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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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과 여성이 이 책의 주된 소재이다

남성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집단적 폭력 즉 전쟁 상황을 맞닥뜨린 여성의 이야기이다

대게 전쟁과 관련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주된 모습은 전장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전장에서 피어난 사랑 혹은 가족 특히 전장에 아들을 떠나보낸 후 생사조차 알 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모성애 등을 다루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작품은 전쟁의 당사자로서 병사로서 여성을 선택하여 이야기를 하는 점이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특별했다

주요 인물로는 특무상사 바스꼬프, 농장 관리원의 딸 리자 프리츠끼나, 의사 집안 모스크바대학생 소냐 구르비치, 직업기술학교를 다니는 고아원 출신 갈랴 체뜨베르따끄, 러시아 장군의 딸 제냐 꼬멜고바 인데 간단한 인물 소개만 봐도 매우 흥미롭다 또 이들의 상관이자 책임자인 특무상사 바스꼬프와의 에피소드들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장에서 웃음을 유발하여 슬픔속이지만 책을 놓을 수 없는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개성 있는 인물의 배열과 그 인물들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한인 전쟁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일상과 그 인물들의 내면 이야기는 정말이지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영화를 보듯 펼쳐졌고 책을 놓기까지 그 인물들의 내가 창을 통해 실제로 들여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책의 제목처럼 하루가 생을 다하며 남기는 노을과 같이 이 아름답고 젊은 여인들이 거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로 붉게 타오르다가 결국은 고요하게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전쟁이란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작가는 그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인간을 사살하는 전쟁의 위험과 몇몇 정치적 지도자의 신념에 의해 자행되는 끔찍한 전쟁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 보고픈 소설이였고 오래 전에 영화화된 원작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 영화도 한번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장치였겠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으로 그렇지 않아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러시아 이름들인데 별명까지 붙여 놓는 바람에 책을 읽는 초반 인물들이 너무 복잡하게 널려 있는 느낌을 가졌는데 이것은 엮자나 출판사가 작가의 의도를 크게 달리 해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 독자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별명으로 바꾸어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번역은 정말이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끔찍한 전쟁 속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한 원작의 느낌을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읽는 내내 가질 수 있었다

때론 죽음을 표현해 내는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끔찍했지만 그런 끔찍한 묘사와 대비되는 여성성의 아름다움과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는 날씨와 하늘, 그 시간대 따라 변하는 인간의 느낌과 감정을 너무나 공감이 가도록 번역이 되어 있어서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라고 볼 수 있는 상상력의 깊이와 폭을 깊고 넓게 제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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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날의 일곱 시간
수잔네 프로이스커 지음, 홍이정 옮김 / 샘터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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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수잔네 프로이스커가 교도소에서 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하던 중 연쇄 강간을 한 범죄자로부터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이다

 

설마 소설이겠지 했는데 실제 작가의 이야기였다

책의 제목은 그 끔찍한 일을 당했던 실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폭행이 끔찍한 범죄인 까닭은 인간이 도저히 버티어 낼 수 없는 수치심을 자극하며 폭행한 것이므로 그 악몽 같은 기억이 피해자의 평생을 지배하게 되고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에 까지 이르게 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자신 스스로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작가는 그것을 상세히 기록하고 책으로 까지 펴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에 작가는 희생자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희생자는 옛날처럼 모든 게 상대방을 불안하게 한다 희생자는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으며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머리를 숙여야하며 희생자는 희생자 다워하야 하다는 것에 대해 ‘희생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며 희생자가 되기를 자처하기 보다는 변화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이런 작가의 모습이 놀라웠다 어쩌면 작가는 이 책을 그 악몽 같은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유로 생각한 듯 했다 그것은 작가가 심리치료사였기 때문에 가능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잡지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 성폭행을 공론화 하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한 대답으로 소송과 공론화로 인해 작가 자신은 더 건강해 졌다고 대답하고 있고 남편과의 관계도 더 좋아졌고 삶이 더 풍요로워 졌다고 당당히 대답하고 있다 일견 이해가 되지 않는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독일이니까 가능했지 과연 우리나라였다고 해도 작가가 저렇게 대답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이 좀 들었다 성폭행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고압적 수사과정과 범인과 대질해야 하는 상황 등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수사과정에서 받게 되는 상처가 더 많다고 들었다 여성조사관이 직접 피해당사자의 집이나 피해자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방문 수사가 이루어 지는 등 세심한 수사가 필요할 부분인데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신고율 자체가 현저히 떨어지고 그런 여성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성폭행법의 재범율이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것으로 보여 진다 오죽했으면 에필로그 후 옮긴이도 언급했지만 한국에서는 성폭행 당한 여인이 자신을 스스로 죄인 취급을 하기도 할까?

 

독자가 책을 읽으며 끔찍했던 작가를 떠올리는 것만 하지 않도록 작가는 여행수기와 요리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자신의 변화되는 모습을 잔잔히 기록하고 마침내는 자신을 성폭행한 범죄자를 용서하기에 이르고 그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며 오히려 격앙된 독자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였던 것은 그녀도 대단했지만 그녀의 남편이 더 위대해 보였다

결혼을 10흘 앞둔 날 끔찍한 일을 당했던 그녀는 단호히 결혼하기를 반대했는데 그 남편은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결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녀가 하는 모든 일에 지지를 보내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아마도 이런 책을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의 남편 덕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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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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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리에 출간되는 일본 소설의 일러스트를 모방한 책 표지를 보고는 신인작가인가? 하며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라는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대 작가였다 나는 그 작품을 영화인지 TV문학관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영상물로 접했고 참 독특하고 쓸쓸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예술 장르는 표면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저 깊은 바닥에서 지하수 처럼 한줄기로 만나 같이 흐르고 있다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예술가가 이 작품의 작가 이제하 일 것이다 한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찬란해 질까? 라며 예술을 동경하는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이제하는 놀랍고도 놀랍다

 

이번에 출간되 이 책에서도 그는 여지없지 자신의 능력을 노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집’이라 이름 지어진 이 책에서도 이야기뿐 아니라 그림을 직접 그려 넣어 이야기 이상으로 판타지에 독자를 빠져들게 하였고 자신의 노래 모음 CD까지 별책부록으로 함께 발간하였다

 

코 때문에 이혼한 커플의 코를 성형해준 의사이야기, 집안의 기대를 온 몸으로 받던 30대 노총각 이야기 그리고 싱글로 살아가는 40대를 부러운 눈으로 보는 동시대 가장 이야기 등등 가벼운 콩트로 시작된 책은 읽어 갈수록 오랜 시간 예술가로서 살아온 통찰력이 보이고 이야기의 깊이는 끝이 없어진다 코처럼 아주 짧은 콩트와 비슷한 어찌 보면 장시 같기도 한 에피소드도 많지만 ‘사라의 문’, ‘비’ 와 같이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단편도 수록 되어 있어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았고 현실과 환타지를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읽는 재미를 작가는 선사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내가 무엇을 읽은 걸까?’ 하는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여성지 속에서 흔하게 읽었던 가족의 일상사 콩트가 떠오르기도 하고 한국문학전집이나 이상 문학상 전집 속 단편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등 요즘 만나기 힘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품과 작가의 연령을 연계해서 바라보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가볍게 보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과연 작가의 연륜이 없다면 이렇듯 장시도 콩트도 단편소설도 아닌 듯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의 모음이 그것들을 완전히 능가하는 환타지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사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인상적으로 읽은 ‘비’라는 작품에서 작가의 연륜에서 비롯한 통찰력이 보이는 부분을 다시 읽으며 서평을 마친다

 

“군인 묘지라 무덤조차 계급이 정연해서, 소위 이하의 졸병들은 모두 하얀 나무 묘비, 그 이상의 장교들은 모두 석비다. 밋밋한 잔디의 무덤들을 밟으며 거니노라면 때로 땅 밑에서 졸병들의 유골들이 일제히 터트리는 홍소가 아우성쳐 올라와 들리는 듯하고 질서 정연히 박힌 그 무수한 백목비들은 그 바람에 일제히 지각을 뚫고 죽순처럼 솟아 오른 듯하다 6.25동란 때 전사한 졸병들의 수는 도대체 몇 십만 몇 천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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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와 앨리스 - 같은 시간을 두 번 산 소녀의 이야기
페넬로페 부시 지음, 정윤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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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한 현실의 삶이 고달프다고 생각되거나, 나는 지금 무얼 위해 왜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 던져 본적이 있었던 우리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앨리스의 이야기처럼 과거의 나로 다시 돌아 간다는 판타지를 적어도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것이다

 

나또한 과거로 다시 돌아가 다시 산다면 이런 삶은 다시는 살지 않을 테다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살면 이러이러하게 살아야지 하며 허무맹랑한 생각을 종종하곤 하는데 언젠가 부터는 다시 산다고 해도 난 이런 내 모습으로 성장하여 지금의 모습 그대로가 되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의 단초에는 다 큰 성인이 그런 판타지를 상상하는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과 결국 내가 나인 까닭은 다시 돌아가서 산다고 해도 반복된 삶을 살 것이며 혹여 다른 삶을 산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므로 그 또한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심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소설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였을까?

본인 자신을 대입하여 생각하는 것도 얼핏 떠올리기는 쉽지만 과거의 여러 정황들과 사건들을 반추하며 사고의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을 텐데 소설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상을 했을 것이고 작가는 마치 자신이 앨리스가 된 듯 감정이입을 하며 작품을 썼을 것이 분명한데 그런 작가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14살 소녀 앨리스는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캐릭터이다

아직 부모님의 영향과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 행동하고 사고하기엔 어리고 반대로 부모 품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부모의 뜻에 따라하는 나이는 벗어나 이제 자신만의 세계와 사회성을 구축해 나가고 싶어 하는 나이인데 소설 속 앨리스는 또래 아이들 보다는 조금 특별한 가정사를 겪었다 남동생이 태어 나자마자인 앨리스가 7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였고 그 후 우울증을 겪는 엄마와 남동생을 돌보면서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된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이 마뜩치 않은 앨리스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샤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고 집에서도 학교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던 중 그나마 자신이 진심으로 대한다고 생각하고 둘도 없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되던 이모젠과의 다툼 끝에 앨리스는 자신은 스스로 극한 상황이라고 단정 짓던 순간 놀이터에서 기절을 하고 마법에 걸린 회전목마에 의해 7살 시절도 돌아 가게 되는데..

 

이 소설의 장점은 성인에겐 추억에 잠기는 환타지를 제공하여 자신의 사춘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살고 싶다는 야릇한 희망과 엷은 미소를 안겨주고 청소년기 독자에겐 등장 인물 속에 자신을 대입하여 자신이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재치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작가 매력에 빠져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아직 어린이가 읽기엔 부담스러운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독서를 즐기는 어린이가 읽고 난 후에 부모님과 같이 이야기 해보는 교육적 내용도 충분히 담고 있어 보였다

이렇게 이 책은 한 가족 모두 같이 돌려 읽어도 좋을 만큼의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작가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내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이 녹록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꿈과 희망이란 단어에 설레이는 것인데 이 책을 읽으며 꿈꾸 듯 설레임과 환타지에 온 가족이 한 번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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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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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소설이지만 마치 우리나라 소설처럼 읽혀진 것은 나 뿐 만이 아니였을 것이다

동시대에 일본의 제국주의에 고통 받은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였기 때문에 아시아의 수많은 독자들이 공감하였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되고 마치 인물과 배경을 조금씩만 수정하면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겪었던 과정과 별 반 다름이 없었을 것이란 느낌 마저도 들었다

주인공 타이밍은 작가자신 이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 문학 작품에도 많이 등장하는 인물과도 많이 닮아 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주인공의 성격을 부각시키며 작가 자신이 행동으로 저항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작품 속에 처절하게 녹여 내려고 애썼던 느낌과 감정을 읽는 내내 공감할 수 있었다

침탈당한 국권과 생존권을 일반인 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지식인으로서 그 부당함을 맞서 총칼을 들고 저항하며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의 성향차이도 있지만 이런 작품으로 더 많은 민중의 한숨을 달래주려 애쓰고 인물을 통해 참상을 역사에 남기는 역할 또한 소중하기 때문이다

작품 말미에 노무봉공반에 강제 소집되어 과도한 노동 후에 건강이 악화 된 후 어떤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죽음 직전에 반시체가 되어 실려온 동생 후난의 죽음을 목격한 주인공 타이밍이 미쳐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그 광기 어린 통곡이 점차 타이밍에게도 감염되어 왔다. 그 때 문득 타이밍은 즈난이 임종 때 외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죽은 자가 외칠 리는 없다 그럼 착각이란 말인가? 아니다 착각은 아니다 틀림없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아!“ 순간, 타이밍은 모든 사고의 맥락을 잇고 있던 그 팽팽하던 줄이 어느 순간 ‘탁’하고 끊어져 내리듯이 머릿속이 수상한 혼돈으로 가득 채워져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라고 묘사하며 주인공 타이밍이 미쳐가는 순간을 서술하고 있다

정말이지 읽는 내내 한 편 타이밍의 답답한 행동에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이 장면을 읽으며 어쩌면 나도 이렇게 미쳐 버릴 수도 있고 인간이 정신을 놓는 순간과 그 순간에 직면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죽음의 순간 생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는 속설처럼 소설 전반에 걸친 주인공 타이밍의 소심하고 내성적 이였던 성격과 에피소드들이 그 인과로 인해 광기로 폭발하는 순간에 마치 내 속에서도 광기가 치밀어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과 같은 극한 고통에 직면한 상황에서 좋은 문학 작품이 탄생하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일제가 행했던 황국신민화를 위한 극악한 정책으로 인해 저항하는 작가들을 감시하고 자신들의 제국주의 정책을 찬양하지 않는 모든 작가들의 글은 샅샅히 검열을 하거나 그 검열이 자신들의 정책에 반하면 감옥에 보내고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막아 버리는 참혹한 상황에서 출판이 되지 못할 운명에 처한 이 작품에 몰두하며 한줄기 희망을 떠올리며 마치 아시아의 근대 개인사라고 보아도 무방한 이렇게 소중한 작품을 남긴 작가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고 이런 소설이 가해국인 일본에서도 출판이 되기까지 애쓴 일본의 지식인에게도 고개가 숙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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