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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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꽤 거칠다, 그런데 재미있다.
가벼움을 지닌 거침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거침.
하지만 재미를 깎아내리는 길고 긴 문장들.
단어나 상황을 설명하느라 그것을 괄호 역할과 마찬가지인
줄 속에 가둔 글이 한 페이지에 보통 두 번 이상은 꼭 나온다.
필요 없는 말들이 너무 많아 줄이고 줄이려 노력했다면 한 권으로도 끝낼  수 있었고  더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결론적으로 이 작가의 글쓰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억울하게 교수직을 접어야 했던 콜먼이 자신의 억울함을 폭로하기
위해 창조를 빌리려는 작업에 2년이나 머리를 싸매놓고는,
'난 전문가들 흉내도 못 내겠어. 나 자신에 대해 글을 쓰면서 창조라는 단계까지 올라설 수가 없더군. 원고 어딜 들춰봐도 여전히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회고록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라고나 할까 뭔가를 설명해낼 가망이 안 보이는 그런 거.' 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것은 자기 얘기를 글로써 해보려다 실패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에 맞지 않게도 서른셋의 여자와 섹스를 하는 콜먼. 잘못된 성욕으로 강간을 하는  남자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물론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미국의 대표 지식인 콜먼이 글을 읽을 줄 모르고 배울 생각조차 않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며 거부의 의사도 확실한 포니아를 만나는 이유는 바로
섹스라고 했다. 마누라를 잃은, 성행위의 기회가 거의 없을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그녀는 비아그라까지 사용하게 하는 중요한 존재 이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보통 지적으로 왕성한 남자들이 자신보다 학벌이 터무니없이 낮은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를 꽤 들은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그들은 왜 자신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을 택했을까?
이것 역시 내가 늘 떠들고 다니던 '지'를 넘어선 '천박'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언젠가 봤던 태백산맥에서 글도 모르는 농부지만 그들의 몸은 스스로 많은 것을 깨치는 지혜 덩어리라고 말한 부분이 떠오른다. 그게 아니면 사회적으로 존재감이 크지만 그들에게서 진심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가 집에서만이라도 진정한 존중을 받기를 원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 또 다른 생각도 들지만 뭐, 여기까지.
 

콜먼과는 대조적으로 전립선 제거 수술을 받아 발기가 불가능한, 비아그라도 안 될 만큼 신경까지 죽은 화자.
젊은 시절 반복되는 욕구해소의 허무로 언젠가는 금욕을 단행하겠다는 생각을 실제로 거의 운명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충격은 덜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콜먼 덕에 그의 몸과 마음이 성욕으로 그득하게 될 가능성은 아주 농후하다.
모든 상황 사건과 관계없이 성욕이란 그런 것이니까,특히나 남자에게 있어서 성욕이란 더욱 더.

베트남전에 참전한 포니아의 전남편. 그의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고, 마치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간 듯 화자는 레스터 팔리를 '그'라 지칭하며 신나게 과거를 들추어낸다.
어느새 그는 그녀를 때리던 파렴치 남편이 아니라 불 속에서 타 죽게 생긴 아이들을 구할 생각도 않고 불이 난 사실조차 모른 채, 차안에서 애인의 물건을 빨아대던 포니아가 나빴다 여기게 만들
만큼 설득력 있게!
그렇다. 끔찍한 일로 인해 미쳐버린 사람에게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콜먼이 생각하는 포니아.
열네 살 이후로 가출 소녀로 지내왔고, 자신의 생애 내내 도대체 설명해낼 길 없는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줄곧 도망쳐오듯 살아온 아이. 남자가 제공해줄 안정과 보호를 찾아, 잠결에 몸만 뒤척여도 죽이려고 달려들어 목을 움켜쥐고 조르는, 전투 때문에 정신이상이 되어버린 퇴역군인과 결혼한 아이. 불성실한 아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아이. 글을 읽을 줄 알면서 읽을 수 없다고 하는, 글을 못 읽는 척하며, 이러한 심각한 결함을 기꺼이  감당함으로써, 자신이 속해 있지 않으며 속해 있을 필요도 없지만, 온갖 잘못된 이유를 들이대며 자신이 아종(亞種)에 속해 있다는 것을 콜먼이 믿도록 만들고 싶어 하는, 아종의 일원으로 행세하는 것이 더욱 어울리는 아이. 자신이 아종에 속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싶어하는 아이. 일곱 살에는 자신의 존재가 환상이었고 열네 살에는 불운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재앙이 되어버렸고, 직업은 웨이트리스, 매춘부,농부, 청소부 어느 것도 아니었지만 호색한인 계부의 영원한 의붓딸이자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어머니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자식인 아이, 누구도 신뢰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을 속여먹으려 한다고 여기지만 어떤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며, 어떤 것에도 겁을
집어먹지 않고 버티는 능력은 어마어마하지만 인생에서 얻는 것은 그야말로 하찮은, 불운의 특별한 사랑만 받는 아이.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온갖 고약한 꼴을 다 당하면서도 그런 팔자에 전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스티나 이후로 콜먼을 누구보다 흥분시키고 성적으로 자극하는, 도덕적 견지에서 말하자면, 콜먼이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혐오스럽지 않은 인간은 아니지만 그나마 가장 가장 덜 혐오스러운 인간이며, 그토록 오랫동안 정반대 방향을 겨냥해 살아왔기 때문에-끌리게 되었고, 전에는 그를 얽어매는 요소였던 올바름이라는 잠재된 감정이 이제는 정확히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에 육체적 결합 못지않게 정신적 결합까지도 공유하는, 생각지 않게 그와 가장 허물없는 사이가 된 아이. 그가 자신의 동물적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차례씩 덮치는 노리개이기는커녕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운 동지라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릴 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직접 책을 보며 칠 만큼 훌륭해서 이 글을 베껴 적은 것은 아니다. 작가처럼 한 사람을 저렇게 길게 중복되지 않는 낱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작가는 중복을 자꾸 한다, 짜증나게.

219쪽에 보면 콜먼이 왜 백인으로서 거짓생을 살았는지 독자에 입장에서 묻기에 충분한 부분을 어머니의 입을 통해 질문하고 있다. 진짜 그는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까지 백인으로 살기 위해 안간힘 했을까?
224쪽에서는 월터는 흑색 그대로, 콜먼은 백색이 돼서 각자의 투쟁 을 한 것이라고 나오는데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찰스 드루 박사 이야기.
혈액을 저장할 수 있도록 응고를 막는 방법을 알아낸 사람인데 그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쳤을 때 사고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병원에서 흑인환자를 받아주지 않는 바람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이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두 권의 긴 책을 모두 설명할 만큼 사회,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은 나라를 필립 로스는 그리고 싶었겠지. 그래 필립 로스야, 니네 미국 참 더러운 나라다.

아래는 오탈자.

<1권>
144,10줄/175,밑에서 8줄/247,밑에서 4줄/337,밑에서 6줄
-> 검정색이 아니고 검정 또는 검은색.

317,3줄
-> 안 돼지 => 안 되지
 

<2권>
31,10줄/86,10줄/95,밑에서 9줄/97,밑에서 7줄/99,밑에서 5줄/
102,9줄/258,밑에서 10줄/264,밑에서 12줄
-> 검정색을 모두 검정 또는 검은색.

124,밑에서 6줄
-> 갖지 않다고 => 갖고 있지 않다고 또는 갖지 않았다고

130,밑에서 8줄
-> 사람들이 어울리지 => 사람들과 어울리지

214, 끝줄
-> 바래요 => 바라요 또는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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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 2010-03-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는 <휴먼 스테인> 담당편집자입니다.
궁둥갤러리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우선 독서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오탈자로 지적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1. ´검정색´이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지적하신대로 ´검정´ 또는 ´검은색´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검정색을 굳이 쓸 경우에는 '검정 색'으로 띄어 써야 합니다. ´검은색´으로 통일하겠습니다.

2. ´안 돼지´ 역시 ´안 되지´가 맞는 표기입니다.

3. ´갖지 않다고´ -> 지적하신대로 ´갖지 않았다고´가 맞습니다.

4. ´사람들이 어울리지 못하는´ -> 말씀하신대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이 자연스럽습니다.

5. 대화문에 포함된 ´바래요´의 경우, ´바라요´가 원칙적으로 맞는 표기지만, 입말로 사용할 경우에는 허용할 수 있습니다.

궁둥갤러리님, 소중한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해주신 내용은 <휴먼 스테인> 다음 쇄에 반영해서 수정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