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송지현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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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 소설 <김장>이라니. 딱이네 싶었다. 고춧가루 범벅인 손으로 수육에 갓 절인 김치에 돌돌 말아먹는 장면이 등장하려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간다. 주인공 '나'는 성인이 되어 김장철만 되면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유년 시절 동네 언니 오빠들과 아이 엠 그라운드를 하고 엄마와 산딸기를 땄던 곳이다. 깊었던 강이 작은 시내로 변했다. 할머니는 옆옆 집 손자 성철이 강에서 죽었다며 무심히 말하신다.

나는 산딸기를 따겠다고 한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책은 '기억'과 다른 '지금'을 말한다. 할머니와의 김장 때 늘 작년 묵은지전이 함께했던 것이 '기억'나지만, 산딸기를 여름에 딸 수 있다는 것은 기억에 없다. 문학평론가 노지영은 송지현 작가의 <김장>을 두고 '두 계절을 통과하는 한 청년의 생애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는 비망록을 읽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책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나'를, ‘기억’과 그것과는 조금 다른 ‘지금’ 사이에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결국 산딸기를 따지 못한다. 소설은 '홀로 걷는 나'로 끝난다. '저 멀리 자그맣고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멀리서 보면 어둠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곳'으로(p.36) 걷는 나. 평론가의 비망록이라는 표현이 딱 맞춤하다. '김장'이라는 제목보다도.

책의 두번째 작품 <난쟁이 그리고 에어컨 없는 여름에 관하여>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아티스트 네트워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파티'가 배경이다. 그 안의 '나'. 나는 '제이'라는 동갑 친구를 유심히 바라본다. 맥주도, 아티스트도 싫다지만 모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제이. 기호와 정체가 모호한 제이처럼 '나'는 알 수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엔 날개가 없다. ----은 추락"이라는. "슬픔엔 날개가 없다. 인간은 추락. 아니 더 큰 단어로. 감정엔 날개가 없다. 생명은 추락. 다시 작은 단어로. 가위엔 날개가 없다. 가윗날은 추락.'(p.63)이 근거로 한걸까? 노지영 평론가는 이 '말'과 주인공의 관찰을 두고 ''구멍'을 통해 '나'는 그동안 자신을 억압해온 언어의 질서를 발견'(p.80)한다고 말한다.

결국 책은 송지현 작가의 소설을 '아주 작은 슬픔들의 결정체'(p.82)로 이루어졌고, ''소인'들만의 '가능한 질서'들을 세워나가는 이야기'(p.83)라고 말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두 작품이 모두 일반적인 인물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수긍이 가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이해가 어려웠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 그 바람이 <김장>에서 <난쟁이~ 관하여>에서 '나'로 나타났던 걸까. 두 작품의 '나'는 평범하게 시작해 '비상(非常)'하게 끝난다. 난데없이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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