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로커 베이비스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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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세상에 대한 '적응기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정해진 로드맵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또,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많은 '모습'의 삶은 어디서 연유한 것이까? <코인로커베이비스>는 그것이 출생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하철소리, 사람들 말소리, 발자국 소리, 소리들과 분주함이 가득한 지하철. 후텁지근한 여름 날, 지하철의 밀폐된 코인로커에서 두 아이가 태어난다. 기쿠는 항상 돌고 있는 지구 속에서 가만히 멈춰있는 것이 싫어 탈 것에 태워져 돌아다니고 싶어한다. 하시는 모형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그 세상에 침범해 오는 사람들을 탈진할 정도로 싫어한다. 기쿠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기쿠와 하시는 형제가 되어간다.

 

'유아나 아동의 신경증은 부모와의 관계, 환경적 인자라는 두 가지 문제에서 기인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기쿠와 히시는 단절된 부모와의 관계와 코인로커 속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무의식의 기억으로 삐뚤어진 방향성을 지닌 에너지로 살아간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심장소리 치료를 받게 된다. 입양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하시는 심장소리를 깨닭게 되고 섬을 도망친다.

 

하시를 되찾으려 노력하면서 기쿠와 하시의 삶은 점점 근원에 닿아간다. '소리'에 얽메인 하시, '다투라'에 얽메인 하시. 찌는듯한 더위 속에서 살아남은 처절한 생명처럼 둘의 삶은 삐뚤어지고 습한 곰팡이 같아진다. 남창이 되어 괴기스런 노래를 불러대는 하시는 미스터D와 니바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가수가 된다.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어둠을 대변하듯 괴기와 엽기, 아이러니로 가득한 하시의 노래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만든다. 하나, 둘, 셋. 어둠과 정신분열에 빠져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여야 하는 하시는 니바를 찌르기 직전 희열의 순간에서 옛날 병원에서 들었던 심장소리를 듣게된다. 하시를 구하기 위해 찾아간 장소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된, 자신을 코인로커에 버렸던 사람을 만난 기쿠. '그만둬'라는 말과 함께 피와 살덩이가 되어 버린 자신의 엄마. 기쿠는 범죄자가 되어 또 다른 미친 세상 속에 빠져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이 난무하는 코인로커 베이비들의 모습은 '다투라'로 끝난다. 마침내 다투라를 손에 넣은 기쿠는 세상을 파괴하고, 다투라로 인해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또 다른 새로운 하시가 되어 노래를 부른다. 꼬물꼬물 허연얼굴의 소극적인 하시와 무뚝뚝하고 건장한 기쿠가 코인로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적응기작'은 억압하고 구속하는 코인로커처럼 박탈하고 저지하는 우리 사회를 닮았다. 그 속에서 꿈틀대며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 그 모습이 어쩌면 기쿠와 하시의 모습일지 모른다.

 

코인로커, 심장소리, 다투라, 노래, 죽음. 당신의 지금은 어느 단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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