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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시민의 조건 -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
로버트 파우저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3월
평점 :
지난 4.13 20대 총선 결과는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사전 여론조사와
달리, 여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졌으며,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어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다. 삼십여 년 가까이 공고하게 지속된 지역기반 정치의 균열이 일어난
것은 특기할 사안이다.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미 있는 의석수를 만들어내는 등 전국정당으로 거듭났으나, 텃밭이던 호남에서 국민의당에 참패했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괄목할 만했고, 다시금 민의(民意)와 민주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부제가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인
<미래 시민의 조건>은
시의적절하다.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서울대학교 최초의 외국인 국문학과 교수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문학을 가르칠 정도로 한국 문화에 해박하면서 동시에 미국인인 제
3자의 시각을 갖고, 한국 사회 시민의 역할,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시민이란 무엇인가에 집중한다. '시민'의 역사적
연원과 사상을 다양하게 살펴본 후, 한국이란 토양에서 시민의 역할을 역설한다. 시민이란 공동체 내에서 권리와 책임을 가진 사람으로, 저자는
"시민은 개인이지만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책임과 함께 공동체 '집단의 힘과 번영'에 대한 책임도 있다. 이 두 책임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지만,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나온 것이다."(p.180)라고 한다.
<미래 시민의 조건>은 특정 이데올로그와 날선
비판보다 균형 잡힌 민주 시민의 역량을 강조한다. 독자에 따라선 이러한 입장이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자가 30여년 간 한국,
일본과 인연을 맺고 체험한 경험담과 한, 미, 일 삼국의 민주주의를 비교하고 고민한 흔적을 담았다. 이 책의 매력포인트다.
책은 한국 사회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다루고 있다.
군사독재를 비롯한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이해, 보수와 진보의 대립, 세대 갈등의 기저에 있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시각차,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교육열과
경쟁사회의 모습, 다문화 문제,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 주입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 한국 특유의 '문화적 기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서울대
외국인 교수 시절 느낀 형식적인 국제화의 허울 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 보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의식과 정치 참여를
주장한다.
저자는 토머스 '팁' 오닐 전 미국 하원의장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정치는 로컬(local)이다."(p.201) 제왕적 대통령제를 위시한 권력집중형 구조, '강남'의 부의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분산형 권력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방제, 내각제, 재벌 구조 해체를 논의해 보고, 나아가 시민 참여형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저자가 직접 서촌 한옥에 살면서 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 조직해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한 것처럼, 단순히 제도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시민 활동을 통해 민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길 권한다.
"영어의 'idiot'(바보 또는
멍청이)는 고대 그리스어의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리스에서 무식한 사람은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없고 공동체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는
의미이다."(p.26)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던가. 결국 헬조선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역량은 민주시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에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귀중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시민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p.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