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ㅣ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평점 :
명리학을 공부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불안한 현실과 미래를 대비함에 있어 명리학이 하나의 나침반이 될 거라는 기대, 내 운명을 남의 카운셀링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알아보고자 하는 주체성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생년월일시 네 기둥 여덟 글자(사주팔자)로 이루어진 한 인간의 명식, 하늘의 이치를 풀어서 현실의 길흉화복을 분석하는 학문인 사주명리학이 갈수록 음지에서 양지로 뻗어가고 있다.
그중에 <강헌 : 명리는 읽다>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가 전업 명리학자가 아니라 음악평론가 강헌 씨다. 물론 명리학 강연과 강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명리학자보다 음악평론가란 수식어가 익숙하다. 동양학, 역술 전문 출판사가 아닌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유명한 돌베게에서 출간되었고, 2015~2016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대중적으로 <비전 : 사주 정설>이나 낭월 박주현, 김동완 씨의 책이 유명하고 스테디셀러이지만, 이 책처럼 명리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반향을 일으킨 사례는 드물다.
게다가 저자는 좌파명리학자를 자청하고, 책의 토대가 된 강의 이름 또한 "강헌의 좌파명리학"이었다. 왜 사주팔자를 다루는 학문에 좌파가 붙는가. 의문을 가진 독자가 많을 것이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를 보면, 명리학은 체념의 학문이자 변혁의 학문이라고 했다. 자기 분수를 알고 안분지족하라는 체념의 성격과 동시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변혁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 사회 체제를 공고히 하는 논리가 되면서도, 또한 혁명의 명분이 되는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이러한 "명리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남는다. '골방의 명리학'을 '광장의 명리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른바 도사님들만 봐주던 명리학을 스스로도 볼 수 있는 명리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슬로건은 '만인(萬人)의 명리학자화(命理學者化)'이다."(p.13)이고, "명리학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데 아주 유용한 학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지고 더 정의로워질 거라는 믿는 마음"(p.26)으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에서도 철학이 드러난다. 예컨대, 사주에서 중요한 개념인 십신(十神) 혹은 육친(六親)을 보는 관점이다. 음양오행이 가진 우주적 논리를 인간 사회에 대입한 것인데, 인간관계를 비롯해서 재물과 관운, 학업운 등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분석하는 도구이다. 남자 사주에서 재물복이 탄탄하면 이성운도 좋다더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과거엔 사회 규범에 순응하고 조직 사회에 무난하게 적응하여 인정받는 안정적 요소가 중요했다. 십신 중에 식신(食神), 정재(正財), 정관(正官), 정인(正印)으로, 사길신(四吉神)이라 불렸다. 한눈에 봐도 바를 정(正)자를 써서 반듯해 보인다. 상대적으로 개성적이고 활동적이며 기성의 관습과 체제에 맞서는 힘을 사흉신(四凶神)이라 불렀다. 상관(傷官), 편재(偏財>, 편관(偏官), 편인(偏印)이다. 이름부터가 상(傷)하게 하고 기울어진(偏) 힘이다. 특히 관(官) 중심의 과거 사회에선 관운이 입신양명의 주요한 키포인트였다. 대표적으로 정관(正官)이 사랑받았다. 정관을 극하는 상관(傷官)을 꺼렸다.
하지만 4차 산업, IT 시대, 복잡하고 변화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존의 관습과 사고를 전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꼭 공적 조직이나 안정적인 조직이 아니라도 전문직화가 가능해졌다.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명성과 부를 쌓고 있다. 상관이 재조명받고 무언가 큰 예술적 기량을 펼치기 위한 디딤돌이 되는 시대다. 기존 명리학 서적도 당연히 수차례 지적한 바지만, <명리 : 운명을 읽다>는 저자부터 음악평론가다.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많은 창작자, 예술가를 만난 덕분인지 논리와 사례가 더욱 탄탄하다. 좌파란 수식어는 이런 관점에서 나오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물론 명리학은 조화를 중시한다. 기운마다 제 역할이 있다. 마냥 많으면 탈이 난다. 부족한 점은 적절히 보완해주고, 지나친 점은 억제해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예전에도 정관이 지나치면 상관으로 억제해줘야 하는 상생상극의 이치는 같았다, 그러나 사흉신보다 사길신이 뚜렷한 사주를 반기는 풍조가 다분했다.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공공연히 드러났다. 현대 사회에 걸맞는 합리성을 통해 구습을 비판한다.
<명리 : 운명을 읽다>는 저자의 철학이 담긴 명리학서다. 명리 에세이는 아니다. 저자의 소신과 경험담뿐 아니라 명리 개론서로서 설명해야 할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다룬다. 글쓰기가 업인 저자의 장점이다. 주요 개념을 차례로 배우면서 하나씩 실전에 대입해 본다. 각 챕터 끝마다 저자, 고 노무현 대통령, 조용필, 베토벤 네 명의 사주 명식으로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커리큘럼이 재밌다.
사주는 인간의 운명을 다루기 때문에 이론적 텍스트와 더불어 주변 환경과 상황, 맥락에 따른 콘텍스트가 중요하다. 유명 명리학자들이 사주를 제대로 보려면 다양한 경험과 학문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역술인도 본인이 잘 알고 많이 만나본 스타일과 업계 종사자 부류에 익숙하다. 익숙한 것이 잘 보인다. 저자의 강점은 무엇일까. 정치, 문화, 예술 분야의 인문학적 내공이다. 평론가로서 쌓은 경험과 많은 인맥이 명리학을 만나 시너지를 낸다.
기초편으로 개론에 가깝다보니 책을 읽고 바로 사주 통변을 하기는 어렵다. 책 한 권 읽어서 명리학적 문리가 트이기는 불가능하다. 단점으로 짚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점을 고려하여 실전 사주 통변을 다룬 심화편, <명리 : 운명을 조율하다>가 세트로 출간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다만 기존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격국론을 넘어간다. 자칫 사주로 귀격과 천격같은 등급을 메긴 후 나아가 사람의 운명에 차등을 정하는 행위로 비춰진다는 논리에서다. 한결같은 소신이 보인다.
序文을 빌려 世上에 告함
나는 萬人의 命理學者化를 꿈꾼다. - P4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레프 톨스토이 - P27
모든 사람은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다. 갈고닦으면 누구나 찬란히 빛난다.
토마스 에디슨 - P245
당신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고도 당신의 운명을 바꿔주지 않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P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