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심리의 재구성 - 연쇄살인사건 프로파일러가 들려주는
고준채 지음 / 다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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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숲>에 빠져있다. 드라마는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대의 아래,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에서 인상깊은 캐릭터는 검사 황시목(조승우)다. 공감력이 떨어져 다소 눈치없는 캐릭터인 그는, 사건 해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건 현장을 누비며, 범인의 마음과 사건의 진행 과정을 추측해낸다. 조각난 단서들에서 핵심 정보를 찾아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황시목 검사의 행동이 일종의 '프로파일링'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프로파일링이란, 사건의 현장에서 범인의 행동 특징을 파악하여 용의자를 선별하는 수사기법이다. 그러나 이제 '통계적 검증과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각종 데이터를 해석하고, 프로파일러가 범죄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범죄자자신도 모르는 범죄심리를 분석하여 실제 범행 동기를 밝히는 방향(p.6)'으로 프로파일링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1. 프로파일링과 프로파일러

책 <범죄 심리의 재구성>은 프로파일러 고준채가 프로파일링을 소개한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프로파일러가 범인의 유죄를 입증해나가는 프로파일링과 수사 과정에서 만나는 인간의 범죄심리에 관한 이야기(p.6)'라고 할 수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거쳐 현재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자 고준채는 범죄 현장의 흔적을 분석해 범행 동기와 수법을 파악하고 용의자를 특정지으며, 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해 재발을 막는 사람이 바로 '프로파일러'라고 소개한다.

2. 주취감경은 구시대의 유물

책은 범죄 현장의 사례와 개념들을 소개한다. 첫번째는 '주취감경'으로 성폭행 가해자 조두순의 만기출소와 관련해 최근 여러 뉴스에서 다뤄졌던 개념이다. 주취감경이란 현행법에는 없지만 '형법 제10조'를 적용해 음주로 인해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면 형벌 수위를 낮춰주는 관습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주취감경은 '구시대의 나쁜 유산'이라며, 이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음주가 잦다 보니 술 마시고 사고 좀 칠 수 있다는 의식이 관례처럼 굳어진 것(p.38)'이라고 말한다. 조두순 사건 이후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주취감경을 양형 감경 요소에서 제외했다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관행이라고 한다. 유독 관대한 법조항과 함께 수정되어야 할 부분 아닐까.

3. 범죄자의 감정에 이입되지 않을까?

두번째는 언제나 궁금했던 부분으로 프로파일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사건을 사건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죄자들의 변하는 심리를 따라간다. 그들의 감정 변화를 가능한 똑같이 복기해내는 것이 그 사건을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길이다. 혹시 이럴 때 범죄자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자신의 마음까지 전이되지는 않을까? 동화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프로파일러는 자기 자신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p.59)'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범죄자를 이해하고 판단할 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범죄자나 피해자에게 전이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해서 심리학 전공을 요하는 것이 이런 맥락 때문이며, 인간의 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이 프로파일링에서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4. 최면수사

책에서는 '최면수사'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한 사람의 무의식을 끌어내는 최면은 마술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범행을 감추려는 피의자에게 최면으로 자백을 받아내기는 어렵다(p.135)'며 최면이 만능수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최면에 걸린 상태더라도 의지에따라 감출 수 있다니 너무 놀랍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IT가 발달하면서 최면수사가 사양추세라고 한다. CCTV, 블랙박스 등을 활용한 물리적 증거 기법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물리적 증거들을 조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던데, 오히려 현장에서는 이런 것들을 더 신뢰한다니 의아하기도 하다. 오히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억을 꺼내려는 노력이 '범죄해결' 관점에서는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만약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면 반드시 범죄 사건 해결에만 사용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테지만 말이다.


2020년 3월 디지털성범죄 'N번방' 사건, 7월 아동성착취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손정우 석방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해 12월 13일 조두순이 출소한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 현장에는 피해자의 고통 혹은 죽음이 있다고 한다. 경험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뉴스에서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프로파일러 고준채는 '누군가 그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다시는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p.228)'는 사명감으로 이 책을 썼단다. 책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과 프로파일링이라는 수사기법을 소개한다. 다양한 사건들을 예로 들고있어 프로파일링의 세계를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사건의 가해자들도 또 다른 측면의 피해자 아닐까?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건 아닐까? 그래서 끔찍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증들. 저자는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하는 데는 '(경찰, 검찰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각자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노력할 때 조금씩 사회는 발전한다. 안전하고 좋은 나라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거듭 말한다. 그렇다면 그저 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방법인걸까? 궁금증이 남는다. 과연 범죄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기는 한걸까라는 물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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