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이일영 외 지음 / 지식공작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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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사람이 사회에 무수한 발자취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 속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슬픔 속에 남겨졌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행했던 일은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82)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신이 발견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던, 지난 7월 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문구다. 7월 10일 오전이 기억난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뉴스를 보던 남편이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알렸다. 사무실에서는 온종일 '이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죽음의 원인을 추측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을 걱정하고, 정치적 의견까지 오갔다. 한 정치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여러 결로 확장되고 추측되는 상황이었다. 지식공작소의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는 그 상황이 고스란히 활자로 녹여져있다. 책은 사회를 맡은 이일영(교수)과 세 명의 패널, 이인미(시민단체 활동가), 이재경(역사학과 정치학 전공자), 도이(정치 활동가)가 2020년 7월 24일 '젠더 좌담회'에서 다룬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좌담회는 박원순 시장 유고 사태를 비롯해 여성에 대한 인식, 미투, 페미니즘, 안희정 전 지사 사건, 정치적 권력 등에 대해 얘기한다. 가장 먼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당선되기 전까지, 1993년 서울대 성희롱 사건의 변호를 맡아 승소했고, 양성쓰기 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에 힘 쏟으며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혼동의 감정을 야기했다. 이일영 교수는 좌담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공격을 받는다"며 "(이것은) 이야기를 하면 양 극단으로 맥락이 만들어져 어떻게든 공격이 나오기 때문(p.26)"이라고 말한다. 이재경 님이 경험한 카톡방 사례도 등장한다. 누군가 추모글을 올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들이 받고, 말이 없던 몇 사람이 우르르 나가는 상황. 이것에 대해 이 교수는 "삼분의 일과 삼분의 일이 싸우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숨는다."며 "우리 사회가 세 쪽이 난 셈"이라고 얘기한다. 한쪽은 박, 다른 한쪽은 피해자, 나머지는 회색분자가 되는 셈이다.

박원순의 죽음과 고소가 함께 회자되며 '사건'에 대한 입장은 주로, 두 가지로 나눠졌다. (1)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성폭력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2)피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것=페미니스트 또는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는 것. 프레임 양 끝에는 박원순과 피해자가 서 있다. 이것은 박원순 전 시장의 죽음이 보도된 후 더 선명해졌다. 서울시장(葬)이 도마위에 오르며 정치적 색이 덧입혀졌다. 쉽게 생각하려는 걸까? 하나의 논점으로 정리하고 싶은걸까? 혹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패널 이재경님의 "추모와 슬픔이라고 하는 감정과 이 피해자 문제를 좀 분리해 생각하고 싶다. (p.25)"고 말한다. 진일보한 정치인이라 믿었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문제와 그 사람이 행한 성 관련 이슈는 별개의 것으로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대자보의 핵심이 이것이리라.

패널들은 '정치권력'도 논의한다. 이일영 교수는 "뛰어났던 존재가 막다른 길에 몰려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걸 보면 정치권력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p.27)"며 "권력이 주어졌을 때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게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인가 보다 하는 공포감(p.28)"이 든다고 말한다. 공포감. 이것이 박 전 시장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생명'과 맞닿은 공포였을 것이다. 반면, 안 전 지사의 피해자 김지은 씨는 다르다. 그녀는 '언짢게하면 안되는' 사람을 모시는 수행비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면 직장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여러차례 말을 했지만) 쉽게 말을 하기 어려웠다'고 수차례 언급한다. 이것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 대해 느끼는 공포다. 결국 정치권력은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박 전 시장의 사건과 안 전 지사의 사건, 유사해 보이는 두 사건에는 두 명의 피해자가 등장한다. 박 전 시장의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들끓었을 때 정치인과 연관된 사건에 호기심이 생겨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었다. 틈틈히 읽으려 책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지나가며 책 제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많이 순화한 표현이다) "그 사람 책도 냈어? 별일이네" "뭐 그런 책을 읽어?"였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고통이 간접적으로 전이돼 힘들었고, '그저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주변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상처받았다. 이게 왜 아무일도 아니지? 묻고 또 물었다. 보통 두 사건의 피해자들을 비난하며 입막음 시키는 공통적인 의견이 하나 있다. 바로 "그때 얘기했어야지" 라는 것. 책에는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반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논의도 나온다. 이인미 활동가는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죽여야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양육된다는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고 그걸 행사할 수 있을까? (p.37)"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 역시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배우며 성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으면서도 피해자로 수렴되는 삶보다는 나아가고 발전하는 삶을 지향하라는 목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걸까.

얼마 전, 일년간 휴직하고 돌아온 (연차 차이 많이나는) 남자선배가 복직했다.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있던 나를 엘리베이터에서 본 그는 "혹시 임신했어? 좋아보이네?"라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살쪘다고 놀리시는 건가요?"라며 받아쳤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동료들이 순식간에 모두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놀림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주변에 있던 몇명의 동료들이 '요즘 그런 얘기하면 큰일나'라고 농을 칠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됐다. 다수의 눈빛과 웃음이 내내 기억에 남아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몇 시간을 앉아 사건을 복기하다 용기를 내서 그 분을 따로 만났다. 이래저래해서 기분이 나빴고, 그런 말은 앞으로 삼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는 내가 이와 관련해 어떤 처분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다며(회사안에는 성희롱 관련 정식 절차가 존재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선배는 왠지 다시 마주치고 싶지가 않다.

책에는 '온정적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온정적 차별이란, '저 사람이 선한 의도로 말했다는 게 다 보이지만 나에게는 불편한 차별 (p.57)'이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안 그러자니 마음이 불편한 그런 차별. 결은 서로 다르지만 박 전 시장의 피해자도, 안 전 지사의 피해자도, 그리고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던 나도, 한 켠에는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차이가 있다면 빈도와 강도였을 것이다. 책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여러 '성'관련한 사건을 담고 있다. 박원순에서 시작해 안희정, 이윤택, 고은 사건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와 이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공식발표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사건의 진짜 사안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568p에 달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건관계자들 눈에 안보이는 것 같아 답답했고,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우리나라 성 관련 사건들이 도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암울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과, 남녀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의 결은 많이 다른걸까.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려운 걸까. '#피해자와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 대신 '한 사람이 바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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