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비밀 - 잠자는 거인, 무기력한 아이들을 깨우는 마음의 심폐소생술!
김현수 지음 / 에듀니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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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9년부터 평가한 이래로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학업 성취도는 최상위권이다. 각종 사교육과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만, 자발적인 동기나 흥미보다 스트레스와 억압을 감내하면서 입시 경쟁에 몰리고 있는 탓이다.


경쟁에 몰린 학생들은 무기력을 호소한다. '초등학교 때까진 열심히 했는데, 중학교(혹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아이가 변했어요.' 혹은 '작년까진 안 그랬는데 성적이 심하게 떨어졌어요.' "안 해요!", "못해요!", "몰라요!" '애가 게을러지고 반항을 해요. 학교에 가기 싫어해요.' 심지어 등교 거부를 하기까지. 방송과 주변에서 종종 듣는 이야기다. 이럴 경우 부모는 자녀의 무기력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실제로 <무기력의 비밀> 저자인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ADHD 같은 집중력 장애에 관한 강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요즘은 학생들의 무기력에 관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청년들은 N포 세대라 불린다. 취업, 연애, 결혼 등 당연시되었던 삶의 요소들이 이제는 성취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일본에서도 사토리(득도) 세대라고 하여 젊은이들이 돈벌이와 출세에 관심이 없고 욕망을 억제하는 행태가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아이, 청소년, 청년세대를 막론하고 무기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 <곡성>의 대사인 "뭐시 중헌지도 모르고!" 처럼, 단순히 무기력의 늪에 빠진 학생들을 비난하고 다그치기 바쁘다. 잘못된 대처가 아이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이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예방주사를 맞고 출발하려 한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아이들의 무기력함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슬픔과 분노, 해리와 분열이다. 이 과정의 결과로서 무기력을, 한심하다거나 개념이 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너무 매정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시작하고 싶다." (p.29)


저자는 아이들의 무기력에 관한 관점을 바꾸기를 권한다. 무기력은 다그쳐야 할 원인이 아니라, 아이가 겪고 있는 피로감, 절망과 자기학대, 분노, 트라우마의 결과다. 외려 어른들은 이러한 상황에 무지하고 무기력하여 잘못된 훈육을 한다. 부모의 과잉보호, 지나친 기대, 방임과 무기력, 순응만을 강조하는 태도가 원인일 수 있다. 자녀가 학업을 포기하고 게임 중독에 걸려 현실 도피하는 것도 무기력의 일종이다. 사회적 시스템도 마찬가지. 경쟁과 차별을 일상화하는 교육 분위기, 획일적인 기준으로 줄 세우기 등. 전반적으로 학생들을 불행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무기력의 비밀>은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을 위해 "변화를 이끄는 마음의 심폐소생술"을 제안한다. 비난보다 역설적으로 긍정하고 환대해주기, 존중과 참여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격려해주기, 구체적으로 무기력의 유형별 처방법을 다루고 있다.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상식적이지 않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과잉보호, 과잉기대를 하고, 격려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부담과 은근한 비난을 쏟는 부모들이 많다. 제대로 된 격려 방식과 교육법을 모르면, 애정과 칭찬도 자녀에게 독이 되고 부모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내 자녀, 학생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유도하고, 정서적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길러 험한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청소년, 부모, 일선 교사뿐 아니라 평소 무기력에 빠진 독자들도 참고할 만하다. 올바른 교육과 대처법을 알고 자기 삶에 적용해 보는 경험이 무기력 탈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아이들의 무기력함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슬픔과 분노, 해리와 분열이다. 이 과정의 결과로서 무기력을, 한심하다거나 개념이 없다고 매도하는 것은 너무 매정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시작하고 싶다."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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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생각
정법안 지음, 최갑수 사진 / 쌤앤파커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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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행일치知行一致의 경지다. 불교 선지식善知識들의 삶이 그렇다. 계율과 수행에 엄격하면서도 걸림이 없는 자세. 몸소 실천하는 무소유와 검소함의 태도. 때로 세속인의 안목에선 기행처럼 느껴지는 행적들. 삶이 법문이고 깨달음이다. 비록 족적 하나하나의 참뜻까지 이해하기가 어렵고 선문답禪問答은 아리송하지만, 그분들의 일화는 많은 일깨움을 준다.

<스님의 생각>은 부처님을 비롯하여 경허, 효봉, 성철, 법정, 고산스님, 틱낫한, 달라이라마와 같은 동서고금 고승들의 일화를 담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맥을 잇는 스님들을 주로 다뤄서 새롭고 정감이 갔다. 부처님과 중국 선종 조사들의 유명한 이야기는 많이 접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고승분들은 불자가 아니면 생소한 탓이다. 반면, 익히 들어본 경허, 성철, 법정, 만공 스님이 나오니 반가웠다.


운주사 비구니 스님의 신심 깊은 어머니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마을 장정 두 명이 크게 싸우다가 한 명이 상대의 방 안에 똥을 뿌리자 칼부림이 날 지경까지 이르렀다. 주민들은 비구니 스님의 어머님을 불러 싸움을 말려달라고 간청했는데, 중재는 커녕 묵묵히 방 안의 똥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싸움 당사자들이 무안하여 멍하니 보고 있자, 아주머니는 "이제 다 싸웠능교? 걸레를 하나씩 줄 테니 방이나 닦으세요."(p.85)라고 하였단다.


많은 선승들 중에서 비구니 어머님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던 까닭은, 이해하기 쉬웠지만 곱씹을수록 반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 자기가 옳다는 분별심으로 성을 내고 다투지만, 오히려 싸움을 키우고 남의 방 안에 똥이나 뿌리는 미련한 짓이지 않나 싶다. 묵묵히 냄새나는 똥을 치우는 일이 참 지혜다. 자기가 옳다고 자기가 살길이라고 믿지만, 도리어 사지死地로 향하고 있는 꼴이고 업장業障을 키우는 꼴이다. 과연 내가 진정 슬기로운 삶을 살며, 활로를 찾고 있는지 성찰하게 되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천당은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없는데도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마음속에 번뇌가 많아 문이 환하게 열려 있어도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옥은 오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왜 그럴까? 오역 덩어리를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p.114) 내가 가는 길은 천당인가 지옥 길인가 반문해 볼 일이다.


<스님의 생각>에 나오는 일화 하나하나는 깊이 곱씹고 본받을 만했다. 이야기 끝에 저자가 짧은 코멘트를 달아서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었다. 하지만 굳이 저자의 시각과 해설에 메일 필요 없이, 스스로 인상적인 글귀나 이야기를 가슴에 담는 일이 중요할 듯싶다. 경허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허허, 이제 알겠느냐?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잠깐 사이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한없는 탐욕에 찌들어 사는 것이다." (p.221) 금오 스님은 "스님, 저도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한 청년의 물음에, "이 세상에 부처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p.156)라고 답했다. 불교의 삼독인 탐貪, 진嗔, 치痴를 버리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 <스님의 생각>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허허, 이제 알겠느냐?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잠깐 사이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한없는 탐욕에 찌들어 사는 것이다."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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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중독 -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습관의 늪
최창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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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절반 가까이 지났다. 신년 초의 다짐들을 떠올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올해도 작심삼일로 끝나거나,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계획들이 한 무더기다. 무력감이 들 지경이다. 비록 반년이 지났지만, 남은 2016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서 <결심중독>을 읽어보았다.


<결심중독>은​ 방송 패널, 저술, 교수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사회심리학자 최창호의 신간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결심을 빈번하게 하는 사람을 '중독'으로 분류하고, 과학적인 중독 탈출법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의지박약과 노력 부족으로 폄하되던 결심중독에 관하여 각종 심리학, 과학적 분석을 하고, 독자 스스로가 어떤 결심중독의 유형인지 설문을 통해 알아본 다음, 유형별 처방전을 구체적으로 나열하였다. 막연하게 나는 왜 의지가 약할까, 우유부단할까 자책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던 독자라면, 솔깃한 내용이다.


결심이란 사전적으로 "할 일을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하다, 단단히 마음을 먹다."다. 결심과 실패를 자주 경험하다 보면 결심중독이 된다. 알콜, 마약 등 물질중독, 도박, 쇼핑과 같은 행위중독과 함께 결심, 애정에 대한 집착 등도 심리중독의 범주에 들어간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므로, 혹은 타인에 대한 모방심리, 비교심리로 결심을 반복하지만, 막상 실천은 따르지 않는다. (p.12~31)


결심중독의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적으로 부모의 양육 환경에서 비롯된 학습 효과, 낮은 자존감을 들 수 있다. 뇌과학적으로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결심을 내리지만, 감정을 느끼고 항상성을 추구하는 변연계는 방해한다. 또한 결심을 할 때는 아드레날린과 코티졸 호르몬이 분비되어 동기를 유발하지만, 대체로 3일간 효과를 발휘한다. 작심삼일이 빈번한 이유다. 뇌가 습관으로 인지하기 위해선 21일이 필요한데, 이 동안 아드레날린, 도파민, 멜라토닌, 엔도르핀, 멜라토닌, 옥시토신, 페닐에틸아민, 세로토닌 등 다양한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호르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작용을 하게 되면 결심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책이 호르몬 별로 결심중독 유형을 분류하고, 해결책을 다룬 점은 흥미롭다.

작심삼일의 결심중독이 하나의 심리 중독이며, 뇌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다양한 원인과 해결책을 살펴본 것이 흥미로웠다. 단순히 노력 부족, 의지 약으로 치부하고 나와 타인을 깎아내기만 할 일이 아니다. <결심중독>은 결심중독 수준 체크리스트, 유형 체크리스트, 좌뇌형/우뇌형 체크리스트 등 스스로 분석하고 진단할 수 있게 하여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저자 최창호 교수는 결심중독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PQ(실천지능), SQ(성공지능)을 향상하기를 권한다. 다만 결심중독에 관하여 긍정, 행동, 사회심리학, 뇌과학, 각종 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백과사전 같은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자칫 독서 집중력을 잃을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 각종 체크리스트들을 통해 자기 분석의 시간을 꼭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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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테러리스트 - 나의 감정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감지하고 제거하기
레오 마르틴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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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죽기 전까지 숙제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영혼관계에 골머리를 썩을 듯하다. 아들러 심리학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로 귀결된다고 하지 않었던가. 특히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질 정도로 내 감정과 자존감을 갉아 먹는 부류가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마음에 테러를 가하는 인간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감정 테러리스트>는 "특정 행동이나 말을 토해 상대방에게 테러를 가하는 인간들"을 7가지로 분류하고, 대처법을 설명한다.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교뵤한 술수와 엄청난 폭발력이 잠재해 있"(p.008)기 때문이다. 이들  "감정 테러리스트, 구타 유발자, 고의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감정 살인자들" (p.036)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내성을 키울 수 있는 '우리가 감정 테러리스트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이유'와 '전투력 강화를 위한 007 대작전'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레오 마르틴은 대학에서 범죄학을 전공하고, 10년간 독일 연방정보원 정보국에서 요원으로 근무한 베테랑이다.(저자소개 참조) 범죄학과 정보국 경험을 살려서 '감정 테러리스트'와 '먹잇감'에 대한 행태를 탐구한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출연한 프로파일러 표창원 의원,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가 연상된다. 거친 이야기를 다뤄서일까. 트렌드를 살린 신조어, 약간의 비속어를 섞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더러운 인간들 많이 만나서 인생 경험 많은 친구에게 조언을 듣는 친근감을 준다.


감정 테러리스트의 7가지 유형은 다음과 같다.

- 공격적 성향의 다혈질형 감정 테러리스트

- 오만하고 도도한 자만심 과다형 감정 테러리스트

- 분위기 망치는 불평불만분자형 감정 테러리스트

- 세상만사가 괴로운 만성 스트레스 환자형 감정 테러리스트

- 잔머리 굴리는 데에 일등인 술수꾼형 감정 테러리스트

-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척척박사형 감정 테러리스트

- 끊임없이 지껄이는 수다꾼형 감정 테러리스트

개​​인적으로 주변에 '불평불만분자형' 감정 테러리스트가 있어서 공감이 갔다. '오류 검사 프로그램'이 내장된 것마냥 남의 문제를 꼬집고, 문제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꼬집고는 득의양양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자기 잘못은 죽어라 시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방어로 남을 헐뜯는 유형이다. (감정테러리스트>는 예의를 차린답시고 참고 견디거나, 논리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오히려 불평분만분자들의 덫에 걸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가르친다. 차라리 불평을 털어놓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무시하고, 내 쪽에서 선제공격을 하거나임무를 부과하여 말문을 먼저 막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특히 동의하는 척을 하면서 본론을 이야기하지만, 절대 불평에 동조는 하지 않고 자기의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핵심이다. 감정테러리스트에게 대응한답시고 진지하게 응대해 주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것이고, 그들의 놓은 프레임의 덫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전투력 강화를 위한 007 대작전​'은 감정테러리스트들이 함부로 먹잇감을 삼지 못하는 인간형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가르친다. 원론적이고 결과론적인 면이 있어서, 감정테러리스트의 7가지 유형보다 재기발랄하고 신랄하지는 않지만, 방향성 형성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감정 테러리스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를 방어하는 기술. 하루 아침에 거듭날 수는 없지만 꾸준히 배워나가야 한다. <감정 테러리스트>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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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찾은 자본주의 문제와 해법
김근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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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benevolence 때문이 아니라 그들 이기심their own interest에 대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p.158) 여전히 인용되는 <국부론>의 구절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개인의 이기심과 분업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되어 사회적 부를 증진한다고 보았으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여 국방, 치안 등의 공공재를 제외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한 야경 국가론을 주장했다고 누누이 배웠다. 21세기 현재도 교육 현장을 비롯하여 언론, 토론 방송 등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론자의 대명사로 부각된 탓에 그의 전반적인 사상이나 주장의 정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정작 당대를 살았던 인간 애덤 스미스에 무지한 채, 후세인들의 입맛과 자의적 해석으로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만을 만났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제목 그대로 애덤 스미스를 다룬다. 경제학의 아버지, 자유방임주의의 맥락에서 '인용'된 사상가의 족적이 아니다.


텍스트(text)를 이해하기 위해선 컨텍스트(context)를 알아야 한다. 한 사상가를 제대로 조명하려면 그의 생애와 당대의 사회, 역사적 배경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경제 원리는 18세기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당시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가 화폐, 금, 은 등의 귀금속의 보유량으로 인식했고, 상인, 제조업자들의 이익을 국가적으로 보호, 장려하였다. 오히려 "당시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업조합법, 도제법, 거주법과 같은 악법이 경제적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이를 철폐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자유를 줄 것을 주장했다." (p.22) 또한 국부란 귀금속의 총량이 아닌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며, 분업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하였다. 즉, 국부의 증가는 사회 생산성 향상과 후생 증가다.


특히 <도덕감정론>을 논의하지 않고는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원래 명망 있는 도덕철학자였던 그는, 윤리의 원천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동감(同感)에 있고, 이것이 발전하여 내면에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개념을 설정한다. 마치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역지사지의 정신인 서(恕)가 연상된다. 앞서 빵집 주인은 이기심(selfishness)이 자기이익(self-interest) 추구로, "타인과 동감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신중하게 타인의 피해를 주지 않는 정으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p.159) 동감 안에는 공정성, 정의감 등 다양한 도덕 판단이 내제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자기이익 추구를 현대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즉 이윤극대화,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형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말미에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신고전경제학파, 신자유주의자가 합리적 인간형을 전제하면서 도출한 시장의 자기조절능력, 최적화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제약하고, 모든 계층이 누릴 수 있는 공감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며, 그 과실을 사회 전반이 누리는 사회를 바랐다.  <애덤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사상을 직접적으로 읽지 않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사상을 조명한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11가지 오해'(p.21)를 조목조목 밝힌다. 마치 스미스가 시장만능론자,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이기심, 기업의 이윤극대화, 자본가의 이익 우선, 금융시장 자유화의 사상적 원류로 이해했던 '통념'을 친절하게 바로잡는다. 이러한 오해는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폴 사무엘슨이나 신자유주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처럼 경제학의 거두들마저 학파를 가리지 않고 잘못된 인용을 하였으니, 어쩌면 일반 독자들에겐 당연하겠다. 고전 명작은 모두가 알지만 읽은 사람은 드문 작품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부론>, <도덕감정론>도 빼놓을 수 없다. 심각한 문제는 사상을 '통념'과 자의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여론과 사회적 담론을 호도하는 관행이다.


현재 그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바람직한 시장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언급하고, <논어> 등 유교 사상과 유사점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금융과두제와 재벌 카르텔은 공고화되었고,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있으며,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스미스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사회 복지가 증진된다고 하였지만, 현실은 1970년대 이후 생산성 상승분보다 임금 증가분은 미미하다. 저자 김근배 교수는 이 점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과거 중상주의와 같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애덤 스미스에 대한 '통념' 바로잡기에 나섰다. "통념을 깨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손이 보입니다. 경제적 약자도 포용하는 따뜻한 손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병든 이기심의 자본주의를 구할 동감의 손입니다." (p.352)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가 아닌, 이제는 진정한 애덤 스미스를 만나야 한다. 동감에 기반을 둔 따뜻한 자본주의. 그가 바라던 세상을 이해하는 시간은 값진 경험이었다.

"통념을 깨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손이 보입니다. 경제적 약자도 포용하는 따뜻한 손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병든 이기심의 자본주의를 구할 동감의 손입니다."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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