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천재적이 사이코패스를 꼽으라면, 많은 분들이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를 제일 먼저 생각하시더군요. 저도 공감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니발 렉터가 제일 천재적인 사이코패스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속삭이는 자’를 읽고나니, 이 책의 범인이 한 수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범죄를 저지르는 데 그 좋은(?) 머리를 쓸 게 아니라 범인을 잡은 데 썼으면 ‘체포王’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왜 그런 몹쓸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지…….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책 표지에 적힌“이 작품이 실화임을 믿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사실이다.”라는 문구 때문에 자꾸 생각을 하거되더군요. 어디까지가 실화고 어디서부터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말입니다.

 

자신이 직접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악의를 자극해서 그들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이들을 FBI는 ‘속삭이는 자(The Whisper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책 제목이 왜 ‘속삭이는 자’인지 알고나니 이 책에 딱 맞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첫 작품이라 너무 기대했다가 혹시라도 실망할까봐, 그래서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없을까봐 걱정스러웠거든요. 그러면서도 은근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 책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요즘 야근이 많아서) 출퇴근 시간이랑 잠자기 전 잠깐을 빼고는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도 제법 빨리 읽었습니다.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마치 소설이 기-승-전-결, 승-전-결, 승-전-결, 전-결, 전-결, 결……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더군요.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을 때까지 독자를 풀어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속삭이니는 자’의 이야기 속에 빠져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틈틈이 등장하는 앨폰소 베린저 교도소장의 편지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더군요.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등장하는 편지는, 신분을 알 수 없는 'RK-357/9'라는 죄수번호의 수감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수감자가 왠지 풀려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초초해지곤 했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범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사람(특히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오히려 살인을 즐기는 범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사냥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잔인한 범죄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사냥감으로 생각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도나토 카리시, 이 작가가 다시 책을 낸다면 찾아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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