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편지 - 제2회 네오픽션상 수상작
유현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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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장르소설을 편애(?)하고 있습니다.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책 중에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많더군요.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스티븐 헌터, 그렉 허위츠 등등등...... 이 작가들 작품을 많이 읽었습니다. 재밌더군요.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더러 있었습니다. 문화의 차이 때문인 경우도 있었고,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아쉽더군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작가님의 책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이정명 작가님의 ‘바람의 화원’이 재밌어서였는지, 서미애 작가님의 ‘반가운 살인자’에서 맛본 담백한 글맛이 좋아서였는지, 어쩌면 그보다 더 이전에 김진명 작가님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며 느낀 즐거움이 머릿속 어딘가에 새겨져 있어서였는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 연말에 단비처럼 쏟아진 우리나라 작가님들의 책 중에서 세 편에 관심이 기울었습니다. 서미애 작가님의 ‘잘자요, 엄마’와 이진영 작가님의 ‘갱스터 브레이크 세상을 훔쳐!’, 그리고 이 책, 유현산 작가님의 ‘살인자의 편지’입니다.

‘살인자의 편지’는 세 가지 면에서 관심을 끌었습니다. 살인자가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에 호기심이 생겼고(편지에 뭐라고 썼는지 읽고 싶기도 했지요), ‘사적 처형’이라는 문구에서 이 책의 범인이 제프 린제이의 ‘덱스터’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고, 우리나라 작가님의 추리소설에 다시 몰입할 수 있을지 알고 싶었습니다.

책을 펴면, 숯불바비큐집 ‘영흥관’ 주인 안정숙이 늦은 밤에 건물 주위를 배회하는 여자애들을 보며 “저런 빌어먹을 년들.”이라고 중얼거립니다. 10분 뒤 비명이 들립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속옷만 입은 채 죽어있습니다. 주황색 빨랫줄의 고리 모양은 ‘교수형 매듭’이라 불리는 특이한 모양입니다. 소녀의 겉옷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유서도 없습니다. 정진우 형사(?)는 살인사건이라고 확신합니다.

경찰은 교수형 매듭을 사용한 살인사건을 더 찾아냅니다. 피해자들의 몸에는 저항한 흔적이 없습니다. 대신 주삿바늘 자국과 ‘프로포롤’이라는 마취제가 남아있습니다. 연쇄살인......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지만 범인은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참 재미없어 보이네요. 하지만 그건 작가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글솜씨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책은 술술 읽힙니다. 재밌습니다. 작가는 정직합니다. 혼자만 알고서 몰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날짜를 속이거나 잘난 척하지도 않고, 배배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등장인물이 적지 않고 각자 사연이 있지만 겉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한 이야기 속에 얽힙니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범인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진짜 재밌는 책이니 꼭 읽어보시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많이 기대하고 책을 읽게 되면 상대적으로 덜 재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시려거든 아무 기대도 하지 말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책을 다 읽은 뒤에 “아, 잘 읽었다”고 말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전 그랬거든요.

책을 읽으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의 심판을 피한 자들을 보면 “귀신은 뭐하나, 저런 者들 안 잡아가고……”하는 생각을 하곤 하지요. 하지만 사형에는 반대하는 쪽입니다. 실제로 ‘사적 처형’ 할 만한 배짱(?)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래도 가끔, 정말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을 보면 ‘덱스터’가 생각나곤 했지요. 당분간은 덱스터보다 ‘살인자의 편지’가 먼저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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