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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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에밀리는 무어를 무척 사랑했어요. 동생은 무어에서 황량한 고독을 느끼면서도 진정한 자유를 맛보았어요."

<제인에어>의 작가 샬롯 브론테가 동생 '에밀리 브론테'를 두고 한 말이다. 서른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에밀리 브론테는 영국 북부 요크셔의 황무지 '무어' 지역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진 고원지대 무어는 소설 <폭풍의 언덕>의 '황야'로 그대로 재연되었다. 광기를 닮은 사랑의 서사와 함께.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가 언쇼가에 살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하인들에게 채찍질 당하는 히스클리프는 자연스레 자신을 인간답게 대우해주는 '캐서린'에게 빠져든다. 힌들리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도, 티티새 농원에서 깃털을 가지고 놀 때도 히스클리프 옆에는 늘 캐서린이 있었다. 캐서린은 린턴과의 결혼을 고민하면서 하녀 넬리에게 말한다. "그 애(히스클리프)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지.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아." 그리고 덧붙인다. "린턴의 영혼은 달빛과 번갯불이 다르듯, 혹은 서리와 불꽃이 다르듯 우리의 영혼과는 다르지."(p.140) 히스클리프와는 같고, 린턴은 다르다는 캐서린. 그럼에도 캐서린은 마음에 반하는 선택을 하고, 이것은 결국 히스클리프의 광기를 촉발시킨다. 

어느 날, 사라졌던 히스클리프가 폭풍의 언덕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힌들리에게, 그리고 자신을 떠난 캐서린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결혼한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와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신의 아이 '린튼'이 캐서린 부부의 아이 '캐시'와 억지로 연결시킨다. 그 과정에서 히스클리프는 언쇼와 린턴 가문의 재산을 모두 손에 쥐게된다. 이것으로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성공한다. 그러나 캐서린이 생을 마감하면서 그는 행복은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히스클리프의 참담함은 캐서린의 망령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극적으로 표현된다. 

책은 '복수'에 대해 묻는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두고 다른이를 선택한 캐서린에게, 캐서린을 빼앗은 린턴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늘 매질을 했던 힌들리에게 복수를 한다. 특히, 힌들리에 대한 부분은 오히려 어린 시절 히스클리프의 아픔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그는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을 '짐승'으로 만든다. 말과 행동, 모든 관계의 행위는 모멸감으로 귀결된다. 그 방식은 어린시절 언쇼가에서의 그의 경험과 닮아있다. 헤어턴을 바라보는 히스클리프의 마음은 통쾌했을까? 오히려 자신의 과거 암울했던 시절이 더 자주 떠올랐을 것이다. 히스클리프는 가해자이지만, 그도 결국에는 피해자였던 것이다. 자신을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사람이 죽고, 떠났기에, 그는 스스로의 감정도 마음도 살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고 벽에 머리를 짓이기고, 복수로 일평생을 살아간다는 게 그 증거리라.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지만 정신없이 푹 빠져 읽은 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은 언제 읽어도 마음이 아프고 복잡하다. 영화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 대사없이 - 표정 변화만 보여준다. 쓸쓸한 바람이 느껴지는 언덕에서 남녀는 서로를 좋아하기도, 갈망하기도, 서로에게 원망하기도, 분노하기도 한다. <달과 6펜스>의 저자 서머싯 몸은 <폭풍의 언덕>을 두고 "사랑의 고통과 황홀, 그리고 그 잔임함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출해낸 작품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중독, 그 감정의 끝에 이른 분노와 광기, 그리고 파멸. 그 비극적인 광기의 서사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엄청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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