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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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p.79~80)

기아와 관련된 언론 매체의 기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굶주림은 아프리카 등 일부 빈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막연한 동정심에 기부를 하며 안도를 했다. 적어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기 전까지 만성적인 기아가 이렇게 전세계에 만연한 문제였고, 희생자 수가 심각한지 깨닫지 못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에 1명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p.32)

 

10여 년이 지난 일이니 많이 개선되었을까. 만성 영양실조 인구가 "2015년 유엔 기아보고서에 의하면 기아 인구는 7억 9,500만 명으로 다소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세계 식량수급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1990년에 8억 2,200만 명이었던 수치가 2005년에 도리어 증가했던 전례를 볼 때, 이러한 수치는 유동적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추정을 하게 만든다.

식량 생산량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이미 세계 식량생산량은 이미 1984년 기준 120억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자급력이 충분했다. 2015년 세계 인구가 73억 명이니 식량은 넉넉하다. 19세기 토마스 멜서스의 '자연도태' 관점으로 죄책감을 씻을 명분이 없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는 이러한 구조적 부조리를 파헤쳤고, 장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에 최근의 자료와 수치들을 업데이트하여 개정증보판이 발행되었다.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십년 가까이 근무한 저자 장 지글러가 아들 카림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저하게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른도 알지 못했던 전세계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드러난다. 특히 제3세계 빈곤과 기아가 단순히 그들의 무능력이나 나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문했을 것이다. 왜 전세계적으로 식량은 남아도는데 몇 억 인구가 굶주릴까. 많은 구호단체들이 꾸준히 활동하지만 기아가 없어지지 않을까. 선진국들이 빈곤 국가에 지원과 기부를 하는데도 해결되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얼마나 순진했던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각종 전쟁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구호단체들의 활동이 제약되고 심지어 구호물품이 독재자들과 군벌들의 뱃속을 채우는 현실, 그럼에도 한 명의 아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구호활동을 멈출 수 없는 딜레마. 예산과 물자가 부족해 눈 앞에 죽어가는 아이들의 구호 요청을 선별하고 돌려보내야 하는 사정이 절절했다.

 

기아를 유발하는 선진국들의 이면에 경악했다. 인도적 얼굴을 하고 빈곤국에 각종 기부와 지원을 하는 반면, 한편으론 구조적인 기아를 고착화시켰다. 농산물 보조금을 통해 덤핑 가격으로 제3세계에 수출하여 빈곤국의 식량 자립을 막아버리고, 육류와 식물  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막대한 곡물량은 기아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심지어 경제적 종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적 개입까지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칠레 인민전선의 아옌대,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제3세계 혁명적 지도자들은 자국의 빈곤과 기아에 맞서 싸웠지만, 다국적 기업과 미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의 정치, 경제 논리에 무참히 스러져갔다. 책은 안타까운 그들의 혁명사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빈곤국들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고 단언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은 인도적 가면을 쓰고 자국의 이익을 앞세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식량을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보는 금융과두제, 신자유주의적 행태가 화근이었다. 시카고 거래소에서 식량 투기가 이루어지고, 빈곤국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가격에 따른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안에는 최소한 도덕적 공감력이 전제되어 있었지만, 금융자본이 조장한 식량 경매 가격은 일말의 온정조차 담지하지 않는다. 또한 네슬레를 비롯한 다국적 식품 기업들은 이미 선진국도 함부로 규제하기 힘든 거대 공룡들이다. 거래소의 투기 세력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 앞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무력함은 기아로 나타난다.

 

몇 달러치의 항생제와 영양분 부족으로 빈곤국 아이들이 시력을 잃고 굶어 죽는 이면에는 구조적인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단순히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년 전까지 만성적 기아와 빈곤을 겪었고, 현재 북한 인구 대다수가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단순히 경제적 인식에서 벗어나 금융과두제가 양산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각성하는 것은 어떨까. 특히 기아와 관련해서 말이다. 이제는 막연한 동정이 아닌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기아 문제를 얇은 한 권의 책이 일깨워주고 있다. 그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계속 개정판이 발매되길 바란다. 바뀐 수치들을 확인하며 기아 문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한 눈에 알수 있도록, 나아가 끊임없이 문제를 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p.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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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아닌 선택
디오도어 루빈 지음, 안정효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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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모순적이다. 행복을 갈망하지만, 반면에 자기증오와 파괴성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다. 상당수 신경증과 정신질환은 살기 위한 원초적 방편이자 몸부림이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삶의 의욕을 꺾어버리고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의 동인으로 작용한다. 마치 활로를 찾아서 필사적으로 헤매었으나 깨어보니 가시밭길 지옥도를 걷고 있었다고나 할까.


<절망이 아닌 선택>은 자기증오와 관용을 다룬다. 자기증오는 단순히 지나치게 높은 기준과 잣대로 자기를 재단하거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의식적인 행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조소, 고통스러운 기억 되씹기, 자해, 자살과 같이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영역뿐 아니라, 우울증, 불면증, 완벽주의, 우유부단함, 죄의식 등 알게 모르게 삶 전반에 영향을 주는 상태들을 포함한다. 나아가 자아와 현실 인식을 왜곡하는 환상, 기대, 권태 등도 자기 증오의 양상들이다.


반면에 관용이란, "실질적인 자아의 이익을 도모하는 모든 생각과, 느낌과, 기분과, 통찰과, 행동이다.""자기증오에 대한 하나뿐인 해독제이며, 신경증적인 절망이 아닌 인간의 유일한 선택이요 특권이다."(p. 205) 이는 자기합리화 같은 방어기제나, 혹은 나르시즘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현실의 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는 자기증오이고, 관용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자기이해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내는 요소는 관용이다. 건설적인 성장과 인간의 창조적인 가능성으로서 그것이 지닌 잠재력은 거의 무한하다. / 인간에게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증오다. 파괴적인 가능성으로서 그것이 지닌 잠재력은 거의 무한하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양단성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배출해낸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정신적 구조가 지닌 분열성은 보편적인 현상이다.(p.18)


인간 내면에서 자기증오와 관용의 역학구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자기증오의 시작은 인격 대부분이 형성되는 성장기,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면서 아이의 욕구와 감정을 존중해줄 때 아이에게 올바른 자기조정능력이 생기지만, 문제는 세상 모든 부모가 자녀들의 인격과 감정, 욕구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려 육아를 분재하듯 다루는 부모들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기대를 자식에게 과도하게 주입시키고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강요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억압에 비례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가혹한 잣대로 스스로를 심판하고, 자기증오의 굴레에서 평생을 고생하게 된다.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 방임 또한 부모가 육아를 회피하는 행동의 일환으로, 아이에게 자기증오를 심어주게 된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무의식적 선택이 오히려 자기증오와 절망의 길로 자신을 내몰았을 것이다.

참된 시각, 참된 선택, 관용의 선택은 예상되는 반발로부터 해방되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분위기 소게서 이루어진다. 나의 여러 가지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결론에 이른 다음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선택, 진지한 선택의행위는 관련된 문제가 무엇이거나 간에 지극히 중요하다.(p.283~284) 


아마도 <절망이 아닌 선택>을 읽는 독자들은 심리학에 조예와 관심이 있거나, 신경증과 같은 심리적 문제에 개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조건들은 항상 이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부족하고 비루한 나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건설적인 성장이 시작될 것이다.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나를 지배하고 괴롭혔던 자기증오의 절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길, 내가 진정 원하는 참된 '선택'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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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시민의 조건 -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
로버트 파우저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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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3 20대 총선 결과는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여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졌으며,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어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다. 삼십여 년 가까이 공고하게 지속된 지역기반 정치의 균열이 일어난 것은 특기할 사안이다.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미 있는 의석수를 만들어내는 등 전국정당으로 거듭났으나, 텃밭이던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했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괄목할 만했고, 다시금 민의(民意)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부제가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인 <미래 시민의 조건>은 시의적절하다.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서울대학교 최초의 외국인 국문학과 교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문학을 가르칠 정도로 한국 문화에 해박하면서 동시에 미국인인 제 3자의 시각을 갖고, 한국 사회 시민의 역할,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시민이란 무엇인가에 집중한다. '시민'의 역사적 연원과 사상을 다양하게 살펴본 후, 한국이란 토양에서 시민의 역할을 역설한다. 시민이란 공동체 내에서 권리와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 저자는 "시민은 개인이지만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책임과 함께 공동체 '집단의 힘과 번영'에 대한 책임도 있다. 이 두 책임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나온 것이다."(p.180)라고 한다.

 

<미래 시민의 조건>은 특정 이데올로그와 날선 비판보다 균형 잡힌 민주 시민의 역량을 강조한다. 독자에 따라선 이러한 입장이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가 30여년 간 한국, 일본과 인연을 맺고 체험한 경험담과 한, 미, 일 삼국의 민주주의를 비교하고 고민한 흔적을 담았다. 이 책의 매력포인트다.

 

책은 한국 사회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군사독재를 비롯한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이해, 보수와 진보의 대립, 세대 갈등의 기저에 있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시각차,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교육열과 경쟁사회의 모습, 다문화 문제,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 주입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 한국 특유의 '문화적 기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서울대 외국인 교수 시절 느낀 형식적인 국제화의 허울 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 보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의식과 정치 참여를 주장한다.

 

저자는 토머스 '팁' 오닐 전 미국 하원의장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정치는 로컬(local)이다."(p.201) 제왕적 대통령제를 위시한 권력집중형 구조, '강남'의 부의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분산형 권력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방제, 내각제, 재벌 구조 해체를 논의해 보고, 나아가 시민 참여형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저자가 직접 서촌 한옥에 살면서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조직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처럼, 단순히 제도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시민 활동을 통해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길 권한다.

 

"영어의 'idiot'(바보 또는 멍청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리스에서 무식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없고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는 의미이다."(p.26)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던가. 결국 헬조선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역량은 민주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귀중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시민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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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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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p.79~80)

기아와 관련된 언론 매체의 기사, 프로그램을 보면서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안도했다. 굶주림은 아프리카 등 일부 빈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막연한 동정심에 기부를 하며 안도를 했다. 적어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기 전까지 만성적인 기아가 이렇게 전세계에 만연한 문제였고, 희생자 수가 심각한지 깨닫지 못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에 1명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p.32)

 

10여 년이 지난 일이니 많이 개선되었을까. 만성 영양실조 인구가 "2015년 유엔 기아보거서에 의하면 기아 인구는 7억 9,500만 명으로 다소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세계 식량수급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1990년에 8억 2,200만 명이었던 수치가 2005년에 도리어 증가했던 전례를 볼 때, 이러한 수치는 유동적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추정을 하게 만든다.

식량 생산량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다. 이미 세계 식량생산량은 이미 1984년 기준 120억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자급력이 충분했다. 2015년 세계 인구가 73억 명이니 식량은 넉넉하다. 19세기 토마스 멜서스의 '자연도태' 관점으로 죄책감을 씻을 명분이 없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는 이러한 구조적 부조리를 파헤쳤고, 장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에 최근의 자료와 수치들을 업데이트하여 개정증보판이 발행되었다.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십년 가까이 근무한 저자 장 지글러가 아들 카림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저하게 자녀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른도 알지 못했던 전세계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드러난다. 특히 제3세계 빈곤과 기아가 단순히 그들의 무능력이나 나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문했을 것이다. 왜 전세계적으로 식량은 남아도는데 몇 억 인구가 굶주릴까. 많은 구호단체들이 꾸준히 활동하지만 기아가 없어지지 않을까. 선진국들이 빈곤 국가에 지원과 기부를 하는데도 해결되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얼마나 순진했던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각종 전쟁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구호단체들의 활동이 제약되고 심지어 구호물품이 독재자들과 군벌들의 뱃속을 채우는 현실, 그럼에도 한 명의 아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구호활동을 멈출 수 없는 딜레마. 예산과 물자가 부족해 눈 앞에 죽어가는 아이들의 구호 요청을 선별하고 돌려보내야 하는 사정이 절절했다.

 

기아를 유발하는 선진국들의 이면에 경악했다. 인도적 얼굴을 하고 빈곤국에 각종 기부와 지원을 하는 반면, 한편으론 구조적인 기아를 고착화시켰다. 농산물 보조금을 통해 덤핑 가격으로 제3세계에 수출하여 빈곤국의 식량 자립을 막아버리고, 육류와 식물  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막대한 곡물량은 기아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심지어 경제적 종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적 개입까지 서슴지 않았다. 예컨대, 칠레 인민전선의 아옌대,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제3세계 혁명적 지도자들은 자국의 빈곤과 기아에 맞서 싸웠지만, 다국적 기업과 미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의 정치, 경제 논리에 무참히 스러져갔다. 책은 안타까운 그들의 혁명사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순히 빈곤국들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고 단언하며 비난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은 인도적 가면을 쓰고 자국의 이익을 앞세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식량을 일종의 투자 대상으로 보는 금융과두제, 신자유주의적 행태가 화근이었다. 시카고 거래소에서 식량 투기가 이루어지고, 빈곤국들은 울며겨자먹기로 가격에 따른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안에는 최소한 도덕적 공감력이 전제되어 있었지만, 금융자본이 조장한 식량 경매 가격은 일말의 온정조차 담지하지 않는다. 또한 네슬레를 비롯한 다국적 식품 기업들은 이미 선진국도 함부로 규제하기 힘든 거대 공룡들이다. 거래소의 투기 세력과 다국적 기업의 이익 앞에서 제3세계 국가들의 무력함은 기아로 나타난다.

 

몇 달러치의 항생제와 영양분 부족으로 빈곤국 아이들이 시력을 잃고 굶어 죽는 이면에는 구조적인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었다. 단순히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년 전까지 만성적 기아와 빈곤을 겪었고, 현재 북한 인구 대다수가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단순히 경제적 인식에서 벗어나 금융과두제가 양산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각성하는 것은 어떨까. 특히 기아와 관련해서 말이다. 이제는 막연한 동정이 아닌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기아 문제를 얇은 한 권의 책이 일깨워주고 있다. 그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계속 개정판이 발매되길 바란다. 바뀐 수치들을 확인하며 기아 문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한 눈에 알수 있도록, 나아가 끊임없이 문제를 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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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상처받는 나를 위한 심리학 - 마음속 상처를 자신감과 행복으로 바꾸는 20가지 방법
커커 지음, 채경훈 옮김 / 예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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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내가 왜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왜 속마음과는 반대로 말하는지, 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마음이 우울한지, 왜 계속 남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어 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 책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심리 방어기제들을 통해 그동안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 상태와 행동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p.7)

 

심리 방어기제란, 마음의 상처나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무의식적 행동으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도입한 개념이다. 그의 성격구조론에 따르면, 인간의 인격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뉜다. 원초아는 쾌락원칙을 따르고 초자아는 이상향, 도덕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서로가 충돌한다. 이를 현실원칙의 자아가 중재하는데, 원초아의 충동과 욕망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불안이 발생하고,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인간은 심리적 상처나 불안을 있는 그대로 견디기 어렵다. 욕망은 무한하지만 사회적 규칙과 도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항상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적당한 방어기제는 마음의 불안, 상처와 결핍으로부터 평정을 갖게 하여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심각할 경우 심리적 현실을 왜곡하여 성숙을 방해하고,  나와 남에게 피해를 입힌다. <항상 상처받는 나를 위한 심리학>은 이러한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탐구하여 내 안에 감춰진 마음의 상처나 불안을 성찰하고, 보다 원숙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불안과 상처가 천차만별이듯 방어기제 또한 다양하다. 과거의 상처가 주는 무의식적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제들(PART 1. 나는 왜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하는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 불만족에 대한 기제들(PART 2. 나는 왜 갖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는가), 대인관계에서 나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기제들(PART 3. 나는 왜 사람을 깊이 사귀지 못하는가), 불안정한 자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타인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기제들(PART 4. 나는 왜 항상 남의 말에 흔들리는가), 심리적 상처와 불안에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PART 5.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을 소개한다. 책이 말하는 "20일 간의 심리학 여행" 은 이러한 20가지의 종류별 심리기제를 알아가면서 나를 성찰하고 남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과거의 아픈 상처는 나를 괴롭힌다.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시험에 빠뜨린다. 사소한 계기로 옛 상처가 떠오르고, 영문 모를 죄책감, 불안감이 엄습한다. 더러는 그러한 감정을 '격리'하고, '부정'하며, '회피'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심리적 문제를 악화시키고 강박적 행동까지 유발한다면, 혹은 복수심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무기력한 자신이 바보같다면, 쉽게 남을 믿고 타인의 이목과 의견에 휘둘리는 모습이 안타깝다면, 누군가가 왜 저렇게 거짓말로 사람을 기만하고 자신을 합리화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라면, 오히려 심리 방어기제가 삶을 망치는 것이다. 

 

예컨대, 한 중년 여성은 심리상담 전문가인 저자를 찾아와 남편이 내심 이혼하고 싶어한다며 걱정했다. 그러나 상담 결과 그녀는 미혼인 또래 여성 동료가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고, 도리어 남편에게 자기 욕망을 '투사'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가 남편의 사소한 무관심, 행동을 이혼을 향한 갈망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녀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후 남편에게 털어놓았고, 대화를 통해 더욱 안정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내가 어떤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며, 그 기저에는 어떤 심리와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지 안다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나아가 남이 어떠한 방어기제를 활용하는지 이해한다면, 마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라'는 격언처럼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방어기제를 이해하고 내 마음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보다 자연스럽게 마음 속 상처와 불안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럼 그동안 무조건 지우고만 싶었던 상처 속에 자신감과 행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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