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이동진 영화평론집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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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을 싫어하는 관객이 있다. 영화를 재미로 봐야지, 굳이 분석하고 따질 필요가 있냐는 논리다. 평론가 평점은 그들만의 리그 같고 공감이 안 된다. 칸을 비롯한 해외 유수 영화제 수상작은 일단 거른다. 그들에게 평론은 전문가의 밥벌이일 뿐 일반 관객에겐 불친절한 작업이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의문이다. 왜 볼멘소리를 하면서 굳이 전문가 별점과 한줄평을 찾아볼까. 어찌됐건 내심 궁금하기 때문은 아닐까.

 

 

실제 대다수 관객은 전문가 별점과 한줄평, 평론을 참고한다. 박평식 평론가의 짠 평점을 비아냥거리지만 정작 한줄평란에 박평식 석 자가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접속 무비 월드>. <방구석 1열>같은 영화 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이미 몇십만 구독자를 가진 개인 리뷰 블로거, 유투버가 꽤 활동한다. 세상이 그렇듯 영화도 알고 보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이 던지는 주제와 철학, 그것을 표현하는 스토리 전개와 기법들, 장면 속 미장센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면 재미는 배가된다. 이동진 평론가는 말한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처음 한 번은 극장 안에서, 그다음 극장 밖에서.

 

감독과 배우가 극장 안 담당자라면, 극장 밖 전문가는 영화평론가다. 극장 밖에서 영화를 씹고 뜯고 맛보는 사이 더 진한 맛을 알게 되는데, 대표적인 길잡이가 바로 그들이다.

 

 

실제로 극장 안 영화와 극장 밖 영화를 동시에 보고 싶은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요즘은 무대 인사를 넘어 영화 GV가 인기를 끌고 있다. GV란 Guest Visit의 약자로 영화 상영 전후에 영화 감독, 배우 등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해당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말한다. 영화 관계자는 관객에게 영화의 이모저모를 직접 전달하고, 관객은 감독, 배우와 한층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면서 작품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된다. 대체로 영화 전문가가 GV 진행을 맡아 관계자와 관객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한다. 만약 관객에게 GV 사회자로 누가 먼저 떠오르는지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이동진 영화평론가를 꼽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평이 나 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이동진 평론가가 쓴 평론집이다. 이십 여 년을 영화 전문 기자, 평론가로 활동했고, 감독이나 배우가 아닌 평론가임에도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로서 입자와 대중적 인기를 두루 갖추었다. 책은 1999년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화제작 <기생충>까지 최근 20년 간의 개봉작을 다룬다. 평론 수만 이백 여 편이 넘는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염두해 두고 작품을 선정한 노력이 보인다.

 

 

예컨대, <시민 케인>처럼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고전이지만 나같은 사람이 과연 찾아볼까 하는 작품은 없다. <토리노의 말>은 2011년 작에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대중성은 어디에 떨어뜨렸다는 관객평이 많은 영화다. 다행히 없다. 이동진 평론가를 아는 독자는 평소 작가가 벨라 타르 감독을 애정하며 언급하는 모습을 종종 봤을 것이다. 덕분에 이 책에 관심 있는 독자는 굳이 영화광이 아니라도 목차 속에서 익숙한 작품을 절반 이상 찾을 수 있다.

 

 

평론은 출간일 2019년 가을 기준 신작에서 구작 순으로 묶었다. 첫 평론작이 <기생충>이다. 핫한 작품이 먼저 치고 나오니 이목을 끈다. 영화 설명은 한 문단을 다 써도 모자라서 아쉽지만 넘어가야겠다. 두 번째 작품 <아사코>도 화제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카라타 에리카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모모족 족장으로 우리나라 시청자에게 눈도장 제대로 찍은 배우인데, 최근 일본 매스컴을 통해 톱스타인 남주인공과 오랜 불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웃나라 두 배우가 우리나라 초록창 실검 1위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영화 <아사코>도 실검에 오르내렸다. 이동진 평론가의 촉일까. 자세한 작품 목록은 목차를 참고 바란다.

 

 

<기생충>을 비롯해서 현재 화제인 작품, 또는 관심작이나 감명 깊게 본 작품평을 먼저 읽어보길 권해 본다. 이십여 년 넘게 영화 기자, 평론가로 활동한 내공의 소유자, 거기에 팬덤까지 보유한 사기 캐릭터는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발췌독해도 무방하고 작품 당 다섯 페이지 분량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영화 리뷰 블로거, 유투버가 몇십만 구독자를 보유하는 시대. 그들이 롤모델이라면 이백여 편의 평론을 묶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는 괜찮은 참고서다. <기생충>처럼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는 못되더라도 <기생충>같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평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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