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청춘의 독서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2009년 처음 읽었던 <청춘의 독서>는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읽지도 않은 책들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하는 이런 류의 책은 확실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유시민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이란 확실히 보수적인 매체다. 종이 위에 잉크가 한 번 찍히고 나면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 2017년 5월에 63쇄를 찍은 이 책도 개정판이 아니라 초판을 되풀이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새로 주문한 책이 오기까지 잠깐 여유를 부려 손에 들었는데, 그대로 달려버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번쯤 느껴본 경험이리라. 작가는 이런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소설은 32년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그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죄와 벌>은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했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서는 책과 대화하는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의 소망과 수준에 맞게 말을 걸어주고 그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P. 313).


<청춘의 독서>는 책에 대한 이야기와 책 이야기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면 읽는 이가 그 책이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고, 책 이야기가 지나치면 사람들은 쉽게 지루해 한다. 무의미한 동어 반복.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을 짓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조금만 삐끗해도 강신주의 <감정수업> 같은 희대의 망작이 만들어 질 수 있다. 물론 책이란 걸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겐 이 쪽이 더 유리할 수도 있지만.


민주화 운동가, 칼럼니스트, 방송인, 정당인, 국회의원, 장관 이라는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시민 작가는 작가이면서 동시에 행동가다. 이제는 후자에서 은퇴하여 그 경험을 팔아 밥을 버는 지식 소매상이 됐지만 소매상은 무슨, 공장을 차려도 될만큼 지식과 경험이 차고 넘친다. 이 지식과 경험의 훌륭한 조화가 이 책을 아름답게 만든다.


책은 엄연히 현실이 아니다. 책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해석 또는 현실이 되고픈 작가의 바람이다. 그래서 책만 읽는 사람을 샌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하늘 위의 지식을 끌어다 삶과 엮어본 경험이 있다. 그것이 비록 실패했든 그렇지 않든(그건 역사가 평가할 일이기도 하고), 시도 자체가 만든 경륜의 깊이는 쏟아지는 시대의 폭우를 담기에 충분하다. 이런 사람들이 해주는 책 얘기는 범상치가 않다. <청춘의 독서>는 작가의 삶과 지식과 경험과 경력이 압축되어 숙성된 맥주 같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목넘김이 일품이다.


이 책엔 모두 14권이 실렸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고전들이다. 작가는 아주 대중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이것이 바로 유명 고전의 아이러니다) 책들을 내키는대로 선택한 것 같다. 작가는 아마 교양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야 할 고전 명작 이라는 말에 "웃기시네"라고 대꾸하는 독자를 더 좋아할 것이다(나는 확신한다). 이런 교조적 태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도 <청춘의 독서>는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여기엔 고압적 태도와 우쭐함이 전혀 없다. 정말로 순수하게,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은 진짜 좋아하는 책들을 고백하는 진솔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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