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소설을 찾던 중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농장에서 죽음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닐 터였고, 검정 파리들은 차별하지 않았다. 파리들에게 동물이든 사람이든 시체라면 별 차이가 없다.

(p. 10)


첫 문장을 신경 쓰는 장르 소설 작가라면 믿어봄직하다. 문장에 신경을 쓴다는 건 구성의 단단함에도 민감할 확률이 높으니까.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에서 배운 걸 떠올려보자. 미스테리 스릴러의 첫 번째 규칙. '명백한 사건이 등장해야 한다.' 이번에도 자살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자살한 남자는 죽기 전 자기 집에 들러 아내와 아이를 샷건으로 날렸다. 그리고는 트럭을 타고 숲 속으로 들어가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끔찍한 친족 살해. 조그만 시골 마을이 통째로 들썩인다.


지문은 확실하고 동선은 명백하다. 살인이 벌어지기 전 남자의 트럭이 마당에 들어서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여기서 잠깐. 두 번째 규칙을 떠올려 보자. '실체가 아닌 속성을 기술하라.' CCTV에 찍힌 건 남자의 트럭이지 남자가 아니다. 트럭은 남자에게 속한 구성물이기는 하지만 그 연결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트럭은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 평균 정도의 지성만 갖춘 작가여도 당연히 CCTV에 운전자의 얼굴이 찍히지 않았다고 쓸 것이다. 이로써 작은 의혹이 성립된다(물론 진짜 뛰어난 작가는 CCTV에 찍힌 이 명확성 마저도 배반할 뭔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 이 사건에 의혹을 품는 사람, 주인공이 등장해야 한다. 당신이라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범인의 아버지 혹은 동생? 범인의 관계자라는 점은 이 사건을 파고들어야 하는 동기를 명확히 해준다. 또 그 관계성 때문에 범죄를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을 게 확실하다.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 매우 좋은 구성이다. 만약 주인공을 범인의 어머니로 정한다면 이야기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아들의 결백을 입증하려는 엄마의 눈물어린 분투. 하지만 그 진실이 엄마 조차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을 때 그녀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 모성애는 그 어떤 추악한 범죄도 초월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하다면 봉준호의 <마더>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다.


결론만 얘기하면 <드라이>의 주인공은 범인의 옛 친구다. 그는 범인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죽마고우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마을에 타살로 의심되는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이 용의자로 의심되면서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경찰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한때 살인 용의자로 의심됐던 남자가 죽마고우의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복잡한 진실의 실타래를 하나 더 엮어 넣는다. 과거에 벌어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바로 이번에 자살한 친구라는 의혹을 풍기는 것이다.


수십년 전 벌어진 살인의 흔적이 끈질기게 달라 붙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엉킨다. 이제 이야기는 두 개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과거 사건의 진범은 누구였을까? 자살한 그 친구일까?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남자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의 살인은 친구를 과거 사건의 진범으로 오해한 누군가의 복수극일까? 이로써 이야기는 천개의 고원을 향해 달려간다. 의혹은 폭발하고 진실은 오색 꼬리를 살랑거리며 숲 속으로 사라진다.


작가의 영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완벽한 배경. 무대는 끔찍한 가뭄으로 고통 받는 호주의 깡촌이다. 시골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은 흰 벽에 칠해진 붉은 페인트처럼 끝까지 남아 사람을 괴롭힌다. 이 기억은 흔히 텃새라는 힘으로 변해 공권력도 무용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그들은 오랜 가뭄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다. 박해자의 조건이 모두 갖춰진 셈. 또 가뭄이라는 설정이 가진 중의성에도 눈여겨 볼만하다. 가뭄은 진실을 드러내는 열쇠다. 왜? 모든 사물들은 극한에 다다랐을 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깡마른 강은 물로 가려 보이지 않던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고 바짝 마른 나뭇가지는 숨겨왔던 선명한 주름을 보여준다. 진실을 벗기는 폭력적 빛의 강림.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건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가 아니라 눈을 가린 손틈을 비집고 파고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이게 데뷔작이라 믿을 수 없다는 평가들은 이렇듯 첩첩이 쌓인 노련한 구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개의 긴박함이 떨어지는 건 아쉬움을 넘어 지루함이 되곤 한다. 하나씩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뇌의 주름이 쫄깃해지는 느낌이 없다. 그 느낌이 바로 미친듯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데, 그냥 맨 뒷페이지를 열어 누가 범인인지 확인만하고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확실히 문제다. 게다가 줄줄이 늘어선 단서가 가리키는 방향과 실제 범인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차는 클라이막스의 해방감을 방해하는데 완벽한 역할을 수행한다.


<드라이>를 영화로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나다를까 소설은 이미 리즈 위더스푼의 퍼시픽 스탠다드에 판권이 팔려 영화화가 확정됐다고 한다. 누가 감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디악>의 데이비드 핀처라면 소설의 빈 곳을 완벽하게 채워줄 것 같다. 가뭄에 찌든 누런색 들판이 이미 *핀처의 시그니쳐 라이팅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는 하나같이 색이 바랜듯 누리끼리한 색조를 유지한다. <조디악>, <하우스 오브 카드>,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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