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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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논조를 제대로 알리고자 공격적인 말투와 비속어를 섞어 썼으니 너그럽게 이해 바랍니다.


제목만 보면 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쩐내나는 씨앗이 폭력적인 21세기 자본주의의 잔해에서 자라난 개수작 잠언서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이 출판사에서 제대로 읽을 만한 걸 내놓은 셈인데 제목을 번역하는데서 여전히 지진아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경끄기의 기술이라니. 왜? 흰색 커버에 정자로 박아넣고 푸른 하늘을 그려넣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이라는 부제를 달아줬지만 애초에 제목을 잘지었다면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 저자가 글을 잘 쓴다. 이런 류의 책에서 보여지는 요상한 멘탈 관리도, 쓸데없는 가르침도, 무의미한 자기 다짐도 없다. 그저 잡담인듯 농담아닌 농담같은 글들이 일필휘지로 종이 위를 달려나간다. 특히 대책없는 긍정주의자들이 하는 말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야, 웃어서 행복한 거지' 라던가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행복해, 행복해, 행복해를 열번만 외쳐봐' 따위의 리얼 핫 울트라 개수작에 눈 하나 깜짝 않고 똥칠을 하는 저자의 행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긍정적인 경험을 원하는 건 부정적인 것이고, 부정적인 경험을 받아들이는 건 긍정적인 것이다. 철학자 앨런 와츠는 이걸 '역효과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 법칙에 따르면, 기분을 끌어올리려 할수록 더 불행해진다. 뭔가를 바라는 행위는 무엇보다 내가 그걸 갖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p.26)


내 말이!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구렁텅이에 쳐넣어 매주 일요일 밤 우울증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는 애초에 x밥이었고 50년 혹은 그 이상을(염병할 의학의 기적!) 개떡같은 직장 상사와 쥐꼬리만한 월급, 끔찍한 월요병과 함께 보내야한다. 괴로움은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사라진 삶을 살 수 있다는 망상에서 비롯된다. 노우! 우리는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게 아니다. 음낭이라는 따뜻한 천국에서 정자로 살다 음란한 분출로 난자를 만나 세상이라는 지옥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지옥을 멀리서 찾지 말라. 우리가 선 이곳이 바로 지옥이니까.


우리가 이미 지옥에서 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괴로울 게 별로 없다. 우리의 고통은 당연한거다. 그러니 고통받는 건 신경쓰지 말고 그냥 살면된다. 우리가 평소에 감사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들이 당연히 받아 마땅한 것들이라면 우리는 왜 거기에 감사를할까? 우리가 감사해 한다는 건 평범하지 않은 것, 일상적이지 않은 것, 한 마디로 특별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감사할 일은 애초에 많이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하다! 온갖 못과 압정, 가시가 박힌 길 위를 맨발로 걸어가다 가끔 따뜻한 족욕탕을 만나는 게 인생이고, 그건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원래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한 거라면 그 따위걸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감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 꿈은 사실 보도를 덮친 트럭에 치여 즉사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단명회라는 모임도 만들뻔 했다. 그러나 고통없는 급작스런 단명은 로또 당첨 만큼이나 얻어내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빌어먹을 정도로 발전한 의료 기술에 힘입어 벽에 똥칠을 할 때까지 살아야 한다. 그럼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잖아. 무슨 문제?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걸?


고통의 뫼비우스 띠 위에 올라온 걸 환영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동기나 감정이 생겨야만 특정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동해본 사람들은 안다. 


행동은 동기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p. 184)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이유는 놀랍게도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봐라. 그렇게해도 찾지 못했다면? 그러면 어쩔 수 없다. 또 다른 걸 찾으러 갈 수 밖에.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새로운 일을 찾는데 들인 노력, 그리고 거기서 우러나오는 실패의 쓴 맛과 바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당신과 나는 애초에 x밥이었고 무언가로 성공하기엔 극히 어려운 사람이었거늘. 그러니 뭔가를 할때마다 가슴을 찔러들어오는 실패의 비수를 느낀다면 이 말을 기억하라. 실패는 당연한거고 성공은 희박한 일이다. 눈먼 암퇘지도 때때로 도토리를 줍듯, 숲으로 나가라.


노파심에 얘기하는데 이건 더러운 패배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한번 이렇게 살아보라. 그러면 당신은 매일 20명도 채 방문하지 않는 블로그에 8년 넘게 꾸준히 글을 쓰게 된다. 불합격 조차 통보해 주지 않는 회사에 뻔뻔하게 이력서를 들이 밀고 실존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각종 문학 단체에 단편 소설을 보내게 된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충고를 마이클 조던의 입을 빌어 얘기했는데, 나는 문학 청년답게 필립 로스가 쓴 소설 <에브리맨>의 한 구절을 인용하려 한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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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이 2018-01-07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기적인 도서 구매의 꿈을 갖고 있지만 도서 대출이 일상이고, 가끔씩 구매를 할 때면 알라딘보단 예스24를 선호하며, 더더욱이 평생 중 몇 번 보지도 못한 알라딘 블로그를 떠돌다가 님이 쓰신 글에 꽂혀서. 즐겨찾기를 해두고 때때로 생각이 나면 글을 훔쳐보는 저로서는. 마지막에 쓰신 문단을 보고는 왠지 모를 반발감이 살짝 들어, 오늘 날을 잡아 이렇게 댓글 하나를 떨어뜨리고 갈 수밖에 없네요.
저도 읽는 거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흥미 없는 글은 빠르게 스킵하거든요.
님이 꾸준히 쓰신 글들 다 좋습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항상 ‘다음‘이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한깨짱 2018-01-08 13:40   좋아요 0 | URL
몇 명 오지도 않는 서재, 백날 써봐야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관둘까, 관둘까, 진짜 관둘까 싶다가도 가끔 이렇게 피드백 주시는 분들이 있어 결국 또 쓰고 맙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쓸게요. 분량도 좀 줄이는 게 좋을 거 같애요. 내용도 더 쉽게. 맘처럼 잘 되진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