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작가 속에 또 작가가 있어 큰 구성의 작가가 작은 구성의 작가의 작품을 세밀히 분석하며 쓰고 있다. 액자식이라고 하기엔 그보다 더 새로운 느낌의 이 작품, 초반에는 몰입이 잘 안 되다가 100쪽을 넘기는 순간부터 무섭게 집중이 되는 특징이 있는데 겨우 두 작품째 읽는 그의 것이지만 장미의 이름 또한 그랬던 기억이 난다.   

검술의 비법을 전술할 때, 벌판에서 승마를 가르칠 때, 곡식을 까먹는 새들을 욕할 때 쓰는 말이 다른 로베르토의 아버지 포초가 칼에 손을 베었을 때 카르멜 수사(로베르토의 스승)가 달려와 치료약을 상처가 아닌 칼날에 바르는데 그것은 아랍의 비법으로 그 칼날이 상처에 남겨 놓아 치료를 방해하는 쇠 성분을 빨아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끝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공명약이다.  

생사뱅이란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신이란 것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마련한 발명품에 불과하다고 당시의 기준으로 역사적 일들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한다. 신기하게도 움베르토 에코는 자기가 신을 의심하던 시기의 모습을 꼭 작품 속 한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데 이 작품에선 생사뱅이 그렇다. 거기다 엄청난 달변이다, 박식과 뻔뻔함까지 겸비한 그는 로베르토가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다닌 허상 페란테 생성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 주는데 이것은 마치 주니어 플라톤 4학년 과정에서 나왔던 '찰스'라는 제목을 가진 어떤 유치원생 이야기와 똑 닮아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과 죄의식을 회피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허상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부모나 선생에게 실제로 있는 듯 꾸미기도 하는데, 이런 내용을 성인이 된 로베르토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것은 비단 어린 아이의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매력쟁이 생사뱅을 책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죽여 버리다니, 작가님!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시지, 아쉽습니다요! 

작가는 책장을 넘길 때 침이 묻는 상황을 중요한 단서로 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책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책에 독을 묻혀 놓아, 묻힌 침을 통해 독을 몸 속으로 들여 보내 책을 본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장미의 이름도 그렇고, 스파르 신부가 역질에 걸렸음을 주장하기 위한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 역시 그렇다. '다 알다시피 역질은 점액을 통하여 전염하는 것입니다. 책 임자는, 책을 읽으면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겼을 테지요? 그 책장에는 전염병의 독성이 스며들어 있었을 겁니다. 책 임자가 그 독성 때문에 역질에 걸렸을 터입니다. 신부님도 그 독성에 전염된 것임에 분명합니다.' 

신부와 로베르토가 성서의 허와 실을 따지는 부분은 따로 저장해서 가지고 있다가 때때로 읽으면 재미있겠다. 책 362쪽부터인데 이곳에 쓰기엔 너무 길고 메모장에 따로 적어 보관할 생각이다.  

홀로 배에 탔다가 어느 순간 틈입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 얻은 로베르토 인생의 귀중한 보물 카스파르 신부. 신부가 말도 안 되는 진지함으로 자살이나 다름없는 바닷속 걷기에 의해 사라지고 급기야는 페란테를 다시 불러 그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로베르토, 그것도 그가 사랑하는 릴리아를 빼앗는 페란테로. 

612쪽에서 나오는 바퀴는 책의 초반에 에마누엘레 신부가 얘기하던 아리스토텔레스 장치와 흡사한데, 바퀴는 그것보다 더 진화된 것으로 끊임없이 낱말을 끄집어내 조합시켜 이야기를 만들 수가 있다. 그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걸까? 단어들을 조합해 글을 쓴다는 식? 물론 그게 기본적인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내게는 글 써지는 기계 같은 건 좀...그런 반면에 또다른 자신인 페란테를 질투하면서도 자신이 쓰는 글에서는 그와 릴리아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변을 따뜻하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펜으로써 생성해 준다, 스스로는 아주 고통스럽지만. 그렇다면 단어기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 또는 힘이 합쳐져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얘기로 이해해도 무방하겠지? 

자오선, 바로 전날의 비밀! 작가는 시간 구분 선인 이 선 하나를 가지고 700페이지 가량의 글을 쓰면서 온갖 과학과 철학 그리고 인물 등을 쏟아 놓는데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자오선과 비슷한 죄인과 죄인 아님의 경계를 통해 결국 자오선의 능력은 별다른 소용이 없음을 말하고 싶던 걸까? 각설하고 유다의 이야기를 해보자.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저런 나는 내 생각만 했군요. 하지만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내가 한 것을 그대로 두면 나는 저주받은 채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만일에 내가 진작에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으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게 되니 이 또한 영원한 저주의 형벌입니다. 그렇다면 한 처음부터 나의 운명은 저주를 받도록 저주받았던 것일까요? ' 이런 식으로 책 속에서는 줄곧 성경의 내용에 대해 조금은 진지해 보이기도 하지만 말투가 너무도 장난스러운 나머지 독자인 나까지도 수렁에 빠져버리고 만다, 성경 해석의 수렁에. 거기다 그리스도 해방을 놓고 다투는 로베르토와 페란테, 두 명의 나, 구운몽.  저자가 대놓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다고 말하는, 앞으로 더할 거라고 로베르토의 열병을 핑계로 엄포까지 놓는 이 작가의 자신감! 대단하다, 대단해. 도대체가 그의 이런 구성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걸까? 

작가는 643쪽에서야 드디어 밝히는 이 한 문장의 말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과 인물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처럼 두터운 책 속에 살려 놓았다. '우리가 존재의 기적 속으로 던져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원히 풀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의 방황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돌의 생각에 관한 역설적인 사고의 연습 ' 은 절반 분량으로 딱 잘랐어야 했다. 초반에 인간과 돌을 비교하며 존재를 탐구하는데 이게 처음엔 몰입이 아주 잘 되는데 자꾸 반복하고 길어져서 급기야 짜증이 다 인다, 다 좋은데 이분은 말이 너무 많다. 

책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로베르토는 결국 페란테를 죽여서 아무리 아무리 몸을 해부하고 찢어도 죽지 않는 곳에 데려다 준다. 화자의 말로는 로베르토가 이제 허구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이상해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결론은? 

결국 배를 불태우고 자신의 소설 속 릴리아를 만나러 전날의 섬을 향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로베르토, 그리고 쩜쩜쩜. 쓰는자로서의 실험, 그것도 계속 독자들에게 '로베르토의 기록이 진짜 있던 것이게 아니게' 하며 보는 자들을 놀리는 이 대담함. 소설이 지니는 효과를 상실하기 위해 쓴 듯한 그의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아주 즐거운 바다와 삶의 여행이었다.

 다음은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4쪽, 두리뭉실 -> 두루뭉술(몇 번째 줄인지 메모가 안 돼 있어 찾았지만 없다, 아무튼 그래도 14쪽 근처 어디엔가 있었다) 

143쪽 밑에서 12줄 , 배가 내렸다 -> 비가 내렸다. 

218쪽 밑에서 9줄, 풍부하고 -> 풍부하게 

268쪽 6줄, 전설상의 섬이라는 -> 섬이라고 말하는 

346쪽 13줄, 겉잡을 수 -> 걷잡을 수,  밑에서 7줄, 부수뜨린 -> 부숴뜨린 

424쪽 밑에서 4줄, 무엇가를 -> 무언가를 

427쪽 밑에서 4줄, 고향을 -> 고향에 

497쪽 첫줄, 기술이 는 것이 아니었다 ->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500쪽 밑에서 13줄, 물 위서 -> 물 위에서  

502쪽 밑에서 3줄, 가리키는 -> 가르치는 

515쪽 밑에서 14줄, 야심이 -> 야심에 

589쪽 7줄, 깃들 수 있가 -> 깃들 수 있는  

600쪽 끝에서 2줄, 고통을 -> 고통에 

618쪽 밑에서 12줄, 바위틈이 -> 바위틈에 

640쪽 밑에서 6줄, 호도 -> 호두 

645쪽 밑에서 9줄, 우주이라는 -> 우주라는  

684쪽 끝, 그를 -> 그와 함께 

2009년에 벌써 18쇄를 찍어놓고도 이렇게 오탈자를 내버려 둔 게으른 열린 책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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