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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두 번째 보는 장정일 아저씨의 구월의 이틀. 언제나 그렇듯 재독의 묘미를 안겨 주었는데 오늘은 그의 마지막 문장부터 곱씹고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누군가는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근착하고, 누군가는 착근에 실패하고 옛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새롭게 고향을 만들지 못하고 옛 고향으로 내려간 사람은 거기서도 잘살지 못한다. 이주에 실패한 경험이 고향에까지 따라와 그를 조롱한다. 그래서 그는 계속 방황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시베리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패배를 들키지 않을 장소,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장소, 내 영혼에 영성을 부여할 성스러운 장소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남한만으로는 너무 좁아서, 고작 우리는 고향으로 내려갈 뿐이다.
생각해 보니 장정일의 작품은 고급스럽지는 못하다. 이번 작품 역시 좀더 여성스럽게 세밀하고 고급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난 그에게서 채우지 못한 고급스러움에의 욕망을 배수아를 통해 공급받느라 한 작가가 아닌 언제나 장정일과 배수아로 무슨 셋트처럼 묶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쩌면 여자들이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가 지금 내가 장정일과 배수아를 반드시 함께 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장차 보수와 진보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각각 금과 은을 키워냈다. 당연히 시작은 금과 은의 고등학생 시절과 서로에게 다른 서울이 의미가 되어야 했다. 서울 말씨를 싫어하지만 남몰래 경상도 억양을 지우려 노력하거나, 동성애라는 사실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속여야 함을 알게 되는 등의 모습은 은이 약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나라를 이끌 10%가 돼야 하는 진정한 보수 청년이 될 것이란 사실이 은근히 감추고 시작하는 이 책.
은과 금의 이사 시점에 사고 현장을 넣은 까닭이 궁금했었고, 스스로 이유를 찾지 못해 아쉬웠는데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 정일 아저씨가 이번에만은 모든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에 가서야 알았다. 현장을 보고 구토하는 금과, 추상화를 보듯 아무 감정 없이 감상하는 은, 여기서 문학작품을 읽지만 현실에 냉철한 은과 문학의 ㅁ도 모르지만 현실을 자신도 모르게 구토를 통해 표현해 버리는 금이 드러나는 것이다. 마지막에 가서 말 잘하고 오지랖 넓은 금은 문학으로써 무지렁이를 일깨울 작가가 되고, 사사로운 일보다 큰 것에 더 현실적으로 대처할 은은 실제로 잡히는 이 나라를 이끌 10%가 될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은은 정치에서 금은 문학에서 무지한 민중을 이끄는 멋진 인재들이 되어 갈 것이란 얘기겠지.
또한 사고 현장에서 죽은 그 아이, 엄마와 아빠가 좌파건 우파건 상관없이 진정한 뉴라이트 우파가 될 아이였기에 부모를 죽이고 아이만 살려 둬야만 했던 의도적인 설정이었다. 그래, 사실 글이라는 것은 이렇게 온갖 설정이 난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이나 은 그리고 사고현장에서 살아 남은 어린 아이들이 장차 훌륭한 인재가 돼서 나라를 좀 편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요즘 들어 갑자기 사회적인 분야, 특히 여성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사회라는 것에 관심이 지대해지고 있는데 앞으로 읽게 될 책 목록이 어느 정도 정해지는 순간인 것이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31쪽 밑에서 4줄,116쪽 밑에서 8줄 : 되요 -> 돼요
166쪽 2줄, 해석할 밖에 -> 해석할밖에
213쪽 2줄, 갖다왔다는 -> 갔다왔다는
232쪽 6줄, 자기도 몰래 -> 자기도 모르게
256쪽 3줄, 새벽 1까지 -> 새벽 1시까지
290쪽 밑에서 8줄과 밑에서 4줄, 둘러매고 -> 둘러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