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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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는 장정일 아저씨의 구월의 이틀. 언제나 그렇듯 재독의 묘미를 안겨 주었는데 오늘은 그의 마지막 문장부터 곱씹고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누군가는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근착하고, 누군가는 착근에 실패하고 옛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새롭게 고향을 만들지 못하고 옛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은 거기서도 잘살지 못한다. 이주에 실패한 경험이 고향에까지 따라와 그를 조롱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 방황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시베리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패배를 들키지 않을 장소,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장소, 내 영혼에 영성을 부여할 성스러운 장소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남한만으로는 너무 좁아서, 고작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갈 뿐이다. 

생각해 보니 장정일의 작품은 고급스럽지는 못하다. 이번 작품 역시 좀더 여성스럽게 세밀하고 고급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난 그에게서 채우지 못한 고급스러움에의 욕망을 배수아를 통해 공급받느라 한 작가가 아닌 언제나 장정일과 배수아로 무슨 셋트처럼 묶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여자들이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가 지금 내가 장정일과 배수아를 반드시 함께 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장차 보수와 진보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각각 금과 은을 키워냈다. 당연히 시작은 금과 은의 고등학생 시절과 서로에게 다른 서울이 의미가 되어야 했다. 서울 말씨를 싫어하지만 남몰래 경상도 억양을 지우려 노력하거나, 동성애라는 사실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속여야 함을 알게 되는 등의 모습은 은이 약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나라를 이끌 10%가 돼야 하는 진정한 보수 청년이 될 것이란 사실이 은근히 감추고 시작하는 이 책. 

은과 금의 이사 시점에 사고 현장을 넣은 까닭이 궁금했었고, 스스로 이유를 찾지 못해 아쉬웠는데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 정일 아저씨가 이번에만은 모든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에 가서야 알았다. 현장을 보고 구토하는 금과, 추상화를 보듯 아무 감정 없이 감상하는 은, 여기서 문학작품을 읽지만 현실에 냉철한 은과 문학의 ㅁ도 모르지만 현실을 자신도 모르게 구토를 통해 표현해 버리는 금이 드러나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말 잘하고 오지랖 넓은 금은 문학으로써 무지렁이를 일깨울 작가가 되고, 사사로운 일보다 큰 것에 더 현실적으로 대처할 은은 실제로 잡히는 이 나라를 이끌 10%가 될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은은 정치에서 금은 문학에서 무지한 민중을 이끄는 멋진 인재들이 되어 갈 것이란 얘기겠지.

또한 사고 현장에서 죽은 그 아이, 엄마와 아빠가 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진정한 뉴라이트 우파가 될 아이였기에 부모를 죽이고 아이만 살려 둬야만 했던 의도적인 설정이었다. 그래, 사실 글이라는 것은 이렇게 온갖 설정이 난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이나 은 그리고 사고현장에서 살아 남은 어린 아이들이 장차 훌륭한 인재가 돼서 나라를 좀 편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요즘 들어 갑자기 사회적인 분야, 특히 여성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사회라는 것에 관심이 지대해지고 있는데 앞으로 읽게 될 책 목록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31쪽 밑에서 4줄,116쪽 밑에서 8줄 : 되요 -> 돼요

166쪽 2줄, 해석할 밖에 -> 해석할밖에

213쪽 2줄, 갖다왔다는 -> 갔다왔다는

232쪽 6줄, 자기도 몰래 -> 자기도 모르게

256쪽 3줄, 새벽 1까지 -> 새벽 1시까지

290쪽 밑에서 8줄과 밑에서 4줄, 둘러매고 -> 둘러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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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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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속에 또 작가가 있어 큰 구성의 작가가 작은 구성의 작가의 작품을 세밀히 분석하며 쓰고 있다. 액자식이라고 하기엔 그보다 더 새로운 느낌의 이 작품, 초반에는 몰입이 잘 안 되다가 100쪽을 넘기는 순간부터 무섭게 집중이 되는 특징이 있는데 겨우 두 작품째 읽는 그의 것이지만 장미의 이름 또한 그랬던 기억이 난다.   

검술의 비법을 전술할 때, 벌판에서 승마를 가르칠 때, 곡식을 까먹는 새들을 욕할 때 쓰는 말이 다른 로베르토의 아버지 포초가 칼에 손을 베었을 때 카르멜 수사(로베르토의 스승)가 달려와 치료약을 상처가 아닌 칼날에 바르는데 그것은 아랍의 비법으로 그 칼날이 상처에 남겨 놓아 치료를 방해하는 쇠 성분을 빨아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끝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공명약이다.  

생사뱅이란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신이란 것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마련한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당시의 기준으로 역사적 일들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한다. 신기하게도 움베르토 에코는 자기가 신을 의심하던 시기의 모습을 꼭 작품 속 한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데 이 작품에선 생사뱅이 그렇다. 거기다 엄청난 달변이다, 박식과 뻔뻔함까지 겸비한 그는 로베르토가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다닌 허상 페란테 생성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 주는데 이것은 마치 주니어 플라톤 4학년 과정에서 나왔던 '찰스'라는 제목을 가진 어떤 유치원생 이야기와 똑 닮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과 죄의식을 회피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허상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부모나 선생에게 실제로 있는 듯 꾸미기도 하는데, 이런 내용을 성인이 된 로베르토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것은 비단 어린 아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매력쟁이 생사뱅을 책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죽여 버리다니, 작가님!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시지, 아쉽습니다요! 

작가는 책장을 넘길 때 침이 묻는 상황을 중요한 단서로 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책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책에 독을 묻혀 놓아, 묻힌 침을 통해 독을 몸 속으로 들여 보내 책을 본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장미의 이름도 그렇고, 스파르 신부가 역질에 걸렸음을 주장하기 위한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 역시 그렇다. '다 알다시피 역질은 점액을 통하여 전염하는 것입니다. 책 임자는, 책을 읽으면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겼을 테지요? 그 책장에는 전염병의 독성이 스며들어 있었을 겁니다. 책 임자가 그 독성 때문에 역질에 걸렸을 터입니다. 신부님도 그 독성에 전염된 것임에 분명합니다.' 

신부와 로베르토가 성서의 허와 실을 따지는 부분은 따로 저장해서 가지고 있다가 때때로 읽으면 재미있겠다. 책 362쪽부터인데 이곳에 쓰기엔 너무 길고 메모장에 따로 적어 보관할 생각이다.  

홀로 배에 탔다가 어느 순간 틈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얻은 로베르토 인생의 귀중한 보물 카스파르 신부. 신부가 말도 안 되는 진지함으로 자살이나 다름없는 바닷속 걷기에 의해 사라지고 급기야는 페란테를 다시 불러 그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로베르토, 그것도 그가 사랑하는 릴리아를 빼앗는 페란테로. 

612쪽에서 나오는 바퀴는 책의 초반에 에마누엘레 신부가 얘기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장치와 흡사한데, 바퀴는 그것보다 더 진화된 것으로 끊임없이 낱말을 끄집어내 조합시켜 이야기를 만들 수가 있다. 그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걸까? 단어들을 조합해 글을 쓴다는 식? 물론 그게 기본적인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내게는 글 써지는 기계 같은 건 좀...그런 반면에 또다른 자신인 페란테를 질투하면서도 자신이 쓰는 글에서는 그와 릴리아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변을 따뜻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펜으로써 생성해 준다, 스스로는 아주 고통스럽지만. 그렇다면 단어기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 또는 힘이 합쳐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얘기로 이해해도 무방하겠지? 

자오선, 바로 전날의 비밀! 작가는 시간 구분 선인 이 선 하나를 가지고 700페이지 가량의 글을 쓰면서 온갖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물 등을 쏟아 놓는데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자오선과 비슷한 죄인과 죄인 아님의 경계를 통해 결국 자오선의 능력은 별다른 소용이 없음을 말하고 싶던 걸까? 각설하고 유다의 이야기를 해보자.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저런 나는 내 생각만 했군요. 하지만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내가 한 것을 그대로 두면 나는 저주받은 채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만일에 내가 진작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이 또한 영원한 저주의 형벌입니다. 그렇다면 한 처음부터 나의 운명은 저주를 받도록 저주받았던 것일까요? ' 이런 식으로 책 속에서는 줄곧 성경의 내용에 대해 조금은 진지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투가 너무도 장난스러운 나머지 독자인 나까지도 수렁에 빠져버리고 만다, 성경 해석의 수렁에. 거기다 그리스도 해방을 놓고 다투는 로베르토와 페란테, 두 명의 나, 구운몽.  저자가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다고 말하는, 앞으로 더할 거라고 로베르토의 열병을 핑계로 엄포까지 놓는 이 작가의 자신감! 대단하다, 대단해. 도대체가 그의 이런 구성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걸까? 

작가는 643쪽에서야 드디어 밝히는 이 한 문장의 말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과 인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두터운 책 속에 살려 놓았다. '우리가 존재의 기적 속으로 던져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원히 풀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의 방황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돌의 생각에 관한 역설적인 사고의 연습 ' 은 절반 분량으로 딱 잘랐어야 했다. 초반에 인간과 돌을 비교하며 존재를 탐구하는데 이게 처음엔 몰입이 아주 잘 되는데 자꾸 반복하고 길어져서 급기야 짜증이 다 인다, 다 좋은데 이분은 말이 너무 많다. 

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로베르토는 결국 페란테를 죽여서 아무리 아무리 몸을 해부하고 찢어도 죽지 않는 곳에 데려다 준다. 화자의 말로는 로베르토가 이제 허구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이상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결론은? 

결국 배를 불태우고 자신의 소설 속 릴리아를 만나러 전날의 섬을 향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로베르토, 그리고 쩜쩜쩜. 쓰는자로서의 실험, 그것도 계속 독자들에게 '로베르토의 기록이 진짜 있던 것이게 아니게' 하며 보는 자들을 놀리는 이 대담함. 소설이 지니는 효과를 상실하기 위해 쓴 듯한 그의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아주 즐거운 바다와 삶의 여행이었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4쪽, 두리뭉실 -> 두루뭉술(몇 번째 줄인지 메모가 안 돼 있어 찾았지만 없다, 아무튼 그래도 14쪽 근처 어디엔가 있었다) 

143쪽 밑에서 12줄 , 배가 내렸다 -> 비가 내렸다. 

218쪽 밑에서 9줄, 풍부하고 -> 풍부하게 

268쪽 6줄, 전설상의 섬이라는 -> 섬이라고 말하는 

346쪽 13줄, 겉잡을 수 -> 걷잡을 수,  밑에서 7줄, 부수뜨린 -> 부숴뜨린 

424쪽 밑에서 4줄, 무엇가를 -> 무언가를 

427쪽 밑에서 4줄, 고향을 -> 고향에 

497쪽 첫줄, 기술이 는 것이 아니었다 ->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500쪽 밑에서 13줄, 물 위서 -> 물 위에서  

502쪽 밑에서 3줄, 가리키는 -> 가르치는 

515쪽 밑에서 14줄, 야심이 -> 야심에 

589쪽 7줄, 깃들 수 있가 -> 깃들 수 있는  

600쪽 끝에서 2줄, 고통을 -> 고통에 

618쪽 밑에서 12줄, 바위틈이 -> 바위틈에 

640쪽 밑에서 6줄, 호도 -> 호두 

645쪽 밑에서 9줄, 우주이라는 -> 우주라는  

684쪽 끝, 그를 -> 그와 함께 

2009년에 벌써 18쇄를 찍어놓고도 이렇게 오탈자를 내버려 둔 게으른 열린 책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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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천년대
박민규 외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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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박민규>

참 잘쓴다. 질투가 나서, 참고 있던 커피를 타 마시고 말았다.
공감할 사람들이 많을 이야기. 대한민국 국민 아들 딸 중에 집 형편이 기울어 내 살 길 없이 그저 돈벌이가 삶이 돼야 하는 경험을 했던 그들이 있다면 아침마다 푸시맨을 하며 출근하는 아버지를 열차 속으로 밀어야 했던 그의 마음을 잘 알겠구나. 특히 1997년을 겪은 내 나이 언저리의 사람들은.

<입김 - 천운영>  
작가 사진이 없는 단편 모음집. 덕분에 글만 보고, 이름만 보고 성별을 맞힐 수 있는 재미를 붙였는데, 이 분은 남자가 맞을까?
'낫, 낫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로 끝나는 이 단편, 늙고 약하고 비쩍 마른 기술도 갖고 있지 않은 남자, 그는 왜 사무실에 낫을 들고 들어갔을까? 왜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 두었을까? 행동은 보란듯이지만 의도는 알 수 없다는 듯 표현하는 형식.
뻔한 결말 죽거나 죽이거나. 

<아홉 개의 푸른 쏘냐 - 김재영>
굳이 러시아 여자 소냐의 대사를 러시아어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현학적 글쓰기 하는 게 싫은 만큼 배운 사람의 아는 척은 별로 좋지 않다. 나는 어려운 것을 읽을 줄 알되, 쉽게 표현하고 설명할 줄 알아야 잘 쓰는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이니.
마치 영어를 배우는 내 '친구(남자)'가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영어로 써서 보내는 그가 역겨워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욕설 정도만 러시아어, 그러니까 러시아어를 배웠다면 대부분 알아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것만 썼다면 좋았을 것을.
원래는 무용단이었고 같은 일을 하러 한국에 온 러시아 여자가 봉춤을 거쳐 매춘까지 하게 되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흔한 이야기. 지나치기 쉬운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잡았으니 칭찬할 만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런 생각은 이제 지루하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김애란>
그녀의 이번 글, 마음에 든다. 이미지를 위해 '벌레들' 같은 작품은 그냥 좀 혼자 연습하고 이런 글들만 싣길 바라는마음.
아버지와 아들, 참 귀엽고 담백하고 재미나다. 성석제 아저씨의 글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 아이는, 복어를 먹으면 독이 퍼져서 죽는데 먹는 날 잠을 자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겠지? 아버지 같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 김중혁>
삶의 큰 존재 엄마를 잃은, 지도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느 아들.
에스키모인들을 연구하는 그의 삼촌처럼, 먼 곳에서 이곳에 와 나와 함께 있자 제의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엔 난 모아놓은 돈도 능력도 부족하다, 잘 알고 있다. 그는 과연 삼촌 곁으로 갔을까?

<얼굴 없는 사나이 - 김윤영>
작가의 여성관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자들이란, 인간세상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들 같다. 라든지,
나는 가끔 지하철을 타면 앉아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다 아니다 하면서 속으로 판별하는 습관이 있다. 그 때마다 처녀도 아닌 것들이 처녀인 척 도도하게 앉아 있는 걸 보면 가증스러워 웃음이 난다. 들고 있는 패가 훤히 보이는데도 박박 우기거나 애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여자들보다 아주 조금은 낫지만 말이다, 등등..  이 남자 여자한테 되게 당한 적 있나보다.
엄청 삐딱하네. 그래놓고 결국 그의 마음에 조금도 들지 않던 욕심많아서 툴툴거리고 성마른 여자, 형수와 붙어먹어 버린다, 모두를 떠나 마음 편한 지하철 걸인이 돼버린 형을 기다린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이런 인간을 우리는 속물이라고 부른다.

<늑대 - 전성태>
'작가'가 선정한 소설에 싣지는 않고 지들끼리 얘기만 나눴던 그 '늑대'를 드디어 읽다. 내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떠드는 출발 비디오 어쩌고가 그래서 싫었는데 마침 책까지 그랬으니..이렇게 읽게 된 게 어찌나 반가운지.
참 잘 쓴다. 다른 할 말이 없다. 그냥 참 잘 쓴다. 아마도, 읽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거겠지.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 이명랑>
술술 잘 읽힌다. 이 작가의 집안에 이야기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어머니 또는 할머니의 영향? 다른 작품이 있는지 봐야겠다. 박완서 할머니의 쓰기를 닮은 듯한 작가. 시장의 이야기는 어찌 쓰건 대부분 성공? 아니, 재미 있게 엮일 수밖에 없나보다. 좋은 소재다.

짝사랑 하는 남자를 옆에 두고 그 배를 불려 주며 어쩌다 외로운 날 눈이 맞아 자신의 배까지 불려버려 인생이 바뀐 가게의 여주인. 할머니와 함께 지나갈 때마다 보란 듯이 빤스를 내리고 가게 앞에서 오줌을 갈기는 그녀의 딸, 많은 딸의 팔자는 어미를 닮는다지.

<맨홀 - 편혜영>
'깡통'을 좋게 봤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난 편혜영. 무언가 새로운 나라(사실 있을 수도 없는 온도를 자랑하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는 듯싶더니 결국 간단한 환경 묘사 후 표현되는 장소는 바로 맨홀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 너무 끔찍하다. 이 말밖에는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보고 나면 끔찍해서 먹먹한 작품, 공포와는 다른.

<다시 한 날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김연수>
자실한 여자친구 일을 소설로 쓰면서 드는 생각들.
그래, 원래 그런 일을 쓰는 것은 잊기 위한 글로 각인시켜 그것을 없애기 위한 작업에 불과함을 그처럼 나도 실제로 깨닫고있다.
내가 글쓰는 오유리와 방송실 직원 오유리를 분리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악인과 소설가를 분리시키는 그, 그 둘은 사실 하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와 나를 섞어가며 하는 얘기들이 간혹 지루하기도 하고, 그저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간단한 점을 왕오천축국전의 해석을 통해 너무 어렵게 자기식으로 표현하려는 부분이 좀 마뜩찮기도 하다. 역시나 내게 김연수는 집착상대까지는 안 되겠다.

<회색 時 - 배수아>
그녀의 작품, '훌' 에 실려 있던 이것. 떠벌리지 못하는 채식주의자가 갖는 죄의식에 관해 이렇게나 길게 나열할 수 있는 쓰기의 힘!
독후감을 뒤져 다시 보았지만, 그저 그녀를 읽었으니 좋았다는, 이를테면 그와 섹스를 해서 좋았다는 정도의 독후감을 보고, 오늘 나는 배수아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나를 증오했다. 조만간 배수아 다시 읽기 주간을 만들어야겠다.

타인, 진정한 타인. 나와 채식주의자와 수미라는 노인들이 한 식탁에 앉아 있지만 따로 앉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듯 우리라는 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우 이정도의 표현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회색 時' 에서 너무나도 정신적으로 단숨에 읽히도록 그렇게 읽힘을 속상하게 만들도록 가득 가득 써두었다.

<풍경 - 정지아>
삶도 죽음도 무미건조하게 설명한다.
'두 팔을 벌리고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 언니는 체조선수 같았다. 자장면 배달하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들 때도 언니는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처럼 그냥 쌍둥이 언니는 사라지고 자신만 남는다. 그렇다. 세상은 산 자들이 꾸려 가는 것이니까.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이라 양파를 깔 때도 괜찮은 화자는 한 달치 목욕비를 한꺼번에 끊으면 20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찜질방에서 살던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되는 또다른 외로움 덩어리 Q와 W와 셋이 보물지도를 보며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나머지 한 명은 지도가 있다며 보물 찾기를 제안한 여고 자퇴생.

보물 따위는 없다. Q의 중국집이 망하는 바람에 Q의 만두와  W의 쫄면 그리고, 자퇴한 여고생의 충고로 그들은 맛있는 만두와 여러 단계 매운 맛의 쫄면을 팔아 재산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줄거리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글. 재미는 있고 빨리 읽히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90쪽, 5에서 3줄 : 검정색 -> 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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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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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부터 아주 고독하고 철학적이라 무지무지 심오한 책일 거란 편견에 사로잡혀 읽기 시작,
장장 오개월 정도에 걸쳐 띄엄띄엄 다른 책과 함께 야금야금.

첫 장을 넘기자마자 부엔디아 집안의 구성도가 등장하는데 복잡하기 그지없는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 봤지만 봐도봐도 알 수 없는 구성도에 불과하단 사실은 다른 책과 같았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고독  

여러 나라 글귀가 울긋불긋하게 꽉 들어찬 남근으로 사창가에서 힘내기를 하고, 점심으론 돼지를
반 마리 먹어치우는, 집시들이 데려갔다 홀로 돌아온 그,
너무 웃긴 건 그의 방귀에 꽃들이 시들어버리는 캐릭터 제작 작가 마르케스는 세르반테스의 유머보다 조금 더 만화적 향이 짙지만 그보다 진지한 느낌으로 위와 같은 인물에게도 고독이 자신도
모르게 묻어난다는 것.

삘라르 떼르네라의 고독  

평생 마을 사람들 운명의 점을 쳐주며 욕망을 위해 달려드는 수 많은 고독한 남자들을 전혀 막지 않더니 결국 나이가 들어서는 타인의 쾌락을 위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방을 빌려 주는 것으로 백년의 고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고독 : 권력 속에서의 고독,

그것을 견디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오한이 대신 표현해 주고 있다.
또한 그의 씨앗이 오만 곳에 뿌려져 자라고 있지만 그런 것은 그의 고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르슬라의 고독  

백 살까지 살며 집안 남자들의 꼴을 모두 보며 하나하나 챙기는 그녀, 가족을 위해 산 그녀의 백년은 고독했다.

미녀 레메디오스의 고독  

남자들이 맡으면 환장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체취와 놀라운 미모를 갖고 태어난 그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는 많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갖지 못한채 고독하게 생을 마감.

미국으로 예상되는 바나나 농장에서의 지배인들의 횡포가 겨우 몇 페이지에서 짧고 간략하지만 인상 깊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두터운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선
많은 시대, 사건, 인물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158페이지에 나오는 마꼰도의 사태는 우리의 광주 민주화 항쟁과도 많이 닮아 있다.

2권 229페이지에선 페르난다가 자식들이 돌아오기로 예정된 날짜를 기준으로 년, 월, 일을 계산하는데 이것은 시간 즉, 우리가  편리를 위해 임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잠자코 앉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책이 끝날 무렵에는 문학이란 것에 촛점을 맞추려고도 하는데 그는 문학이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장 좋은 장난감이라고 표현한다, 와 완전 맞는 말이다.

난 문학에 의해 흔쾌히 조롱당하고 있고, 그것은 꽤나 즐거운 조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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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역시 초록. 책 색깔이 예뻐서 책을 펼치기 전에도, 펼치고 목록을 살필 때에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바로 초록의 힘이란 걸까?
난 요즘 자연이 많이 그립다.

아직 반도 채 읽지 않았는데 이 작품 단어 선택도 문체도 모두 역사적이다. 시를 제목으로 한 영화 '시'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듯 작품의 주제와 문체가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글쓰기! 지향할 일이다.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건이 부분인 순수의 시간적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놀라운 경험을 하고 변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옮겨 본다.

' 그날 이후 그는 언제나 전선의 최전방에 있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적을 몰아내는 자가 아니라 점령하는 자로 돌변했고, 조국을 지키는 전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광분에 겨워 날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전쟁이 아니라면 그가 일생 동안 영영 밟아 보지 못했을 외국 땅에서 말이다. 마치 잡초를 뽑아 내어 멀리 집어던져 버리듯이 정체불명의 어떤 힘이, 그의 외부에 존재하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그의 육신의 바깥으로부터 온 힘이 그를 집어 들고 앞쪽으로 던지듯이 돌진시키는 것 같았다.'

퐁당퐁당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정원사는 존재 차체가 그냥 역사다.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나무(자연) 를 관장하는 그. 전쟁 전 고요에도 전후의 폐허에도 변함없이 늘 같은 일을 꾸준히 해내는 역사의 유일한 증인, 작품 속에서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더디게 변화하는 '나무'를  소재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존재 자체로서의 자연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개발 속에서만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그 자연이라는 것.

이 역사스러운 책은 문체도 역사적이지만, 진행되는 속도와 느낌도 느릿느릿 객관적으로 흘러간다. 그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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