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의 취약성 - 왜 백인은 인종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토록 어려워하는가
로빈 디앤젤로 지음,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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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더(아름다운 아이)>를 읽었다. 선천적 기형을 가진 소년, 어거스트 풀먼(어기)의 성장 소설이다. 외모 컴플렉스가 있는 풀먼은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드는 대신 유머와 재치로 지지를 얻어낸다. 또,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쑥쑥 커나간다.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다. 인물을 바꿔보자. 어거스트 풀먼이 만약 흑인이나 유색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배경이 미국 중산층이 아니었다면? 과연 똑같은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가 나올 수 있었을까?

다소 막연하게 느껴지는 '인종구분'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려주는 작품은 도처에 널렸다. JD밴스의 <힐빌리의 노래>, JM쿳시의 <추락>, 조금 더 나아가면 로맹가리의 <흰개>에서도 볼 수 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은 그 선이 더할나위없이 명확하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는 어떤가. 다양성에 대한 학문적 이념과 달리 현실에서는 피부색으로 사람이 구분되고 대우와 처지가 달라진다. 백인의 우월성은 당연시된다. 미국의 백인이자 다문화를 연구하는 학자인 로빈 디앤젤로(Robin Diangelo)는 이것을 "불평등한 처우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인이 만들어낸"(p.47) '인종적 관념'의 결과라고 말한다.


북미의 백인은 인종 분리와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그에 따른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결과 우리는 인종 스트레스부터 차단되는 동시에 우리에게 이점을 누릴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중략) 사회화 과정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결코 인정하지 않는 우월의식을 내면화하게 되고, 결국 인종에 관한 대화에 매우 취약하게 된다. (중략) 우리는 인종주의 체제와 우리를 연관짓는 모든 시도를 마음을 어지럽히는 부당한 도덕적 모욕으로 여긴다. (p.24)

백인들은 태어날때부터 이로운 위치에 포지셔닝 되며, 불편함을 의식하지 못한다. 만약 그 불편함을 수면위로 꺼낼 경우 - 인종주의가 백인들에게서 기인한다는 연관성을 내포한 말/행위로 - 분노,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표현 혹은 논쟁하기, 침묵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같은 행동 등으로 상황을 '피한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백인의 취약성'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금 더 풀어보자면 '백인의 취약성'이란 백인이 우월하다는 '전제'를 깨려는 어떠한 시도들을 피하는 백인들의 생각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백인의 취약성은 로빈이 고안해 낸 개념으로 옥스퍼드 사전에서 '2017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다)

책은 백인의 취약성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인종이 백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 반 흑인성, 이분법, 여성에 대한 태도 등이다. 그럼 '백인의 취약성'은 백인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은 이것을 '사회화 과정의 결과'(p.198)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종주의를 저지하려면 용기와 지향성이 필요하다. (p.263)"며 '당신 스스로 (인종주의에 속하지 않을 방법을)주도해서 찾으라(p.247)'고 다소 추상적인 조언을 한다. 여기에 아주 강력한 실례를 덧붙인다.

마틴 루서 킹 연설의 한 문장 - 언젠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문장 - 이 특히 백인 대중의 이목을 끌었는데, 킹의 표현이 인종 갈등 문제에 간단하고도 즉각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인종을 보지 않는 척하는 방법으로 인종주의를 끝내는 해법이었다. 그리하여 '색맹'이 인종주의의 해결책으로 홍보되었고, 백인은 자신이 인종을 보지 않는다고, 설령 보더라도 자신에게 인종은 전혀 의미가 업삳고 우기기에 이르렀다. (p.86-87)

책은 결국 백인들의 특성 '백인성'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사회의 '소수성'과 연결지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종, 지역, 학벌, 장애 등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 얼마전 '장애'와 관련해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한 분이 "정상인/비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써달라."고 말씀하셨다. 두 시간여 동안 수십번 입에 담았던 표현인데, 그 말을 듣고서야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장애인이었다면 토론 시간에 과연 그렇게 말했을까? 이것도 내가 장애인이 아니기에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 <백인의 취약성>이 아마존에 오르자 평가가 양 극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취약'이라는 단어를 자신과 연결지은 백인들은 '읽어볼 필요도 없는 책'이라는 혹평을, 반대편의 사람들은 '가려운 데를 정확히 짚어준 책'이라는 호평을 내놓았다. 2020년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흑인은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은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이 끝까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압박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화의 결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항상 염두해 둘 수 없는 문제라 무뎌지지만 항상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백인의 취약성>은 백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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