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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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관찰자라는 문장을 봤을 때, 진정 나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아무것도 아닌 동작들을 끝도 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이나,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빛이 조용히 움직이는 모양. 그런 것들에는 시간을 녹이는 힘이 있다.


괜한 기대를 할까 말해두겠다. 이 책은 파도가 아니라 파동에 대한 이야기다. 과학 교양서와 수필 사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과학에 팔 할 이상의 힘을 주고 있다. 갑자기 파도가 차갑게 느껴졌나? 이 엄청난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파도라는 현상의 껍질을 벗겨 그 뒤에 숨은 힘의 존재를 꺼내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걸 돕는다.


우리는 파동 자체를 지각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감각이 받아들이는 건 파동이 이동하는 매질의 변화다. 파동이 바다를 선택하면 파도가, 공기를 선택하면 음악이 된다. 그런 면에서 파동은 서로 호환이 가능하다. 동해 바다로 밀려오는 파도의 주파수가 동일한 리듬으로 공기를 통과하면 어떤 소리가 들릴까? 그것은 파도가 바위에 맞아 부서지는 것과는 또 다를 것이다.


아! 생각해 보니 매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파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인간이 빛을 파동으로 이해한 역사는 아주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날에 빛의 본질을 이해했다는 게 참 놀라워 소름이 돋는데, 그래도 이들에게는 약간 귀여운 데가 있었다. 바로 매질이 없어도 빛이 이동할 수 있다는 건 몰라 에테르라는, 빛의 전용 도로를 하나 가정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우주에는 붕괴해야만 존재하는 파동도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파동 함수. 현실은 여러 개의 파동으로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자가 마주하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야겠다고, 울리는 알림을 끄며 눈을 떠야겠다고 결정한 순간 모든 가능성은(파동) 붕괴하고 오직 하나의 파동만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걸 현실이라 부른다.


어떤 파동은 우리 삶에 중요한 흔적을 남기고 어떤 것들은 고속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배경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때로는 그 흐름을 거꾸로 탈 방법을 찾아 남은 밤을 뒤척이기도 한다. 파도 관찰은 파동을 보는 것이고, 결국엔 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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