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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천년대
박민규 외 지음, 민족문학연구소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박민규>
참 잘쓴다. 질투가 나서, 참고 있던 커피를 타 마시고 말았다.
공감할 사람들이 많을 이야기. 대한민국 국민 아들 딸 중에 집 형편이 기울어 내 살 길 없이 그저 돈벌이가 삶이 돼야 하는 경험을 했던 그들이 있다면 아침마다 푸시맨을 하며 출근하는 아버지를 열차 속으로 밀어야 했던 그의 마음을 잘 알겠구나. 특히 1997년을 겪은 내 나이 언저리의 사람들은.
<입김 - 천운영>
작가 사진이 없는 단편 모음집. 덕분에 글만 보고, 이름만 보고 성별을 맞힐 수 있는 재미를 붙였는데, 이 분은 남자가 맞을까?
'낫, 낫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로 끝나는 이 단편, 늙고 약하고 비쩍 마른 기술도 갖고 있지 않은 남자, 그는 왜 사무실에 낫을 들고 들어갔을까? 왜 책상 위에 그것을 올려 두었을까? 행동은 보란듯이지만 의도는 알 수 없다는 듯 표현하는 형식.
뻔한 결말 죽거나 죽이거나.
<아홉 개의 푸른 쏘냐 - 김재영>
굳이 러시아 여자 소냐의 대사를 러시아어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현학적 글쓰기 하는 게 싫은 만큼 배운 사람의 아는 척은 별로 좋지 않다. 나는 어려운 것을 읽을 줄 알되, 쉽게 표현하고 설명할 줄 알아야 잘 쓰는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이니.
마치 영어를 배우는 내 '친구(남자)'가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영어로 써서 보내는 그가 역겨워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욕설 정도만 러시아어, 그러니까 러시아어를 배웠다면 대부분 알아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것만 썼다면 좋았을 것을.
원래는 무용단이었고 같은 일을 하러 한국에 온 러시아 여자가 봉춤을 거쳐 매춘까지 하게 되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흔한 이야기. 지나치기 쉬운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잡았으니 칭찬할 만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런 생각은 이제 지루하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김애란>
그녀의 이번 글, 마음에 든다. 이미지를 위해 '벌레들' 같은 작품은 그냥 좀 혼자 연습하고 이런 글들만 싣길 바라는마음.
아버지와 아들, 참 귀엽고 담백하고 재미나다. 성석제 아저씨의 글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 아이는, 복어를 먹으면 독이 퍼져서 죽는데 먹는 날 잠을 자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을 철썩같이 믿은 그 아이는 어른이 되었겠지? 아버지 같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 - 김중혁>
삶의 큰 존재 엄마를 잃은, 지도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느 아들.
에스키모인들을 연구하는 그의 삼촌처럼, 먼 곳에서 이곳에 와 나와 함께 있자 제의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엔 난 모아놓은 돈도 능력도 부족하다, 잘 알고 있다. 그는 과연 삼촌 곁으로 갔을까?
<얼굴 없는 사나이 - 김윤영>
작가의 여성관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자들이란, 인간세상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들 같다. 라든지,
나는 가끔 지하철을 타면 앉아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다 아니다 하면서 속으로 판별하는 습관이 있다. 그 때마다 처녀도 아닌 것들이 처녀인 척 도도하게 앉아 있는 걸 보면 가증스러워 웃음이 난다. 들고 있는 패가 훤히 보이는데도 박박 우기거나 애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여자들보다 아주 조금은 낫지만 말이다, 등등.. 이 남자 여자한테 되게 당한 적 있나보다.
엄청 삐딱하네. 그래놓고 결국 그의 마음에 조금도 들지 않던 욕심많아서 툴툴거리고 성마른 여자, 형수와 붙어먹어 버린다, 모두를 떠나 마음 편한 지하철 걸인이 돼버린 형을 기다린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이런 인간을 우리는 속물이라고 부른다.
<늑대 - 전성태>
'작가'가 선정한 소설에 싣지는 않고 지들끼리 얘기만 나눴던 그 '늑대'를 드디어 읽다. 내가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 떠드는 출발 비디오 어쩌고가 그래서 싫었는데 마침 책까지 그랬으니..이렇게 읽게 된 게 어찌나 반가운지.
참 잘 쓴다. 다른 할 말이 없다. 그냥 참 잘 쓴다. 아마도, 읽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거겠지.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 이명랑>
술술 잘 읽힌다. 이 작가의 집안에 이야기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어머니 또는 할머니의 영향? 다른 작품이 있는지 봐야겠다. 박완서 할머니의 쓰기를 닮은 듯한 작가. 시장의 이야기는 어찌 쓰건 대부분 성공? 아니, 재미 있게 엮일 수밖에 없나보다. 좋은 소재다.
짝사랑 하는 남자를 옆에 두고 그 배를 불려 주며 어쩌다 외로운 날 눈이 맞아 자신의 배까지 불려버려 인생이 바뀐 가게의 여주인. 할머니와 함께 지나갈 때마다 보란 듯이 빤스를 내리고 가게 앞에서 오줌을 갈기는 그녀의 딸, 많은 딸의 팔자는 어미를 닮는다지.
<맨홀 - 편혜영>
'깡통'을 좋게 봤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난 편혜영. 무언가 새로운 나라(사실 있을 수도 없는 온도를 자랑하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는 듯싶더니 결국 간단한 환경 묘사 후 표현되는 장소는 바로 맨홀이었다. 그들이 사는 곳. 너무 끔찍하다. 이 말밖에는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쓰는 걸까. 보고 나면 끔찍해서 먹먹한 작품, 공포와는 다른.
<다시 한 날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김연수>
자실한 여자친구 일을 소설로 쓰면서 드는 생각들.
그래, 원래 그런 일을 쓰는 것은 잊기 위한 글로 각인시켜 그것을 없애기 위한 작업에 불과함을 그처럼 나도 실제로 깨닫고있다.
내가 글쓰는 오유리와 방송실 직원 오유리를 분리시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악인과 소설가를 분리시키는 그, 그 둘은 사실 하나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와 나를 섞어가며 하는 얘기들이 간혹 지루하기도 하고, 그저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간단한 점을 왕오천축국전의 해석을 통해 너무 어렵게 자기식으로 표현하려는 부분이 좀 마뜩찮기도 하다. 역시나 내게 김연수는 집착상대까지는 안 되겠다.
<회색 時 - 배수아>
그녀의 작품, '훌' 에 실려 있던 이것. 떠벌리지 못하는 채식주의자가 갖는 죄의식에 관해 이렇게나 길게 나열할 수 있는 쓰기의 힘!
독후감을 뒤져 다시 보았지만, 그저 그녀를 읽었으니 좋았다는, 이를테면 그와 섹스를 해서 좋았다는 정도의 독후감을 보고, 오늘 나는 배수아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나를 증오했다. 조만간 배수아 다시 읽기 주간을 만들어야겠다.
타인, 진정한 타인. 나와 채식주의자와 수미라는 노인들이 한 식탁에 앉아 있지만 따로 앉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듯 우리라는 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겨우 이정도의 표현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회색 時' 에서 너무나도 정신적으로 단숨에 읽히도록 그렇게 읽힘을 속상하게 만들도록 가득 가득 써두었다.
<풍경 - 정지아>
삶도 죽음도 무미건조하게 설명한다.
'두 팔을 벌리고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걷는 언니는 체조선수 같았다. 자장면 배달하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들 때도 언니는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처럼 그냥 쌍둥이 언니는 사라지고 자신만 남는다. 그렇다. 세상은 산 자들이 꾸려 가는 것이니까.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이라 양파를 깔 때도 괜찮은 화자는 한 달치 목욕비를 한꺼번에 끊으면 20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찜질방에서 살던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되는 또다른 외로움 덩어리 Q와 W와 셋이 보물지도를 보며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나머지 한 명은 지도가 있다며 보물 찾기를 제안한 여고 자퇴생.
보물 따위는 없다. Q의 중국집이 망하는 바람에 Q의 만두와 W의 쫄면 그리고, 자퇴한 여고생의 충고로 그들은 맛있는 만두와 여러 단계 매운 맛의 쫄면을 팔아 재산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줄거리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글. 재미는 있고 빨리 읽히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90쪽, 5에서 3줄 : 검정색 -> 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