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맨션 - 수천조의 우주 시장을 선점한 천재 너드들의 저택
애슐리 반스 지음, 조용빈 옮김 / 쌤앤파커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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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로켓을 만들어 날리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건 정말로 경이롭다. 국가도 실패하는 일을, 어떻게 감히 개인이 이룬단 말인가? 그러나 국가가 저지르는 온갖 똥멍청이짓을 떠올리면 중력이라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주체는 창의적인 개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가 만드는 SNS, 영화, 드라마, 핀테크 서비스를 생각해 보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로켓을 국가가 만드는 이유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상업성은 고사하고 발사 성공까지 가는데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납세자들의 돈과 '우리는 반드시 우주에서 소련을 이겨야 합니다' 정도의 선전이 없으면 미국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로켓 강국이 되겠다며 매년 50조의 예산을 쏟아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기에 핵탄두를 실어 북조선을 조지겠다는 공약 저도는 해줘야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미친 짓을 개인이 하겠다는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먼저 일론 머스크 얘기를 해보자. 헛소리를 자주 해 코미디언처럼 보일 때가 많아 그렇지 사실 이 남자의 지능과 추진력은 인간계를 한참이나 벗어난 지 오래다. 일론 머스크는 로켓 발사에 성공한 것을 넘어 뛰어나게 잘 해냈다. 그는 우주에 수천 개의 위성을 띄웠고 발사체를 재활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레인보우 맨션>은 일론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은 일론만큼 미친 사람이 이 세상에 한 둘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한다. 이들에 비해 일론은 저 멀리 나아간 사람, 아니 지구를 넘어 우주인과 경쟁하는 생물이라는 걸 보여주긴 하지만, 마이너 리그는 마이너 리그 나름의 맛이 있다. 알파고에게 인류가 패배한 이후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아진 바둑처럼, 인간계의 싸움은 정말로 볼만하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NASA가 너무 낡았기 때문이다. NASA는 거대한 관료조직으로 변해 모든 창의적 시도를 거부하는 죽은 세포가 되었다. 그들은 로켓이 애들의 장난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때로는 아이들의 장난에서 기가 막힌 통찰력이 나온다는 건 몰랐다. 그들은 로켓과 위성의 부품에 까다로운 기준을 설정했고 <레인보우 맨션>의 천재들은 소비자 가전의 품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30년 전만 해도 연구소나 소유할 법한 초고성능 워크스테이션보다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월 59,900원에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 로켓맨들은 위성과 로켓이 그렇게 비쌀 필요가 없고, 만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몇 년을 검토하고 검토하고 검토하고 검토해 발사할 때쯤엔 이미 10년은 뒤쳐진 기술이 되는 인공위성과 로켓. 인간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기에 이 시차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플래닛랩스는 비둘기만 한 위성 수천 대를 지구 저궤도에 올리려 한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뉴질랜드의 피터 벡은 약 230kg의 화물을 500만 달러에 궤도로 운송하는 소형 로켓을 발사한다. 그의 목표는 3일에 한번, 로켓을 띄우는 것이다. 나사라면 같은 일을 하는데 3천만에서 3억 달러를 썼을 것이다. 피터 벡의 로켓랩은 스페이스X 이후 가장 성공한 로켓 회사가 됐다. 아스트라와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는 이들의 뒤를 잇는 로켓 스타트업계의 촉망받는 신인이다. 아스트라는 24년 3월 상장을 폐지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중력을 극복하는 일에 매진한다. 필요한 돈을 모두 자기 지갑에서 꺼내 우크라이나의 우주 기술을 미국에 이식하려 한 맥스 폴랴코프는 러시아 스파이로 몰려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에서 쫓겨난다. 폴랴코프를 쫓아낸 회사는 2025년 55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IPO에 성공한다.


필 나이트의 <슈독> 이후 이렇게 재미있는 창업 이야기는 처음 본다. 절대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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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평등 - 부와 권력은 왜 불평등을 허락하는가
토마 피케티.마이클 샌델 지음, 장경덕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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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불평등은 능력주의 신화에서 시작하고, 능력주의 신화는 교육에서 시작하니 사실상 불평등은 교육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학이 서열화하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능력을 평가하는 일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평가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평가가 과학이라면 회사에 멍청이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할 수 없다. 사람들은 공부머리와 일머리를 구분해 이 빌런의 존재를 설명하려 들지만 나에게 이 말은 평가에 관한 우리 자신의 무능력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그냥 눈이 먼 것이다. 능력주의 신화에, 그걸 지탱하는 경력과 학력의 이름값에.


마이클 샌델은 이 문제를 대학 입학 추첨제로 풀려하고 토마 피케티는 그 효과에 부정적이다. 피케티는 좀 더 급진, 강압적이다. 아예 입학 인원의 3분의 2 정도를 저소득층에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만 입학 점수를 낮추든, 가산점을 주든, 방법은 대학의 자유로 하고 국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강력히 규제한다.


둘 다 일리가 있지만 내게는 샌델의 선택이 훨씬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피케티의 방식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낙인을 찍게 된다. 대학 졸업장은 완전히 둘로 나뉠 것이다. 입사 면접관은 출신 대학과 거주지 주소를 조합해 이 사람이 어떻게 그 대학을 나왔는지 추측하려 들 것이다. 지금도 일부 명문대에서는 출신 고등학교의 잠바를 입고 다니며 스스로를 서열화한다고 들었다.


샌델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이유는 그가 '대입과 관련된 능력주의의 오만을 줄이고, 젊은 이들이 청소년기 내내 받게 되는 극심한 압력과 불안을 줄이는'(p. 82)데 목표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 자격을 수능 성적 상위 15% 이내로 넉넉하게 잡은 뒤 그중에서 추첨으로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저 서울대 붙었어요!"라는 말에 "축하해요, 운이 참 좋았네요."라고 말하는 사회라면,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한다. 여기서도 두 가지 접근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저소득층의 소득 자체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 의료, 주거 같은 기본재를 탈상품화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첫 번째 방법에는 눈길도 가지 않는다. 서울의 역세권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를 영유에 보내도 월 300으로 살 수 있다면 돈은 요즘과 같은 권력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병폐는 돈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은 데서 기인한다. 행복과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에 '충분히 많은 돈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라'라고 하는 건 농담이 아니다. 그러니 그렇게 기를 쓰고 돈을 벌려는 것이고 그 첫 번째 관문인 명문대 입학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기본재를 탈상품화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거둬야 한다. 이건 그냥 다 망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유럽의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망한 이유를 이민자에게 돌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내 세금으로 공짜 복지를 누리게 해 줬더니 이제는 일자리마저 뺏어간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유럽조차 점점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게 진짜 원인이 아닐까? 천문학적 이익을 내는 기업들은 전부 조세 회피처로 도망가고 누진세와 상속, 법인, 자본소득세는 낮아지는데 근로소득세는 올라갔다면?


내용을 떠나 샌델과 피케티의 성격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피케티는 샌델을 중도 우파 자유주의자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과격하다. 샌델은 열어 놓고 얘기하려 하고 피케티는 완전한 결론을 원한다. 샌델은 자신의 주장에 이런 목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기꺼이 인정하고, 피케티는 그 생각은 이 문제 때문에 안된다고 마침표를 찍는다. 차이는 나이와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피케티는 왕의 목을 자른 수탉의 나라에 살지 않는가!


몇몇 대목에서는 하도 샌델을 몰아붙여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샌델은 어떻게 해서든 이 토론을 봉합하고 이끌어가려 한다. 18살 차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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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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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전 남편과 전 처를 가진 사람이 부모를 모두 가진 사람보다 많아 보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콜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만 보면 그렇다. 그들에게 이것은 '노멀'인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나의 작은 무법자>의 주인공은 더치스와 로빈, 일명 래들리 가족이다. 로빈은 아주 어리고 래들리는 우리 나이로 치면 중2 정도로 보인다. 둘은 남매다. 더치스가 누나, 로빈이 동생. 더치스는 상당한 문제아다. 머더 퍼커를 입에 달고 사는 데다 온갖 곳에 시비를 털고 자기 엄마의 남자 친구가 될 것 같은 사람의 술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당장 소년원에 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반전은 이 작은 무법자가 가족을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이 문제아의 발작 버튼은 가족이다. 누구든 자기 가족을 건드리면 소녀는 언제든 악마로 변한다.


래들리 가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오자크>에 나오는 랭모어 가족과 많이 닮았다. 더치스 래들리는 아빠가 없고 루스 랭모어는 엄마가 없다. 랭모어는 호숫가에 살고 래들리는 해변에 산다. 래들리는 운전을 못하고 랭모어는 한다. 루스는 학교를 안 다닌 지 한참 됐지만 더치스는 그래도 아직 학교는 다닌다. 더치스가 돌보는 건 자신의 친동생이고 루스는 사촌이다. 루스는 랭모어 가를 위해 멕시코 카르텔의 돈세탁을 돕고 더치스는 래들리 가를 위해 클럽에 불을 지른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둘 다 심도 있게 바라본 바, 루스에 비해 더치스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하다. 스스로를 무법자라고 칭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루스라면 그런 헛짓거리 대신 상대방의 대가리에 총을 겨눴을 것이다.


아무튼 이 나이브한 무법자 덕분에 가족은 점점 더 진창으로 빠져든다. 제발 정신 차리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런 말이 통할 거 같았으면 진작에 이야기는 끝났겠지. 엄마는 알콜중독자에 아빠는 누군지조차 모르며 돌봐줄 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식당에서 케첩을 훔쳐야 할 정도니 열심히 살라는 말이 귀에 찰지 모르겠다.


래들리가의 비극은 래들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이 죽거나 파멸하거나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끝이 난다. 그래도 이 결말을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으니, 이 소설이 얼마나 우중충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보다는 속도가 좀 더 아쉬운 소설이었다. 분량을 100페이지만 줄여줬다면 누가 진범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트릭도 훨씬 잘 먹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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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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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관찰자라는 문장을 봤을 때, 진정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아닌 동작들을 끝도 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이 조용히 움직이는 모양. 그런 것들에는 시간을 녹이는 힘이 있다.


괜한 기대를 할까 말해두겠다. 이 책은 파도가 아니라 파동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 교양서와 수필 사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과학에 팔 할 이상의 힘을 주고 있다. 갑자기 파도가 차갑게 느껴졌나? 이 엄청난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파도라는 현상의 껍질을 벗겨 그 뒤에 숨은 힘의 존재를 꺼내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걸 돕는다.


우리는 파동 자체를 지각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감각이 받아들이는 건 파동이 이동하는 매질의 변화다. 파동이 바다를 선택하면 파도가, 공기를 선택하면 음악이 된다. 그런 면에서 파동은 서로 호환이 가능하다. 동해 바다로 밀려오는 파도의 주파수가 동일한 리듬으로 공기를 통과하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그것은 파도가 바위에 맞아 부서지는 것과는 또 다를 것이다.


아! 생각해 보니 매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파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인간이 빛을 파동으로 이해한 역사는 아주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에 빛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게 참 놀라워 소름이 돋는데, 그래도 이들에게는 약간 귀여운 데가 있었다. 바로 매질이 없어도 빛이 이동할 수 있다는 건 몰라 에테르라는, 빛의 전용 도로를 하나 가정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우주에는 붕괴해야만 존재하는 파동도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파동 함수. 현실은 여러 개의 파동으로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자가 마주하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야겠다고, 울리는 알림을 끄며 눈을 떠야겠다고 결정한 순간 모든 가능성은(파동) 붕괴하고 오직 하나의 파동만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걸 현실이라 부른다.


어떤 파동은 우리 삶에 중요한 흔적을 남기고 어떤 것들은 고속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배경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때로는 그 흐름을 거꾸로 탈 방법을 찾아 남은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파도 관찰은 파동을 보는 것이고, 결국엔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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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 사건지평선 너머의 닿을 수 없는 세계
브라이언 콕스.제프 포셔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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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행복했다. 이렇게 쉬운 블랙홀 책이 있다니. 펜로즈 다이어그램을 만나면서부터 이 행복은 산산조각 났고 그것이 자전하는 블랙홀과 만나 최대로 확장되면서 내 이해력은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단편, 그것도 핵심과는 아주 먼 이야기로 변죽을 올릴 수밖에 없음을 알아주기 바란다.


블랙홀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현대 물리학의 소산처럼 느껴지지만 이 개념은 1783년에 영국의 목사이자 과학자인 존 미셸이 최초로 떠올렸다. 1798년에는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도 돌멩이를 던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빛 까지도 추락할 정도의 강력한 중력을 가진 천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블랙홀의 존재를 가장 격렬히 부정한 사람은 당연 아인슈타인이었다. 물리학계는 1905년을 '위대한 해' 라틴어로는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는데 당시 26세의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었던 아인슈타인이 '광양자 가설'과 '브라운 운동 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과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a.k.a E=MC스퀘어)'라는 4편의 논문을 발표해 그때까지 '물리학'이라 불리던 모든 이론 체계를 '고전 물리학'으로 바꾼 해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인슈타인이 머지않아 퇴물 취급을 받은 이유는 그가 자신이 활짝 열어젖힌 세계가 뿜어내는 이론적 결과물들을 모두 부정했기 때문이다. 슈바르츠실트는 블랙홀을 발명한 게 아니었다. 그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에 적은 방정식을 풀어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블랙홀을 부정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유일한 블랙홀 혐오자는 아니었다. 학계는 두 파로 나뉘어 맹렬히 싸웠고 이 전쟁을 끝낸 건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능력을 쥐어준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였다. 이후 우리는 연료를 소진한 별이 내부의 압력이 사라짐에 따라 자체 중력에 의해 붕괴되어 블랙홀이 만들어진다는 걸 당연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1973년 스티븐 호킹은 조지 엘리스와 공동 집필한 <시공간의 거시적 구조>에서 '우리의 우주는 아득한 과거에 특이점에서 시작됐다.'라고 썼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특이점은 모든 걸 빨아들여 무로 돌리는 시간의 끝 아닌가? 그곳에선 새 우주가 탄생하는 게 아니라 우주의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나? 나는 이 해답을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에서 얻었는데 그때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많은 천재들이 블랙홀을 부정한 이유는 특이점이 모든 이론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블랙홀 안에서 시간은 뒤죽박죽 섞이고 현실은 환상과 자리를 바꾼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우주의 절대 반지 또한 여러 개의 반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때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과학자들의 낙관과 긍정이 이해된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하는 이유는 창조주의 섭리와 기적 때문이 아니다.


우리에게 아직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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