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역시 초록. 책 색깔이 예뻐서 책을 펼치기 전에도, 펼치고 목록을 살필 때에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바로 초록의 힘이란 걸까?
난 요즘 자연이 많이 그립다.

아직 반도 채 읽지 않았는데 이 작품 단어 선택도 문체도 모두 역사적이다. 시를 제목으로 한 영화 '시'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듯 작품의 주제와 문체가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글쓰기! 지향할 일이다.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건이 부분인 순수의 시간적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놀라운 경험을 하고 변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옮겨 본다.

' 그날 이후 그는 언제나 전선의 최전방에 있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단순히 적을 몰아내는 자가 아니라 점령하는 자로 돌변했고, 조국을 지키는 전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광분에 겨워 날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전쟁이 아니라면 그가 일생 동안 영영 밟아 보지 못했을 외국 땅에서 말이다. 마치 잡초를 뽑아 내어 멀리 집어던져 버리듯이 정체불명의 어떤 힘이, 그의 외부에 존재하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그의 육신의 바깥으로부터 온 힘이 그를 집어 들고 앞쪽으로 던지듯이 돌진시키는 것 같았다.'

퐁당퐁당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정원사는 존재 차체가 그냥 역사다.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나무(자연) 를 관장하는 그. 전쟁 전 고요에도 전후의 폐허에도 변함없이 늘 같은 일을 꾸준히 해내는 역사의 유일한 증인, 작품 속에서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더디게 변화하는 '나무'를  소재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존재 자체로서의 자연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개발 속에서만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그 자연이라는 것.

이 역사스러운 책은 문체도 역사적이지만, 진행되는 속도와 느낌도 느릿느릿 객관적으로 흘러간다. 그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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