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페미니즘하다 더 생각 인문학 시리즈 11
이은용 지음 / 씽크스마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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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앱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 성 착취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초등학생, 중학생 등 미성년자가 대다수, 가해자는 수십만명으로 추정된다. 가장 전문적이고 처리가(?) 확실하다는 박사방의 경우 최소 74명의 회원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착위 영상물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인문학자 임옥희의 책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에서 “정보가 넘쳐날수록 익명성 속으로 가라앉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점점 더 극악스럽게 혐오 강도를 높여 간다”고 말한다. 메신저 앱에는 포토라인에 선 자에대한 추모방이 생긴다고 한다. 당사자는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마치 그들에게 '악마'란 상징적이며 거대한 권력으로 보이나보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 악마를 '낭만화'해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익명성에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요구조건으로 혐오 강도를 높였던 그들의 소식에 임옥희의 분석이 새삼 와닿는다.

기자 이은용은 대학생이 된 아들과 대화를 주고 받다가, 또래 친구 하나가 성추행 피해를 세상에 알린 양예원씨를 비웃으며 놀린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경찰서에 불려간 일을 듣게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생각하던 기자 이은용은 ‘혐오’라는 말을 떠올린다. “세상 그 누구든 컴퓨터 자판 위 손가락 따위가 빚은 혐오 때문에 괴롭거나 아프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p.11)”라고 생각한 그는 그렇게 여성에 대해,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관계에 대해 톺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기자 이은용은 책 <나, 페미니즘하다>을 세상에 내놓는다.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은 다소 피로하다. 어떤 사안을 페미니즘의 기준 아래에 둘 때, 보통 나는 약자이거나 피해자다. 목이 막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 힘을 내 소리를 내더라도 혼자 오해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 일쑤다. 용기내 기준선 위로 끌어올리면, 얘기를 듣는 누군가의 생각은 곧 잘 ‘여혐’에 닿는다. 의도와 상관없이 여성의 어떤 것을 논하는 건 페미니즘이고 이건 여성 우월주의에 따라 남성 불평등을 조장해, 결국 여성혐오와 연결되는 사고체계. 지금까지 경험한 페미니즘은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책에는 양예원씨의 ‘합정(동) 불법 누드 촬영 수사 및 진상 규명’관련 사건 청원에 동의 버튼을 누른 수지가 등장한다. 수지는“용기 있는 고백에 힘을 보태 주고 싶었다”말하지만 누리꾼들에게 뭍매를 맞고 만다. 그러자 “그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 (p.82)”고 말했단다. 사안에 대한 연관단어가 만들어 낸 두려움에 급히 의견을 철회하고 싶은 모양으로 읽혔다. 아마 수지도 그런걸 느끼지 않았을까? 피로감. 그래서 없던 일로 덮고 싶은 마음.

문득 ‘페미니즘(feminism)’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단어의 어원에 따라 ‘메니즘(menism)’혹은 ‘메니미즘(menimism)’정도 될까 싶었지만, 그런 단어는 검색되지 않았다. 조금 더 찾아보니 평등주의로 읽히는 ‘이퀄리즘(equalism)’이 페미니즘 반대말의 근사치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주요 객체일텐데 여성과 연관된 페미니즘만 개념어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미니즘이 '여성의 단어'라기 보다 젠더를 바탕으로한 인간 관계를 분석한 개념이기 때문이거나 그도 아니라면,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남성들의 어떤 사상과 관계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즉각 여성 혐오와 연관되는걸까?

거울을 손에 든 채 ‘못된 남자가 욕한 그대로 돌려 주는 데’ 매이지 않고 여성 삶을, 아니 한국 사회를 ‘고르고 판판하게 바꿔 보자’고 말하기 시작한 겁니다. (p.57)

이에 대해 이은용 기자는 책에서 여러 증거를 든다. 책 <못생긴 여자의 역사>를 지은 클로딘느 사게르는 ' 마녀'가 “독신 혹은 과부로 흔히 아이가 없으며 당대 사회의 가치와 규범에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를 가진 독립적인 여성(p.27)”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또 "가난하고 힘없는 남자일수록 ‘여성을 제대로 알거나 함께 살 기회’가 없었고 경제적으로 홀로 선 채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p.28)"고 덧붙인다. 즉, 힘없는 남자들 사이로 두려움이 퍼지고 이게 마녀 허상을 만들고 점차 혐오의 틀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책에서 마지막 쐐기를 밖는다. “힘센 여성 때문에 나와 내 삶이 쪼그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솟자 남자들끼리 은근히 ‘여성을 하찮게 여겨 깔보는 짬짜미’를 이뤘다. (p.28)”라고. 여성과 혐오가 유닛처럼 붙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가 남성 중심 사고의 표현이고 그들끼리 만들어낸 ‘남자들의 짬짜미’라는 분석이다.

남성 기자분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분석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여러 뉴스와 현재의 이슈를 페미니즘과 버무려 쉽게 설명한다. 강남역 살인과 마녀사냥에서 시작해 메갈리아 워마드, 아이돌 페미니즘, 김학의, 안태근, 안희정, 불꽃페미액션 등. 기자의 시각이어서일까? 글은 굉장히 중립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책에는 새로운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톺아보기(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기), 핫아비(유부남), 매조지(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는 일) 등. 숫자나 영어 표현을 쓸때도 한글로 적는다. 시시 티브이(CCTV), 시월 3일 이런식으로. 이은용 기자는 책날개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꾸준히 올곧고 이로운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마음을 다진다"고 했다.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든, 세상의 한 단면을 그의 표현대로 '톺아보아' 책을 낼 수 있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생태계의 다양성은 중요하면서 젠더의 다양성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사회, 인권은 중요하면서 여성의 그것은 나중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우월주의, 요즘의 뜨거운 감자 N번방과 얽히며 여러 생각할 지점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저자는 말미에 "귀 기울일수록 한국에 사는 남자로서 많이 낯부끄러웠다. (p.192)"고 말한다. 또 "페미니즘은 오랜 가부장제 때문에 비틀어지거나 잘못된 걸 바로잡으려는 생각이자 움직임입니다. (p.188)"라고 정의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익힐 수 있었으면, 그래서 귀 기울이고, 조금 더 나은 세상 만들기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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