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는 양예원씨의 ‘합정(동) 불법 누드 촬영 수사 및 진상 규명’관련 사건 청원에 동의 버튼을 누른 수지가 등장한다. 수지는“용기 있는 고백에 힘을 보태 주고 싶었다”말하지만 누리꾼들에게 뭍매를 맞고 만다. 그러자 “그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 (p.82)”고 말했단다. 사안에 대한 연관단어가 만들어 낸 두려움에 급히 의견을 철회하고 싶은 모양으로 읽혔다. 아마 수지도 그런걸 느끼지 않았을까? 피로감. 그래서 없던 일로 덮고 싶은 마음.
문득 ‘페미니즘(feminism)’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단어의 어원에 따라 ‘메니즘(menism)’혹은 ‘메니미즘(menimism)’정도 될까 싶었지만, 그런 단어는 검색되지 않았다. 조금 더 찾아보니 평등주의로 읽히는 ‘이퀄리즘(equalism)’이 페미니즘 반대말의 근사치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주요 객체일텐데 여성과 연관된 페미니즘만 개념어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의 단어'라기 보다 젠더를 바탕으로한 인간 관계를 분석한 개념이기 때문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남성들의 어떤 사상과 관계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즉각 여성 혐오와 연관되는걸까?
거울을 손에 든 채 ‘못된 남자가 욕한 그대로 돌려 주는 데’ 매이지 않고 여성 삶을, 아니 한국 사회를 ‘고르고 판판하게 바꿔 보자’고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p.57)
이에 대해 이은용 기자는 책에서 여러 증거를 든다. 책 <못생긴 여자의 역사>를 지은 클로딘느 사게르는 ' 마녀'가 “독신 혹은 과부로 흔히 아이가 없으며 당대 사회의 가치와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를 가진 독립적인 여성(p.27)”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또 "가난하고 힘없는 남자일수록 ‘여성을 제대로 알거나 함께 살 기회’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홀로 선 채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p.28)"고 덧붙인다. 즉, 힘없는 남자들 사이로 두려움이 퍼지고 이게 마녀 허상을 만들고 점차 혐오의 틀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책에서 마지막 쐐기를 밖는다. “힘센 여성 때문에 나와 내 삶이 쪼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솟자 남자들끼리 은근히 ‘여성을 하찮게 여겨 깔보는 짬짜미’를 이뤘다. (p.28)”라고. 여성과 혐오가 유닛처럼 붙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가 남성 중심 사고의 표현이고 그들끼리 만들어낸 ‘남자들의 짬짜미’라는 분석이다.
남성 기자분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여러 뉴스와 현재의 이슈를 페미니즘과 버무려 쉽게 설명한다. 강남역 살인과 마녀사냥에서 시작해 메갈리아 워마드, 아이돌 페미니즘, 김학의, 안태근, 안희정, 불꽃페미액션 등. 기자의 시각이어서일까? 글은 굉장히 중립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책에는 새로운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톺아보기(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기), 핫아비(유부남), 매조지(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는 일) 등. 숫자나 영어 표현을 쓸때도 한글로 적는다. 시시 티브이(CCTV), 시월 3일 이런식으로. 이은용 기자는 책날개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꾸준히 올곧고 이로운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진다"고 했다.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든, 세상의 한 단면을 그의 표현대로 '톺아보아' 책을 낼 수 있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생태계의 다양성은 중요하면서 젠더의 다양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사회, 인권은 중요하면서 여성의 그것은 나중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우월주의, 요즘의 뜨거운 감자 N번방과 얽히며 여러 생각할 지점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저자는 말미에 "귀 기울일수록 한국에 사는 남자로서 많이 낯부끄러웠다. (p.192)"고 말한다. 또 "페미니즘은 오랜 가부장제 때문에 비틀어지거나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생각이자 움직임입니다. (p.188)"라고 정의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으면, 그래서 귀 기울이고, 조금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