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 - 7년 차 카피라이터가 전쟁 같은 회사에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오하 지음, 조자까 그림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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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번뜩이는 재치와 촌철살인의 멘트를 툭- 치면 탁- 하고 내뱉는 사람들의 영역이라 여겼다. 또 광고계의 카피라이터란, 인물과 핵심메시지와 여백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한 문장을 창조해내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업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좋은 패스는 달리는 사람에게 날아간다>로 살펴본 광고계와 카피라이터는 정녕 그런 것으로 보인다


작가 오하, 외국계 광고회사 TBWA KOREA의 7년차 카피라이터다. TWBA는 네이버 웹소설 - 수애가 <재혼항후>를, 변요한이 <장씨세가 호위무사>를 연기했던 바로 그 웹소설 - 광고를 담당했던 회사다. 책은 후후룩 보게 되는 웹소설처럼 짤막한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꼼꼼히 줄 그으면서 생각하며 읽게된다. 문장 하나, 그림 하나에 자꾸 눈이 걸려 오래 보게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과 일과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회사 안에서의 시간은 결코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렇게 앉고 싶던 자리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떠나고 싶은 자리가 되어 있었다. (p.4)


프롤로그 두 번째 문단에 위치한 이 문장부터 나는 사로잡혔다. 와닿았다. 책은 광고계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펼쳐놓는다. 툭툭 성의없이 말하고 건성건성 그린 것 같은데, 한 문장으로 몇 초의 감각을 사로잡는 광고같은, 바로 그런 식이다. 글과 그림으로 독자의 머리와 눈을 끌어당긴다. 독자들은 순간순간 ‘아,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런데’라며 위로받게 된다.


이 뿐이 아니다. 책은 ‘광고는 어떤 분야인가’도 알게 한다. 기획하고, 콘티짜고, 연애인 섭외해서 촬영하면 끝. 정도로 알았던 광고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첫 번째,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을 알 수 있다. 광고에는 제작 파트를 총괄하는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고, 광고의 비주얼을 담당하는 AD(아트디렉터) 그리고 광고의 글을 책임지는 CW(카피라이터)가 있다. 두 번째, 광고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광고 제작은 기획 - 아이디어 - 촬영준비 - 촬영 - 편집 - 광고주 시사 - 온에어의 과정을 거친다. 한 줄로 요약되는 각 단계 사이사이에는 아이디어를 모으고, 보고하고, 컨펌받고, 협의하고, 조율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등 인내심을 요하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끝난 후, 숨돌릴 틈도 없이 그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나는 미친 듯이 보고서를 쓴다. IT강국에서 IT기업 답지 않게 매일 보고서만 쓴다. 다 쓴 보고서는 종이로 출력해 컨펌을 받고, 결정권자는 빨간펜으로 첨삭을 한다. 초등학생인가 싶은 이 과정을 열번쯤 하면 버전1 문서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을 수백번 반복하다 드디어 보고라인에 태울 보고서(대충 30정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보고라인을 한 단계 탈 때마다 뒤짚히고 엎어지고를 반복하고, 보고서 버전은 세 자리로 넘어가기 일쑤다. 하여 오하 작가의 이야기를 보며 ‘참 힘들겠다’ 싶지만, 동시에 ‘나만 그런것도 아니구나’ 싶어 살짝 위안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광고’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진다. 작가는 지금 분명한 건 나는 나의 일을 좋아하고 있고,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p.4)”고 말한다. 나아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제대로 잘 해내고 싶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유의미한 사람이고 싶다. (p.5)”고. 이게 바로 이 책의 목적이리라. 더럽고 치사해 매 시간 퇴사를 꿈꾸더라도 필요한 감각을 키우고, 콘텐츠를 만들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속한 광고라는 분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은것 아닐까. 이 바닥이 힘들지만 우리에겐 오늘과 내일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다같이 버텨보자고.


마음을 후벼파는 문장들이 여럿있었다. 그 중 하나가 <칭찬을 꺼내 먹어요>다. 신입사원 시절, 40명이 모여있는 워크숍 자리에서 “칭찬 좀 자주해줬으면 좋겠다.”며 오열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없어질 지경이지만, 당시 나는, 진짜, 몹시, 칭찬에 목말랐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고, 꾸역꾸역 어렵사리 하나라도 하고 나면, 칭찬은 커녕 욕만 먹기 일쑤였다. 매일 욕을 먹고 나니, 스스로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뚫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PM이 나에게 “책임감있게 하는 모습이 좋아요.”란 말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후 나는, 무엇을 맡든 책임감있게 해내려고 노력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애석하지만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없고, 신은 성장과 고통을 늘 세트로 주신다. 그나마 덜 억울한 점은, 고통으로 배운 경험은 온전하게 내 것이 된다는 사실 정도일 거다. 하여튼 세상은 그냥 주는 법이 없다. 억울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신이 아닌데. (p.248)


참 매력적인 책이다. 그림도, 글도, 반해버렸다. 무엇보다도 광고를 사랑하며, 이 애정으로 업계와 동료들을 지탱하려는 작가의 다부진 자세가 참 멋있다. 오하 작가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함께 버티고 인내하면 오늘과 내일을 이어줄 좋은 패스가 올거다’라는 확신이 있어서 일 것이다. 작가는 고통의 늪에서 성장을 봤고, 억울이라는 우물에서 빛을 찾았다. 멋진 사람의 스토리, 누구에게가 감동적으로 다가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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