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양장) -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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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는 유라시아의 구세계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 이유를 탐구하는 책이다. 놀라운 두께에 질려버릴 수도 있지만 내용은 명쾌하다. 주장을 전개하고 예상되는 반박에 재반박하는 구조를 가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내용이 있고, 자연스럽게 두꺼워졌을 뿐이다. 어려운 내용은 정말 하나도 없다.


유라시아가 타 대륙보다 더 발전한 문명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잉여농산물의 생산이었다. 잉여생산물은 필연적으로 분배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복잡한 사회시스템 예컨대 법, 정치, 행정, 군사, 종교, 문자 등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조직을 운영해 본 사람은 3명만 모여도 엄청난 갈등이 생긴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수 만, 수십 만 명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두기 위해선 정교한 사회 시스템과 특히 이 구성원들을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고유의 '신념 체계'가 필요하다. 신화와 종교는 대부분 이러한 필요에 따라 '발명'되었을 것이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 순서가 반대라고 주장한다) 잉여생산물은 생산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오직 이러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 발전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는 전문가를 길러낼 수 있었다. 이로써 사회의 발전과 생산물의 증가라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자, 인간이 모여있으니 이제 '균'이 등장할 차례다. 수렵, 채집 시기 인구는 적었고 그나마 띄엄띄엄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전염병의 입장에선 아주 척박한 시대였다. 그런데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고 꽉꽉 모여 살아준 덕분에 최고의 환경이 마련됐다. 전염병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대규모 사상자를 만들어냈지만 반대로 이 역병의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은 자신의 튼튼한 면역체계를 후세에 물려줄 수 있었다. 이 균들은 결국 신대륙 침략시기 '쇠'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총과 칼보다, 그들이 들여온 균에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이 죽었다.


이 강력한 균들은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옮아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인간은 삶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물소와 소 같은 농경 도구, 양, 돼지, 염소 같은 단백질원, 심지어 말 같은 전쟁 도구까지 다양한 야생 동물을 가축화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듯, 이 가축들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몇몇 균들을 선물했다.


농경 사회로의 전환은 기술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했다. 때로는 기술이 먼저, 때로는 농업이 먼저 앞서며 각종 도구와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문명 발전의 최전선에 비로소 '쇠'가 등장하는 것이다. 호주에는 지구 최대의 철광석 광산이 있지만 그곳의 원주민들은 야금술을 발명하지 못했다. 그들이 결코 열등해서가 아니었다. 호주 대륙은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이 적었기 때문에 집약적 농경이 발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방으로 고립된 환경은 외부로부터 씨앗과 기술이 전파될 경로까지 차단해 버렸다. 반면 한 덩어리로 묶인 유라시아에서는 기술의 이동 속도가 훨씬 빨랐다. 특히 유라시아 대륙에서 기술의 격차는 곧 생존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 사이에서는 좋은 기술을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훔치기까지 해서라도 발전하려는 압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쟁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당연히, 가속화한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들 것이다. 농업은 유라시아 대륙 국가들만의 전매특허였던가? 인간이 시작됐다고 알려진 아프리카에서는 오직 수렵, 채집만 할 뿐 농사를 짓지는 않았던 걸까? 아메리카에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일으켰던, 잉카와 마야는 잉여생산물 없이 세워진 제국이었는가? 총, 균, 쇠의 관점에서만 보면 결국 유라시아와 타 대륙의 발전 속도의 차이가 인종간 우열에 근거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생각에 단호히 '망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를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애초에 그 총, 균, 쇠가 어떻게 발달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른바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낸 궁극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이 단순한 지리적 요인, 그러니까 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종이라도 땅을 바꾸지는 못한다. 운하를 만들고, 터널을 뚫어 지리를 바꾼다고? 그렇다면 애초에 운하 또는 터널을 만들게 했던 요인은 무엇인가? 사하라 사막의 원주민들에게는 운하를 만드는 기술보다는 사막에서 수분을 보존하고 보충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지역이 산으로 둘러싸여 어떻게 해서든 교통의 편의를 만들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터널을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압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몽고인들에게는? 그들에게 터널 제작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압력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말하는 궁극 원인은 얼추 3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그 땅에는 작물화할 수 있는 식물이 충분했는가. 둘째, 그 땅에는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이 충분했는가. 셋째, 대륙의 형태가 동서로 뻗어있는가, 남북으로 이어지는가. 특히 이 세 번째는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에서 밝히는 가장 탁월한 통찰이 아닐까 싶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총, 균, 쇠>를 독파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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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 카를로 로벨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양자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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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얼핏 심리학 도서로도 보인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니,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효능감을 강화하는 주제를 다룰 것만 같다. 하지만 카를로 로벨리다. 또, 양자역학이다.


카를로 로벨리 책 중에선 독해가 가장 쉬웠지만 그렇다고 내용까지 쉬운 건 아니었다. 로벨리는 이 책에서 기존의 양자역학이 이 세계의 실재에 대해 서술한 것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예컨대 이 세상을 물질의 파동으로 본 슈뢰딩거의 생각이나 관찰이 갖는 의미, 파동 붕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탐구하다 덧붙인 평행우주 같은 관점들이다.


저자는 이 모든 생각들이 양자 세계의 기이함을 어떻게 해서든 설명하기 위해 끼워 맞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세계의 실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말은 양자역학이 갖는 확률적 속성 탓에 단순히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끊임없이 내리쬐는 빛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불연속적인 양자의 집합이다. 마치 수많은 0과 1의 집합인 디지털 세계처럼.


로벨리는 양자이론이 관찰 가능한 것만 설명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생각과 양자이론은 사건이 발생할 확률만을 기술한다는 보른의 주장, 그리고 양자 세계가 근본적으로 입자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한다. 차이는 양자역학이 단순한 확률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을 '관계'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통합한다.


로벨리의 '관계'는 이 세상을 촘촘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으로 정의한다. 어떤 대상의 고유한 속성은 오직 관계에서만 드러난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가진 고유한 속성으로 이뤄진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나의 속성은 오직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나는 분명 회사 사람을 대할 때와 가족을 대할 때 다르다. 나의 성격은 확실히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성이 애초에 나라는 존재에 내재된 게 아니라는 주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런 속성을 드러냈다는 건 애초에 나에게 '그런 면'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닌가?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면서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환경과 상호작용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그렇다고 해도, 그 모습 또한 내가 가지고 있었기에 드러나는 게 아닌가?


로벨리는 상호작용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것이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말이 돈이라는 실체가 사라졌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의미적으로 그렇다는 건지, 아니면 쓰지 않는 돈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거라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전우주의 모든 입자가 더 이상 달과 상호작용하지 않기로 다짐하면, 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로벨리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주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존재는 그 연결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거니까.


정말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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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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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는 대단한 다짐도 없고 그저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다 몸속 어딘가에서 딱지가 진, 생이라면 너무 거창하고, 삶이라면 조금 오그라들지만 그렇다고 생활이라고 내버릴 수는 없는,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에 내내 귀를 기울이는" 결과들이 가라앉아 있다.


홀로 어둠을 헤아리는 기분으로 혼잣말이 징검다리처럼 놓인 단어 하나하나를 건너 시인에게 다가간다.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종종 물에 빠지는 일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젖어가는 마음 안에 "그 소리를 들인다". 들였던 소리가 빠져나 갈 때쯤 이제는 눈보라가 몰려와 젖은 마음을 차갑게 얼리는데, 그 빈 마음이 용기를 내어 묻는다.


바다는 잘 있습니까?


약속하지 않은 사람을 행여나 만날까 싶어 하루종일 터미널에 앉아있는 마음을 돌아본다. 시인은 사랑이 많은 걸까, 희망이 많은 걸까, 부질없는 일을 하고 또 했을 때 오히려 깨끗이 비어버리는 마음의 공허가 좋은 걸까? 우연이 주는 벅차오름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확률이 낮은 일에 하염없이 매달리는 이유만큼은 끝까지 모를 것 같다. 무엇이 조심스러워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가. 전화를 건 뒤 보고 싶다고, 우리 당장 만나자고, 오늘이 안 된다면 내일, 내일이 안 된다면 그다음, 되는 날을 될 때까지 꺼내놓고 맞춰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독이고 다독여서 / 빨래 마르는 동안만큼은 말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게는 말을 너무 하지 않는 것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뱉어낸 말들이 다른 사람들의 몸속을 돌다 찐득하게 달라붙어 풍기는 냄새가 싫은 걸까? 냄새를 두려워한다면 향기도 주어지지 않는다.


시인은 절제와 품위를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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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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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세븐은 일곱 번째 미키다. 여섯 번을 죽었고 일곱 번 태어났다. 기억은 주기적으로 업로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키와 미키 사이에 존재의 단절이 일어난다. 미키의 기억을 온전히 다운로드하지 못한 미키를 이전의 미키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를 우리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기억, 정신, 몸, 외모, DNA.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후보는 외모다. 나와 똑같은 일란성쌍둥이가, 아무리 똑같이 생겨도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음은 몸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 그 집합이 곧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우리가 태어났을 때 갖고 있었던 세포 중 아직까지 존재하는 건 단 한 개도 없다.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모두 죽었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됐다. 테세우스의 배.


다음 후보는 DNA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개념 중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가장 오해가 많은, 일명 유전자. 우리는 대개 우리의 DNA를 복제하면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착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DNA는 조건에 따라 정해진 숫자를 내뱉는 주사위 같은 존재다. 나와 똑같은 DNA를 가졌다고 해서 그게 나일 수는 없다. 심지어 둘은 외모마저 다를 수 있다.


남은 건 기억 혹은 정신이라 부르는 의심쩍은 개념이다.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지를 알고 있다면 후보에서 제외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남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선조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온 민족이 있다고 그들 모두를 같은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좀 더 개별적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우리의 뇌 자체를 정신으로 간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든다. 우리의 모든 정신 상태는 뇌와 연결된 신경과 그 신경의 활동으로 변형된 뇌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결국에는 그걸 우리 자신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이도 완벽한 결론은 아니다.


미키 세븐의 존재적 고민은 미키 에잇과 공존하면서 극단에 이른다. 미키7과 미키8은 정책상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거나 어쩌면 둘 모두 환원 장치로 들어가 단백질을 반납하고 미키 나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미키7과 미키8은 서로의 존재를 숨기기로 한다. 어차피 생긴 건 똑같으니까, 돌아가며 임무를 맡는다. 미키8은 미키7의 여자친구를 뺏고(?) 미키7은 새로운 여자와 바람이 나는 직전까지 이른다. 미키7은 더 이상 미키8이 아니고 둘 모두를 죽여 나인을 만든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키7>이 이렇게 진지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봉준호가 연출하고 로버트 패티슨이 주연하는 <미키17>은 확실히 무게를 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준호 특유의 뒤틀리고 사악하고, 그러면서 웃기는. 나와 완전히 똑같은 그 존재는 어째서 나를 죽이고 싶어 할까? 이상한 나라의 봉준호는 이상한 나라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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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 (40주년 특별 기념판) - 이기적 개인으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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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가 다루는 내용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너무나 유명한 게임이라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정리를 한 번 해보자. 당신과 어떤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두 사람은 각각 협력이나 불협을 택할 수 있다. 둘 모두 협력을 택하면 쌀을 3포대씩 가져가고 한쪽이 협력, 다른 쪽이 불협을 택하면 불협 쪽이 5포대, 다른 쪽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둘 다 불협을 택하면 각각 1포대를 얻는다. 선택에 따른 경우의 수는 협력-협력, 협력-불협, 불협-협력, 불협-불협 총 네 가지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상대방이 협력자든 양아치든 당신은 무조건 '불협'을 택해야 이득이다. 불협-협력은 5포대, 불협-불협은 1포대의 가능성이 생기지만 반대는 3포대와 0포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굳이 성악설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왜 이기적이고 세상은 이토록 각박한지 알게 된다. 역시 남을 잘 믿으면 그저 호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이 게임에 '반복적'이라는 조건을 추가하면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인간인 이상 배반을 당했을 때 그저 '허허' 웃으며 넘길 수만은 없다. 그래서 배반을 한 번 당한 사람은 이후 그 사람과 절대로 협력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이 1년 동안 같이 했을 때 얻는 수익은 최초의 배반자가 16포대, 최초의 협력자는 11포대다. 흠, 이 정도면 처음 겪은 그 더러운 기분이 가시진 않겠지만 그래도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얼마 후 이 마을에 C가 이사를 온다. C는 B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C는 처음부터 B와 협력했고 1년 내내 그 기조를 유지하여 총 36포대를 수확한다. 하지만 A와는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11포대를 얻게 된다. 이후 세 사람이 같은 마을에 10년 동안 같이 살았다고 생각해 보자. A는 B, C와의 관계에서 12포대씩 얻어 10년간 총 240포대를 수확한다. 반면 B와 C는 A와의 관계에서 12포대, 그 외의 관계에서 36포대를 수확해 총 480포대를 얻게 된다. A보다 무려 2배를 버는 것이다!! B와 C는 잉여 생산물을 팔아 그 돈으로 A의 땅을 사들인다. 그리고 그 땅을 D라는, B, C와 매우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 판다. 이것이 잔인하게만 보이는 인간 세상에 '협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다.


이 책은 정말로 놀랍다. 호혜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타주의가 자연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이유를, 윤리나 도덕에 기대지 않고 수학적으로 증명해 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속한 조직에 협력을 뿌리내리고 싶다면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사람들에게 상호작용이 장기적으로 계속된다는 믿을 주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너는 저 사람과 계속 일할 수밖에 없다. 이 조건 하나가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둘째, 더 이상 협력을 바랄 수 없는 쓰레기 같은 팀이어도 협력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소수만 수혈해도 팀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총인원이 10명인 팀에 협력자가 3명, 불협자가 7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보수는 매달 측정되어 불협-불협이 1백만, 협력-협력이 3백만, 불협-협력이 5백만을 가져갈 수 있다. 첫 해에 불협자 7명이 가져갈 수 있는 보수의 총액은 협력자 3명으로부터 각각 1,600 만씩 총 4,800만, 불협자 6명으로부터 각각 1,200 만씩 총 7,200만, 합해서 1억 2천만 원이다. 반면 협력자 1명이 얻을 수 있는 보수는 2명의 다른 협력자로부터 각각 3,600 만씩 총 7,200만, 불협자 7명으로부터 각각 1,100만 원씩 총 7,700만, 합해서 1억 4천9백만 원이다!!!


당신이 저 팀의 불협자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사회생활에는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바보 같은 편견을 계속 유지하며 1.2억의 연봉을 받겠는가? 아니면 내년부터 저 순진하고 멍청한 호구들 편에 서서 1.8억의 연봉을 가져가겠는가?


윤리보다 중요한 건 산수다. "인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 세상 모든 것을 산수로 환원할 수 있다면, 정말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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