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가 개봉 12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다룬 재난 영화로, 극중 한별 발전소는 위치나 역사가 실제 우리나라 1호기 고리 원전을 떠올리게 하여 현실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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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도시에서 자란 소시민 재혁(김남길 분)은 발전소 일을 그만두고 도시를 떠나고 싶다. 어렸을 적엔 발전소를 바라보며, 저게 우리에게 전기를 주고 먹여살리는 큰 밥통이니 고마워해야 한댔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을 피폭 사고로 잃은 후, 원자력의 무서움을 여실히 체감했다. 원전 도시라 논밭도 없고 다른 산업이 들어오지 않는 도시. 오직 원전이 생계 터전인 도시. 친구와 식구들은 철이 없다며 말리지만, 재혁은 차라리 원양어선을 타서 한밑천 잡는 게 더 낫다고 여긴다.
원전 소장 평섭(정진영 분)은 발전소의 노후 상태와 위험을 보고서로 작성하지만, 번번히 묵살된다. 대통령은 현안 보고를 받지 못한다. 총리(이경영)과 원전 개발론자들인 국무위원, 청와대 실세들은 정보를 차단하고 원전의 편리함, 안정성만을 주장한다. 영부인에게 평섭의 보고서를 올린 비서관을 짜른다. 더군다나 원전의 "원"자도 제대로 모르는 낙하산 책임자가 한별 원자력 발전소로 부임하고, 소장 평섭을 한직으로 좌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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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발생한 진도 6.1의 지진. 주먹구구식 검사를 마친 40년된 원전에 균열이 생긴다. 반경 30km 이내에 있는 대도시를 합치면 인구만 3백 만이 넘는다. 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은 언론 통제와 사건 무마에만 급급하다. 대통령 보고라인은 제 역할을 못한다. 초기 대응과 주민 대피 골든 타임을 놓치고, 결국 원전은 폭발한다. 자동차 공장 등 근처 각종 산업단지는 마비되고, 대피 주민들로 인하여 큰 혼란이 일어난다.
영화는 재난 영화의 전형을 따른다. 갑작스런 자연 재해, 골든 타임을 놓친 인재, 무능하고 보신에 급급한 책임 관료들, 신파적인 가족애. 영웅담. 모든 것을 버무렸다. 평론가 평점이 6점인 이유는 재난 영화 특유의 신파와 클리셰를 곳곳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대중적 코드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흥미지만, 이미 기법에 익숙하다면 지루한 답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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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은 속편을 만들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영화가 현실을 못 쫒아가기 때문에 제작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중국 언론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여전히 진상은 명명백백히 밝혀지지 못한 채,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영화가 끝날 때, 자막으로 우리나라 원전 현실을 알려준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많은 국가들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지만, 우리나라는 추가로 4기를 더 생산할 예정이며, 원전밀집도 1위국이라는 현실이다. 희대의 원전 사고인 러시아 체르노빌 사태도 실상은 관리자의 업무 태만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미미한 균열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연 <판도라>의 모티브가 된 고리 혹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최근 경주 부근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여진이 종종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라고 자신할 수 없다. 기상 이변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현대에서 후쿠시마 사태가 우리나라에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반면교사를 삼아야 한다. <판도라>가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다. 원전의 위험성을 관객에게 알리는 것. 그리고 대형 참사에 무능했던, 구조할 수 있었지만 결국 안타까운 희생을 일으켰던 그 참담함. 현실이 오버랩되어 눈물이 맺혔다. 영화보다 더한 현실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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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혁을 보면서 고 김관흥 민간잠수사를 떠올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봉사를 하기 위해 자진해서 팽목항으로 달려간 고 김관흥 열사. 그러나 정부와 구조 업체의 태만 속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채, 트라우마로 고생하다가 스스로 생을 달리하셨다. 그 분의 유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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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일을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