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2012년 한참.. 일본서점대상 관련 책들을 읽어들일 때 우연히 읽게 된 ‘64’... 굉장히 두꺼운 내가 좋아하는 경찰 소설인데 너무 두꺼워서 나름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건만(작품은 참 좋았다.)... 까마득히 이름이며 내용이 가물가물했는데 예전 서평을 찾아보니 생각이 났다. 좋은 작가님... 제대로 된 소설가님... 그런 기억 속에 7년만에 내셨다는 신작을 만나게 되었다.
‘빛의 현관’ 제목이며 책 소개만 봐도 심상치가 않다.
주인공 ‘아오세 미노루’는 건축사다.(일본에서는 뭔가 경륜과 능력치가 쌓여야 건축가고 보통 우리가 지칭하는 통상 건축가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건축사라고 한단다.) 거품 경제 당시 쭈욱 성장만 할 것 같고 활황만 이어질거라 믿으며 멋진 건축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던 그는 인테리어 하는 아름다운 부인 ‘유카리’와 귀여운 딸 ‘히나코’와 화려한 생활을 하곤 했었다. 그치만 거품이 꺼지며 나락을 경험했고 패기와 열정은 남의 이야기가 되며 술에 의존하며 그냥그냥 살다 7년 전엔 이혼을 한 상태다. 의욕없이 살던 그는 몇 년 전 대학 동기인 일급 건축가 오카지마 건축 사무소(직원 5명의 소규모 사무소)에 들어와 작년에는 인생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Y주택’을 짓게 된다. 요시노 가족에게 들어온 의뢰에서 그들이 부탁한 것은 ‘아오세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것 뿐... 어떤 영감처럼 정말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짓던 아오세... 어린 시절 ‘유랑’의 기억과 실제 외면했던 ‘정착’하며 목조주택에 가족을 꾸려 살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모두 반영해 지었던 그 주택... 노스라이트(북향으로 큰 창을 내어 은은한 빛을 주는 집, 부족한 빛을 보충하기 위해 만든 세 개의 빛 기둥..).. 그 멋진 집은 멋진 집을 모으는 <<200>>이라는 잡지에 실리기도 하고.. 아오세를 다시금 살게끔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Y주택’에 살아야할 요시노 가족이 어디에도 없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진행되는 파리에서 외롭게 살다 간 미술가의 기념관 경합에 참여하게 되는 사무소..
기본 ‘건축’이야기가 나와서 정말 몇 년 전 읽었던 ‘여름은 오래 그 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생각도 많이 났고... 이거 뭐 미스터리인가.. 싶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이건 요즘 보기 드문 조사 정말 많이 하고 한자한자 섬세하게 쓴 훌륭한 소설이다.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브로노 타우트’ 의 휴가 같던 일본 생활에서의 이야기.....나는 이 인물이 가상의 인물인줄 알았건만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었고 책 뒤에 있는 리스트에 그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참고자료를 보고 이 작가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정성스러운 글이다. 그리고 이 작품 등장인물은 다 선하다. 다들 참 남을 배려하고 조심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댐 건설 기술자였던 아버지로 인해 어릴 때 ‘유랑’했다는 그의 이야기와 ‘새’ 이야기... 참 좋았다. 따뜻하고 좋은 아버지의 기억이 있는 이야기를 읽고 있을 즈음.. TV에서 복서 최현미 선수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녀의 아버지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는 모습을 보았다.(‘아이콘택트’라는 프로였다.)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두 분다 정말 사랑스러운 눈빛과 따뜻함을 교환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는데... 그런...느낌의 아버지를 둔 아오세..... 자기 부인과 딸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인공의 마음... 이 참 따뜻했다. 노스라이팅의 빛 같은... 온화함과 따뜻함이 작품 전반에 등장한다.
나름의 미스터리도 있고 반전도 있고 슬픔도 있고 희망도 있는 책... 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읽은 후 따스함이 채워지는 그런 느낌....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내가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지을까’... 생각해 보면서... 좋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