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Normal - 평범함 속에 숨격진 감동 슈퍼노멀
재스퍼 모리슨. 후카사와 나오토 지음, 박영춘 옮김 / 안그라픽스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슈퍼 노멀은 궁극의 본질을 의미한다. 최상의 디자인은 더 이상 더할 게 없을 때가 아니라 뺄 게 없을 때 완성된다. 불필요한 부분을 깍고 깍고 깍아내 사물의 핵심만을 온전히 담아낸 상태. 그것이 바로 슈퍼 노멀이다.


슈퍼 노멀의 시각적 단순함은 곧 사용 경험의 안락함으로도 이어진다. 군더더기 없는 외관은 물건의 사용 방법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해준다. 슈퍼 노멀에는 고민의 여지가 없다.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용이 가능하며 심지어 자신이 어떻게 그 사용법을 알게 됐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우린 슈퍼 노멀의 위대함을 매일 접하고 살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차이 속에서 홀연히 빛을 발하는 평범함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유치하고 조잡해서 거들떠 보기도 싫어질 것이다. 슈퍼 노멀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자극을 제거한 순수한 형태는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세계를 보장한다.


MUJI의 환풍기처럼 생긴 CD Player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걸 디자인한 게 바로 이 책의 저자 중 하나 후가사와 나오토다. 후가사와 나오토는 미니멀리즘의 대가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자신들이 생각하는 슈퍼 노멀 제품을 골라 전시회를 열었다. 재떨이에서 잉크병, 스패너에서 펠트 속버선 까지 용도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엄선된 210점의 물건들. 이 책에는 그 중 52개의 제품이 풀컬러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제품들은 쭉 훑어보면 슈퍼 노멀이 그럴듯해 보이는 말장난, 혹은 예민 예민한 디자이너들 특유의 호들갑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건 그냥 의잔데? 이건 그냥 바구니잖아! 하지만 바로 그런 실망감이 여기 소개된 물건들이 슈퍼 노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슈퍼 노멀의 아름다움은(사용성과는 달리) 보는 순간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흔적을 묵묵히 새겨나가는 과정에서 어느날 불현듯, 예기치 않게 발견된다.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히 차이를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상품 사회는 끊임없이 다른 자극을 원하고 디자인은 불필요한 장식과 알맹이 없는 화려함으로 그 욕망을 충족시킨다. 범람하는 차이는 오히려 유의미한 차이를 지워 혼돈만을 낳는다. 없어져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져서 사라지는 예술처럼 말이다.


더 이상 차이에 현혹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를 둘러싼 물건의 세계를 유심히 바라보자. 거기엔 분명 당신이 못 보고 지나친 순수한 형태가 존재할 것이다. 그 형태를 기준으로 주위를 채워나가면 당신의 눈도 마음도, 평화의 세계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