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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찾은 자본주의 문제와 해법
김근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benevolence 때문이 아니라 그들 이기심their own interest에 대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p.158) 여전히 인용되는 <국부론>의 구절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개인의 이기심과 분업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되어 사회적 부를 증진한다고 보았으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여 국방, 치안 등의 공공재를 제외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한 야경 국가론을 주장했다고 누누이 배웠다. 21세기 현재도 교육 현장을 비롯하여 언론, 토론 방송 등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론자의 대명사로 부각된 탓에 그의 전반적인 사상이나 주장의 정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정작 당대를 살았던 인간 애덤 스미스에 무지한 채, 후세인들의 입맛과 자의적 해석으로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만을 만났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제목 그대로 애덤 스미스를 다룬다. 경제학의 아버지, 자유방임주의의 맥락에서 '인용'된 사상가의 족적이 아니다.
텍스트(text)를 이해하기 위해선 컨텍스트(context)를 알아야 한다. 한 사상가를 제대로 조명하려면 그의 생애와 당대의 사회, 역사적 배경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경제 원리는 18세기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당시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가 화폐, 금, 은 등의 귀금속의 보유량으로 인식했고, 상인, 제조업자들의 이익을 국가적으로 보호, 장려하였다. 오히려 "당시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업조합법, 도제법, 거주법과 같은 악법이 경제적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이를 철폐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자유를 줄 것을 주장했다." (p.22) 또한 국부란 귀금속의 총량이 아닌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며, 분업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하였다. 즉, 국부의 증가는 사회 생산성 향상과 후생 증가다.
특히 <도덕감정론>을 논의하지 않고는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원래 명망 있는 도덕철학자였던 그는, 윤리의 원천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동감(同感)에 있고, 이것이 발전하여 내면에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개념을 설정한다. 마치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역지사지의 정신인 서(恕)가 연상된다. 앞서 빵집 주인은 이기심(selfishness)이 자기이익(self-interest) 추구로, "타인과 동감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신중하게 타인의 피해를 주지 않는 정으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p.159) 동감 안에는 공정성, 정의감 등 다양한 도덕 판단이 내제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자기이익 추구를 현대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즉 이윤극대화,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형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말미에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신고전경제학파, 신자유주의자가 합리적 인간형을 전제하면서 도출한 시장의 자기조절능력, 최적화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제약하고, 모든 계층이 누릴 수 있는 공감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며, 그 과실을 사회 전반이 누리는 사회를 바랐다. <애덤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사상을 직접적으로 읽지 않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사상을 조명한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11가지 오해'(p.21)를 조목조목 밝힌다. 마치 스미스가 시장만능론자,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이기심, 기업의 이윤극대화, 자본가의 이익 우선, 금융시장 자유화의 사상적 원류로 이해했던 '통념'을 친절하게 바로잡는다. 이러한 오해는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폴 사무엘슨이나 신자유주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처럼 경제학의 거두들마저 학파를 가리지 않고 잘못된 인용을 하였으니, 어쩌면 일반 독자들에겐 당연하겠다. 고전 명작은 모두가 알지만 읽은 사람은 드문 작품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부론>, <도덕감정론>도 빼놓을 수 없다. 심각한 문제는 사상을 '통념'과 자의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여론과 사회적 담론을 호도하는 관행이다.
현재 그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바람직한 시장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언급하고, <논어> 등 유교 사상과 유사점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금융과두제와 재벌 카르텔은 공고화되었고,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있으며,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스미스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사회 복지가 증진된다고 하였지만, 현실은 1970년대 이후 생산성 상승분보다 임금 증가분은 미미하다. 저자 김근배 교수는 이 점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과거 중상주의와 같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애덤 스미스에 대한 '통념' 바로잡기에 나섰다. "통념을 깨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손이 보입니다. 경제적 약자도 포용하는 따뜻한 손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병든 이기심의 자본주의를 구할 동감의 손입니다." (p.352)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가 아닌, 이제는 진정한 애덤 스미스를 만나야 한다. 동감에 기반을 둔 따뜻한 자본주의. 그가 바라던 세상을 이해하는 시간은 값진 경험이었다.
"통념을 깨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손이 보입니다. 경제적 약자도 포용하는 따뜻한 손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병든 이기심의 자본주의를 구할 동감의 손입니다."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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