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학 성찬
황선도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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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물고기를 좋아했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그건 내 DNA에 각인된 거라 내 의지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오해는 말아야 하는게, 결코 비린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 비린내를 좋아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비린내가 아니라 물고기를 좋아한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잡는 것도 좋아하고 먹는 건 더 좋아한다. 찜, 탕, 구이 다 훌륭하지만 역시 최고는 날것이다. 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지 않는다는 건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날것. 탱탱한 식감에 입안 가득 스며드는 촉촉한 기름의 감칠맛. 많은 사람들이 날것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육고기가 부위별로 다양한 맛을 내듯 물고기들도 서로 다른 맛을 지녔다. 도미는 달고 농어는 원시적 생명력을 지녔고 광어는 기름지고 전어는 고소하며 우럭은 쫄깃하다. 날것이 싱겁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활어를 즐기기 때문이다. 활어는 고기의 맛이 우러나지 않기 때문에 맛이 싱겁고 주로 탱탱한 식감을 즐기기 위해 먹는다. 초장을 찍어먹는 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선어의(숙성육) 경우 고기가 가진 고유의 풍미가 잘 우러난다. 광어 양식 세계 1위인 대한민국에선 이제 싸구려 횟감으로 통하는 광어지만 이것도 잘 숙성시켜 먹으면 "이게 진짜 광어의 맛이구나!" 할 정도로 눈이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광어는 백김치에 싸먹어도 참 맛있다.


사실 바다에서 나는 건 당연하게도 물고기 뿐이 아니다. 각종 해조류, 멍게, 해삼, 개불, 소라, 고둥,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조개들. 아마 조개는 날것보다 구이가 맛있는 거의 유일한 바다 생물일 것이다. 석쇠에 올려 놓고 굽다보면 뚜껑이 열리며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조개들.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멍게와 해삼 개불은 생긴게 끔찍해 안 먹는 사람들도 참 많은데 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선회보다 더 즐기는 경우도 많다. 개불은 신기할 정도로 단 맛이 나는데 잘못하면 비릴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멍게하면 씁쓸한 맛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단맛이 강하고 향이 기가막힌 해산물이다. 해삼은 뭐, 그냥 맛있다. 식탁 위에 올라왔으면 이유를 막론하고 일단 씹어 삼켜야 한다.


이렇듯 나는 물에서 나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물과 물고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회식에선 늘 육고기파와 싸움을 벌이지만 소수인탓에 억울한 패배를 씹어삼켜야 한다. 아무튼 물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탓에 평소에 잘 보지 않는 TV도 물고기가 나왔다 하면 무조건 본다. 각종 다큐에서 생생정보통, VJ특공대, 내고향6시, 남도지오그래피, 한국기행, 한국인의 밥상, 극한직업까지, 물고기를 다루는 순간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물고기에 대한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비린내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됐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수산 자원을 관리하는 공무원, 물고기 박사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연구하고 보존, 재생, 육성하는 일을 해왔다. 그탓에 책은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들 즉 어떤 물고기는 무슨 맛을 내고 언제나 제철이며 어떻게 먹어야 좋은가에 대한 내용보다는 물고기 놈들의 생태, 산란, 크기, 특징을 다루면서 자신이 경험한 업무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는다. 물고기들의 역사적 유례나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고. 뭐 그래서 딱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물고기를 식재료가 아닌 자원으로 다루는 사람이니까 이런 접근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쉬운 대중서를 표방했는지 우리가 익히 아는 녀석들이 등장한다. 좀더 다양한 물고기, 다양한 조개, 다양한 바다 생물을 다뤄줬다면 더 좋을 뻔 했다. 크기나 산란, 생태에 대한 얘기도 몇몇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해양 생물 중에는 상황에 따라 암, 수를 자유로이 바꾸는 녀석들이 있다는 건 신기했지만.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물에서 나는 놈들을 먹어왔다. 야생의 육고기 보다는 수렵과 채취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를 먹는다는 건 사실 우리 DNA에 새겨진 태초의 흔적을 되짚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언제나 황홀하고, 흥분되고, 침이 고일정도로 행복한 맛의 경험을 동반한다. 나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물고기도 마찬가지.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 아마 여러분도 이해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가벼운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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