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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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주춧돌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메리 셀리

브램 스토커

H.P.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도널드 윈드레이

프리츠 라이버

오거스트 덜리스

셜리 잭슨

로버트 블록

피터 스트라우브

 

그리고 「판이라는 위대한 신」이라는 단편소설로 평생 내 기억에 아로새겨진 아서 매컨.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리바이벌>은 위의 헌사로 시작한다. 단순히 치하하는 글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그들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유명한 호러소설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그들의 자취를 잘 따라간다는 것.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크툴루 신화처럼 불후의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에겐 선물같은 작품이다. 단점도 마찬가지. 이들 작품을 본 독자는 낯익은 설정과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1950~60년 즈음 미국의 한 작은 마을 교회. 젊은 목사 부부가 부임해 온다. 목사 부부는 친절하고 열성적이어서 소년, 소녀들의 우상이 된다. 목사는 이공계 출신이었는지 각종 전기 장치를 곧잘 만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적을 전기 장치로 개발하여 어린 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단란하고 멋진 목사 부부에게 어느날 재앙같은 사고가 일어난다. 차사고로 아내와 딸(아들일지도 모른다.)이 처참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후로 목사에게 불신이 싹트기 시작하고 급기야 충격적인 내용의 설교를 하여 마을을 뒤집어놓는다. 결국 목사는 마을을 떠난다.

 

 

한편 한 어린 소년은 목사를 유난히 따랐고, 그를 잊지 못한 채 성장한다. 히피 문화를 받아들이고 b급 뮤지션으로 생활하면서 알콜과 약물에 찌든 삶을 살던 중, 목사에게 다시 연락이 온다. 그는 기상천외한 실험에 동참하게 된다.

 

 

작품은 중년이 된 어린 소년의 회고록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이나 여타 소설처럼 우여곡절 많은 성장기를 보낸다. 유년 시절 젊은 목사를 만나 잊지 못할 체험을 하게 된 계기, 청년기에 히피 문화에 빠져 산 시간, 장년이 되어 목사를 다시 만나면서 겪는 충격적인 초자연적 경험담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전도유망한 목사가 충격적인 사고를 겪고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목사였던 그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전기 장치를 고안했지만, 사고 이후 그는 신의 존재를 회의하고 초자연적 세계를 탐구하는 매드사이언티스트로 거듭난다. 전기, 전자공학자가 미치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앞서 밝혔듯, <리바이벌>은 호러소설 마니아들이 익숙하지만 읽고 싶어하는 요소를 잘 버무렸다. 대신 신선하진 않다.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에게 영감을 받은 스티븐 킹에게 초자연적인 경험, 사후세계란 어떤 모습일지 대충 짐작이 간다. 개인적으로 미국 히피 문화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중반부가 지루하고 짜임새 없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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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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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는 공포 소설계에서 촉망 받는 박해로 작가의 국산 오컬트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제목인 살(煞)은 민간 신앙에서 흉악한 기운을 일컫는 것으로, 살을 통해 남에게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성수청 무녀 월)이 김수현(왕 훤)에게 살을 쏘았다는 누명을 받고 모진 고문을 당할 때, 엄동설한에 주리를 틀리며 "저는 살을 쏘지 않았습니다." 절규하던 그것이다.

 

 

장르 앞에 굳이 국적을 붙인 이유는 우리나라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여 현지화된 공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사바하>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떠오른다. 국적 있는 공포물은 현지인에겐 살갖에 와닿는 소름을, 외국인에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어중간한 세계화보다 목적 뚜렷한 현지화가 더 경쟁력 있다.

 

 

<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읽은지 1년이 넘었다.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덕분에 잊을만하면 가끔식 생각이 나는 작품이라 결국 리뷰를 쓴다. 초등학교 교사 조윤식은 동료 여교사 영희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게획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새엄마 정금옥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하필 윤식이 결혼을 염두해 둔 시점에서 석방되었다. 영희는 윤식에게 넌지시 금옥을 제거할 방법을 알려주고 윤식은 영희가 소개시켜 준 무당이 시키는대로 상갓집을 오가며 살을 날릴 준비를 한다. 한편, 소도시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죽음과 기이한 현상에 의혹을 품은 형사 종환은 미스터리를 파헤지기 시작한다.  

 

 

상갓집을 전전하며 새엄마를 죽이기 위한 살을 준비하는 윤식, 그를 부추기는 영희와 미스터리한 주변 인물들, 때마침 소도시에서 연이어 들리는 부고 소식과 새엄마 금옥의 발작 증세, 이를 파헤치는 종환의 스토리가 무속 신앙과 살을 소재로 맞물려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 무속 신앙이 가지는 위치가 아이러니해서 설정이 더 흥미롭다. 골목 골목 다녀보면 신점 상담소가 많고 내 주변엔 무속인 팔자를 타고났다는 친척과 이웃이 한 명쯤은 꼭 있다. 하지만 무속 신앙하면 일단 학을 떼는 사람도 많다. 일상에서 의지하고 당연한듯이 소재거리로 삼으면서, 한편으론 금기시하고 경계한다. 친근하지만 멀다. 그래서 미스터리하고 무섭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살의 정체가 드러나고 막바지엔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평이 엇갈린다. 드디어 미스터리와 복선이 풀리고 스케일이 커지며 거대한 공포가 시작되니 흥미진진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에, 미시적이고 알 수 없는 공포를 끝까지 끌고 나가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나갔다면 전개가 더 세련됐으리란 평가가 있다 보여지지 않아 더욱 두렵던 미지의 것들이 일순간에 거대한 형체로 뚜렷이 나타나니 현실감과 두려움의 여지를 오히려 반감시켰다고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니 참고 바란다.

 

 

우리나라에 오컬트 매니아, 공포물 매니아층이 의외로 두텁다. <퇴마록>이 천만 부 이상 팔렸고, 스티븐 킹 작가의 소설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퇴마나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도 흥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창작 현실은 개척할 점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르 소설에 대한 편견도 한 몫 거든다. 양질의 한국형 오컬트물을 더 갈망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바하> 정재현 감독이 우리나라 영화계의 오컬트 거장이 되길 바라는 관객이 많은 것처럼, 소설 독자라면 박해로 작가를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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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이동진 영화평론집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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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을 싫어하는 관객이 있다. 영화를 재미로 봐야지, 굳이 분석하고 따질 필요가 있냐는 논리다. 평론가 평점은 그들만의 리그 같고 공감이 안 된다. 칸을 비롯한 해외 유수 영화제 수상작은 일단 거른다. 그들에게 평론은 전문가의 밥벌이일 뿐 일반 관객에겐 불친절한 작업이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의문이다. 왜 볼멘소리를 하면서 굳이 전문가 별점과 한줄평을 찾아볼까. 어찌됐건 내심 궁금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 대다수 관객은 전문가 별점과 한줄평, 평론을 참고한다. 박평식 평론가의 짠 평점을 비아냥거리지만 정작 한줄평란에 박평식 석 자가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접속 무비 월드>. <방구석 1열>같은 영화 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이미 몇십만 구독자를 가진 개인 리뷰 블로거, 유투버가 꽤 활동한다. 세상이 그렇듯 영화도 알고 보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이 던지는 주제와 철학, 그것을 표현하는 스토리 전개와 기법들, 장면 속 미장센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면 재미는 배가된다. 이동진 평론가는 말한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극장 밖에서.

 

감독과 배우가 극장 안 담당자라면, 극장 밖 전문가는 영화평론가다. 극장 밖에서 영화를 씹고 뜯고 맛보는 사이 더 진한 맛을 알게 되는데, 대표적인 길잡이가 바로 그들이다.

 

 

실제로 극장 안 영화와 극장 밖 영화를 동시에 보고 싶은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요즘은 무대 인사를 넘어 영화 GV가 인기를 끌고 있다. GV란 Guest Visit의 약자로 영화 상영 전후에 영화 감독, 배우 등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해당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말한다. 영화 관계자는 관객에게 영화의 이모저모를 직접 전달하고, 관객은 감독, 배우와 한층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면서 작품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대체로 영화 전문가가 GV 진행을 맡아 관계자와 관객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 만약 관객에게 GV 사회자로 누가 먼저 떠오르는지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이동진 영화평론가를 꼽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평이 나 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이동진 평론가가 쓴 평론집이다. 이십 여 년을 영화 전문 기자, 평론가로 활동했고,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평론가임에도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로서 입자와 대중적 인기를 두루 갖추었다. 책은 1999년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화제작 <기생충>까지 최근 20년 간의 개봉작을 다룬다. 평론 수만 이백 여 편이 넘는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염두해 두고 작품을 선정한 노력이 보인다.

 

 

예컨대, <시민 케인>처럼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고전이지만 나같은 사람이 과연 찾아볼까 하는 작품은 없다. <토리노의 말>은 2011년 작에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대중성은 어디에 떨어뜨렸다는 관객평이 많은 영화다. 다행히 없다. 이동진 평론가를 아는 독자는 평소 작가가 벨라 타르 감독을 애정하며 언급하는 모습을 종종 봤을 것이다. 덕분에 이 책에 관심 있는 독자는 굳이 영화광이 아니라도 목차 속에서 익숙한 작품을 절반 이상 찾을 수 있다.

 

 

평론은 출간일 2019년 가을 기준 신작에서 구작 순으로 묶었다. 첫 평론작이 <기생충>이다. 핫한 작품이 먼저 치고 나오니 이목을 끈다. 영화 설명은 한 문단을 다 써도 모자라서 아쉽지만 넘어가야겠다. 두 번째 작품 <아사코>도 화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카라타 에리카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모모족 족장으로 우리나라 시청자에게 눈도장 제대로 찍은 배우인데, 최근 일본 매스컴을 통해 톱스타인 남주인공과 오랜 불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웃나라 두 배우가 우리나라 초록창 실검 1위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영화 <아사코>도 실검에 오르내렸다. 이동진 평론가의 촉일까. 자세한 작품 목록은 목차를 참고 바란다.

 

 

<기생충>을 비롯해서 현재 화제인 작품, 또는 관심작이나 감명 깊게 본 작품평을 먼저 읽어보길 권해 본다. 이십여 년 넘게 영화 기자, 평론가로 활동한 내공의 소유자, 거기에 팬덤까지 보유한 사기 캐릭터는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발췌독해도 무방하고 작품 당 다섯 페이지 분량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영화 리뷰 블로거, 유투버가 몇십만 구독자를 보유하는 시대. 그들이 롤모델이라면 이백여 편의 평론을 묶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괜찮은 참고서다. <기생충>처럼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는 못되더라도 <기생충>같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평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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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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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가 개정되어 새로 출간되니 참으로 반갑네요. 하루키 팬이면 지나칠 수 없는 필독서지만, 오래 전 출간된 탓에 도서관에 가면 책이 헐어있거나 시리즈 권수가 빠진 경우도 많을 정도였습니다. 이 참에 한층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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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5-25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 번역본을 샀어요. 오랜만에 보니까 새롭더라구요.
캐모마일님, 오늘도 날씨가 많이 더웠는데,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즐거운 주말, 그리고 편안한 밤 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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