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문학 선집
야마시로 세이츄 외 지음, 곽형덕 편역 / 소명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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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 미군기지, 일본의 섬. 오키나와에 대한 인상이다. 어느 예능 프로에서 “오키나와에서 가장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라는 문제가 나왔다. 소바 혹은 라면을 예상했는데 정답은 스테이크였다. 해안가라 고기를 더 좋아 하나 싶어 의아했던 기억. 미천한 지식의 표출이었다.


곽형덕 명지대 교수의 <오키나와 문학 선집>은 1910년부터 2019년까지의 오키나와 작가 11명의 소설 12편과 시 16편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편역자 곽형덕은 서문에서 “오키나와를 식민지 조선이나 타이완과 이어서 사유하고,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비극이 함축된 공간이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한 장소로 인식하게 된다(p.3)”고 말한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함의에 접근할 수 있다.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본섬과 인근의 여러 섬을 포함하는‘오키나와 제도’를 말한다. 과거에는 인접한 여러 제도를 영향 아래 둔 독립 국가로 ‘류큐’라 불렸고, 1879년 메이지 시대에 류큐 왕국이 ‘류큐처분(1879)’이라는 과정을 통해 강제로 일본에 속국으로 편입되며 ‘오키나와’로 불리게 된다. 이때 많은 주민들이 일본인의 차별과 박해에 시달리는데, 이때의 상황은 책에 수록된 소설 <쓰루오가라는 남자>, <우쿠마누 순사>, <멸망해가는 류큐 여인의 수기>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야마시로 세이츄의 작품 <쓰루오가라는 남자>에서는 당시 오키나와인의 복잡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서는 작가인 ‘나’가 ‘쓰루오가’라는 남자를 관찰한다. 둘다 류큐 출신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본토에서 성공한 작가이고, 쓰루오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말에는 쓰루오카를 굉장히 귀찮고 짐처럼 느끼는 표현이 다분히 등장한다. 여기서 쓰루오카의 행동거지는 술자리에 동석한 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자신도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등 신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쓰루오카가 술에 취해 류큐의 민요를 부른다. 이것은 오키나와가 일본의 속국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자신의 출신을 부정당하고 이를 드러낼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읽힌다.


일본의 속국이었던 오키나와는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과 미국의 격전지 였다. 그 과정에서 오키나와 현지인들이 수류탄으로 자결하거나 가족끼리 서로 죽이는 등의 비극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약 12만명의 사망자를 냈다는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다. 하지만 이때의 오키나와 희생자들은 일본에서 ‘추도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 일본 정부는 현재까지도 유해 발굴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이때의 감정들은 <흑다이아몬드>, <노숙>, <여름에 어울리는 하룻밤>, <2세>, <A사인바의 여자들>, <소싸움장의 허니>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오시로 다쓰리로의 <2세>였다. “오시로 다쓰히로는 ‘오키나와인은 누구인가’, ‘일본인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있다(p.237)”고 오키나와문학 연구자인 손지연은 말한다. 1957년에 발표된 <2세>는 오키나와전쟁에 미군으로 참전한 오키나와인 2세, 헨리 도마가 등장한다. 헨리는 미국에서는 일본인이지만, 일본과 오키나와에서는 미군이다. 동생을 찾다가도 참호로 돌아가려하고, 오키나와에 있던 동생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고통스러워한다. 이중간첩과 같은 위치에 있는 헨리는 복잡하고 모호한 자기정체성을 아프게 드러내는 당시의 오키나와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속국, 미국의 지배를 견딘 오키나와는 결국 본토 복귀운동을 통해 1972년 일본으로 편입되고,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된다. 위 두 시대에 포함되지 않는 <등대는 배>, <산딸기>, <숲>, <버들붕어>는 현재의 오키나와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서문이나 해설을 보면 오키나와 문학 관계자들은 그곳의 지리적 탐구를 시작으로 작품들에 접근해가는 것 같다. 반대로 오키나와 문학의 문외한인 나는, 이번 선집을 읽으며 오키나와의 역사와 지리적 특징을 아주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또 그간 무감했던 오키나와의 작가들의 삶과 정체성 회복에 대한 강한 열정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문학은 언어를 예술표현의 제재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인간과 사회를 진실 되게 묘사하는 예술”이라는 문장이 있다. <오키나와 문학 선집>에 엮인 작품들과 작가들이 오키나와에서 실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바다 건너 타국의 한 사람에 불과한 내가 이번 선집을 읽으며 오키나와라는 곳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게 바로 진정한 문학의 힘이 아닐까. 천혜의 자연, 미군기지, 일본의 섬이었던 오키나와는 이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동아시아 냉전의 비극이자 새로운 삶을 향한 오키나와인들의 마음이 투영된 공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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