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고 지지해줄 관계망이기도 하다. 쓰는 행위는 곧 읽히는 행위이고,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글쓰기는 누구에게 읽히느냐에, 첫 독자가 누구냐에 지속 가능성이 연결되어 있다.
독서는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한 사람의 시선과 삶의 단편을 기록한 책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난 시간이 재배치되었고 상처를 응시할 수 있었고, 외면했던 감각을 믿게 되기도 했다.
나에게 ‘읽다’는 ‘경험하다’와 같은 말이었다. 내가 마련한 이 책이 당신에게 작은 자유를 선물하는 하나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함께 쓰고 읽은 시간을 기록한 이 공간이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도 안전한 그곳이길 바란다. 이제 내 글의 마침표를 열고,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 029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
우리가 원하는 문체와 글이 자기의 것은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쓰는 자기만의 글.. 글을 통해 내 아픔과 너의 아픔, 세상의 아픔이 연결될 때, 고통의 소용돌이 안쪽으로 한 뼘 더 들어가 있겠지만 울지 않고 시원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글쓰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한데 지속적으로 쓰기 위해서 글쓰기 수업을 찾아다녔던 그녀는 여러 가지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찾아다녔던 이유는 내 삶을 봐주고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고, 그것이 섣부르게 상대에게 권위를 주는 행동으로 이어져 위험했다고 말하는 그녀(서사의 편집권 지키기)...비판없이 그런 것들을 수용하고 움츠러 들었다면 상처와 고통에 대해 쓸 수 없었을 거고 특히,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그런 ‘자기부정’은 글쓰기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작가가 찾아낸 것은 작은 ‘글쓰기 모임’... 서로 잘 들어주는 관계 속에서 꾸준히 쓸 수 있었고 쓴 만큼 글이 늘었다고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고통 자체도 상처이지만 고통을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상처다. 그래서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묘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개입하고 헌신하는 실천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실천해나가기 위해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계속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던 건 내 글을 함께 읽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보충할지, 내 사유가 어떤 부분에서 막혀 있는지 알려줄 안전한 관계망이었다. 관계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 다음이 내 이야기 쓰기다. - 045
좋은 글에는 정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 담겨 있다. - 060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진만, 못된 여자는 어디든 간다” -058, 061 ... 어느 책의 문장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찰스 벡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중에서 - 72 여는 글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이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경험을 꺼내 읽고 해석하는 일은 혼자 속 썩이며 참는 일보다 나에게는 참을 만한 고통이었다. - 76
“이 책을 쓰며 가장 조심스러웠던 점은 저 자신을 피해자화하는 문제였어요.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하게 교차하잖아요. 관계 또한 마찬가지고요. 데이트폭력도 권력 구조에서 일어나는 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나눴던 모든 일이 폭력 하나로마 수렴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사건과 관계는 복합적이니까요.”
인터뷰를 하고 몇 년이 지났지만, 내 이야기를 쓸 때마다 멈칫하는 지점은 같다. 피해를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 가해자를 지목하는 방식이 아닌 구조를 짚는 글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경험을 피해 서사의 전형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 79
-> 나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나에게는 가장 유의미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소설 위주의 읽기를 하고 있는 나는 요즘 소설들을 읽으면서 차별이나 문제의식이 있는 글들 중 어떤 것은 너무 이해되고 공감하며 해결점을 찾아서 부단히 노력하고 싶을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글은 뭔가 공감이 안 되기에 나만 나쁜 사람 된 것 같아 말도 못 하지만 뭔가 불편하고 나도 자괴감이 들면서 기분이 안 좋아지기만 했거든. 그건 그 글이 잘 못 했네. 글을 잘 못 쓴거네. 피해 서사는....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것이 읽혀지는 글 일 경우에는 정말 신중하게 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말 그대로 글쓰기는 그 글을 읽으면서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야 더 피어나는 부분이 있고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기에... 쓰기 위해서야 어떤 글을 써도 되지만 팔기 위한 책.... 돈과 시간을 내고 보는 독자에게는 좋은 글을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읽기와 쓰기의 고독이 지닌 깊이가 나를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했다.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거야.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91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나를 망칠 수 없다는 것도.
박민정 <A코에게 보낸 유서> 중에서
소심하다는 작가 님이 어떻게 이렇게 대범하고 솔직하게 사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악플에 대처하는 방법,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 이야기들도 있다. 그 글을 읽는 동안도 나는 심히 작가 님이 걱정되었다.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사회를 위해서는 감사하지만 본인은 너무 힘이 드는 건 아닐까? 사적인 부분은 조금 자신을 위해서 남겨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다 보여줄 필요가 있나? 가족이나 지인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쓰여서 여기저기 공개되는 것에 동의를 했을까? 그 분들은 상처받지 않았을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보여 자신이 후련해지는 부분은 있지만 그 뒤로 따라오는 잘 알지도 못 하는 사람들의 비난, 동정, 비판... 왜 그걸 뒤집어 쓰고 있을까... 연예인이라서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수익이 많이 나는 구조도 아닐건데... 자기도 자기만의 방어막은 어느정도 있어야하지 않나? 글을 꼭 그렇게 다 까발릴 필요는 없는데.. 작가가 다 그러지는 않잖은가? 충분히 작가 님의 글들은 좋아서 꼭 그런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은 글을 쓸 분인데.... 나는 소심함 때문에 나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라 sns도 거의 하지 않는데... 매일 어떻게 그런 일들을 견뎌내는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작가 님의 글이 참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좋은 글이라 느껴졌다. 오랜 고민과 사유로 만들어낸... 글쓰기에서도 좋았고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며 자신의 아픔을 토해낼 수 있는 용기를.... 그로 인한 자유를 주기 위한 너무 좋은 책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작가 님의 책을 찾아 읽고 싶지 않다. 나의 그릇이 감당하기는 벅차다.
작가 님에게 날아오는 비난과 비판들 중에 다 악플은 아닐 거다. 호불호가 굉장히 갈릴 수 있는 글이라서.... 세상에 정말 많은 글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취향은 다 다르고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지만.... 암튼 작가님의 글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응원하겠다.
나는 이기적인가 보다. 아름다운 것이 좋다. 유쾌한 것이 좋다. 어둡고 후벼파는 것은 너무 나에게 어렵다.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이 든다.(나의 경험에서는 투사같은 사람들이 대부분 내로남불이었던 경우가 많아서 좀.... 안 만나고 안 엮이고 싶다.ㅜㅜ) 그래도 나는 글은 계속 쓰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뭐 작가가 되자고 하는 건 아니니까...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글쓰기.. 꾸준하게 성실하게 쓰기는 항상 살아오면서 실천하고자 하는 지점이고 작가님의 글에서 가장 부럽고 따르고 싶은 지점은 ‘함께 쓰기’ 그런 관계망... 그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더욱 안 되는 거니까...
암튼 ‘글쓰기’로 읽은 글이 나를 아주 휘저어 놓았다는 것을 밝히며 이만총총.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그 ‘방’의 개념은 자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듣고 지지해줄 관계망이기도 하다. 쓰는 행위는 곧 읽히는 행위이고,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글쓰기는 누구에게 읽히느냐에, 첫 독자가 누구냐에 지속 가능성이 연결되어 있다.
독서는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다. 한 사람의 시선과 삶의 단편을 기록한 책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난 시간이 재배치되었고 상처를 응시할 수 있었고, 외면했던 감각을 믿게 되기도 했다.
나에게 ‘읽다’는 ‘경험하다’와 같은 말이었다. 내가 마련한 이 책이 당신에게 작은 자유를 선물하는 하나의 경험이 되길 바란다. 함께 쓰고 읽은 시간을 기록한 이 공간이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도 안전한 그곳이길 바란다. 이제 내 글의 마침표를 열고,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시간이다. - P29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고통 자체도 상처이지만 고통을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상처다. 그래서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묘사하는 행위가 아니라, 개입하고 헌신하는 실천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실천해나가기 위해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내가 계속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던 건 내 글을 함께 읽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보충할지, 내 사유가 어떤 부분에서 막혀 있는지 알려줄 안전한 관계망이었다. 관계망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 다음이 내 이야기 쓰기다. - P45
좋은 글에는 정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 담겨 있다 - P60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진만, 못된 여자는 어디든 간다" - P58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찰스 벡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중에서 - P72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이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경험을 꺼내 읽고 해석하는 일은 혼자 속 썩이며 참는 일보다 나에게는 참을 만한 고통이었다. - P76
읽기와 쓰기의 고독이 지닌 깊이가 나를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했다.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거야.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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