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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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는 공포 소설계에서 촉망 받는 박해로 작가의 국산 오컬트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제목인 살(煞)은 민간 신앙에서 흉악한 기운을 일컫는 것으로, 살을 통해 남에게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성수청 무녀 월)이 김수현(왕 훤)에게 살을 쏘았다는 누명을 받고 모진 고문을 당할 때, 엄동설한에 주리를 틀리며 "저는 살을 쏘지 않았습니다." 절규하던 그것이다.

 

 

장르 앞에 굳이 국적을 붙인 이유는 우리나라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여 현지화된 공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사바하>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떠오른다. 국적 있는 공포물은 현지인에겐 살갖에 와닿는 소름을, 외국인에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어중간한 세계화보다 목적 뚜렷한 현지화가 더 경쟁력 있다.

 

 

<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읽은지 1년이 넘었다.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덕분에 잊을만하면 가끔식 생각이 나는 작품이라 결국 리뷰를 쓴다. 초등학교 교사 조윤식은 동료 여교사 영희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게획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새엄마 정금옥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하필 윤식이 결혼을 염두해 둔 시점에서 석방되었다. 영희는 윤식에게 넌지시 금옥을 제거할 방법을 알려주고 윤식은 영희가 소개시켜 준 무당이 시키는대로 상갓집을 오가며 살을 날릴 준비를 한다. 한편, 소도시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죽음과 기이한 현상에 의혹을 품은 형사 종환은 미스터리를 파헤지기 시작한다.  

 

 

상갓집을 전전하며 새엄마를 죽이기 위한 살을 준비하는 윤식, 그를 부추기는 영희와 미스터리한 주변 인물들, 때마침 소도시에서 연이어 들리는 부고 소식과 새엄마 금옥의 발작 증세, 이를 파헤치는 종환의 스토리가 무속 신앙과 살을 소재로 맞물려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 무속 신앙이 가지는 위치가 아이러니해서 설정이 더 흥미롭다. 골목 골목 다녀보면 신점 상담소가 많고 내 주변엔 무속인 팔자를 타고났다는 친척과 이웃이 한 명쯤은 꼭 있다. 하지만 무속 신앙하면 일단 학을 떼는 사람도 많다. 일상에서 의지하고 당연한듯이 소재거리로 삼으면서, 한편으론 금기시하고 경계한다. 친근하지만 멀다. 그래서 미스터리하고 무섭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살의 정체가 드러나고 막바지엔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평이 엇갈린다. 드디어 미스터리와 복선이 풀리고 스케일이 커지며 거대한 공포가 시작되니 흥미진진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에, 미시적이고 알 수 없는 공포를 끝까지 끌고 나가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나갔다면 전개가 더 세련됐으리란 평가가 있다 보여지지 않아 더욱 두렵던 미지의 것들이 일순간에 거대한 형체로 뚜렷이 나타나니 현실감과 두려움의 여지를 오히려 반감시켰다고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니 참고 바란다.

 

 

우리나라에 오컬트 매니아, 공포물 매니아층이 의외로 두텁다. <퇴마록>이 천만 부 이상 팔렸고, 스티븐 킹 작가의 소설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퇴마나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도 흥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창작 현실은 개척할 점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르 소설에 대한 편견도 한 몫 거든다. 양질의 한국형 오컬트물을 더 갈망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바하> 정재현 감독이 우리나라 영화계의 오컬트 거장이 되길 바라는 관객이 많은 것처럼, 소설 독자라면 박해로 작가를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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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