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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평점 :
아서 C. 클라크의 고전 SF 소설 <라마와의 랑데뷰>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매우 묘한 책이다. 첫번째 속성은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 어느날 태양계에 소행성 하나가 접근한다. <아마게돈>이나 <딥 임팩트>를 연상케 하지만 그렇게 흔한 얘기가 아니다. 소행성은 지름이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매끈한 원통. 어느모로 보나 인공물로 여겨지는 이 우주선에 인간은 라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라마의 등장은 인간에게 일련의 호기심과 다수의 걱정을 안겨준다. 라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태양계로 왔을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당연하다. 오랜 우주 개발 끝에 인간의 기술도 지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수성에까지 정착지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지만 라마는 그 모든 기술을 간단히 비웃을 만큼 대단한 문명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추진 장치도 없이 빙글빙글 자전을 하며 태양계를 향해 날아오는 초거대 원통. 그 정도 기술을 가진 존재라면 수천년 동안 쌓아온 인간의 문명을 미개하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인간이 개미를 밟은 걸 일일이 신경쓰지 않듯 그들도 태양계를 사뿐히 즈려 밟은 뒤 여행을 계속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불안을 극복하는 법은 두 가지다.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오히려 정면으로 응시해 그 정체를 밝혀내는 것. 전자는 잠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낳는다. 작은 포유류에 불과하지만 끊임없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으로 태양계를 지배한 인간은 라마와의 랑데뷰를 선택한다. 매끈한 원통인줄만 알았던 라마의 표면엔 우주선의 출입구처럼 보이는 에어락이 있었고, 탐사대는 주저않고 그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바로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라마가 눈을 뜬다.
이제 당신의 머리 속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라마는 우주선이었지만 그 크기는 소행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고 하나의 세계엔 온갖 것들이 존재하는 법. 생각해보면 지구도 일종의 우주선에 다름아니다. 느끼진 못하겠지만 무려 시속 1300km가 넘는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 라마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쉽게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구는 지표 위에 라마는 지표 아래에 문명을 세웠다는 것 뿐이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이제 이 소설을 묘하게 만드는 두번째 속성에 대해 얘기하겠다. 들으면 거의 백퍼센트 당신의 기대를 꺽게되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흥미진진함에도 불구하고 <라마와의 랑데뷰>는 좀처럼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미지의 존재와의 조우라면 으레 <프로메테우스>나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라마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데서 오는 스릴러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흥미로운 도감으로 가득한 백과사전 같다. 정부에 제출하는 라마 탐사 보고서. 캐릭터들은 투명할 정도로 평면적이다. 큰 고뇌도 갈등도 없이 주어진 임무를 기계처럼 완벽히 소화해낸다. 아서 C. 클라크가 소설가이기 앞서 뼈속까지 과학자였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이 없다고 재미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솔직히 나는 백과사전을 좋아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라마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상상력이 폭발한다. 사건 사고도 없고, 끝내 그들이 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주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은 더 자극을 받는다. <라마와의 랑데뷰>는 침묵을 통해 더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라마는 원통을 둘러싼 거대한 유기물의 바다에서 원자재를 취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태어난 다양한 바이옷(생체 로봇)들은 라마를 쓸고 닦고, 쓸모가 다한 물건들을 분해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라마 탐사선 엔데버 호의 선장은 조사의 막자비에 이르러 처음에 가졌던 본인의 신념을 깨고 라마의 껍질을 뜯어내 그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라마는 바닥에서부터 그대로 솟아 올라온 듯한 매끈한 직육면체 구조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거대한 유리 신전을, 그 유리 속에 든 라마인의 물건들을 발견한다. 물건들은 접히지도, 축소되지도 않은 채 자기 모습 그대로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라마는 필요할 때마다 그 원형을 참고로 바다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나는 이 유리 신전을 보는 순간 이데아가 떠올랐다. 사물의 본질, 혹은 원형을 간직한 이데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라마인들은 그 이데아를 먼 우주로 쏘아 보냈다. 그것은 일종의 탈출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자기들의 모성이 수명을 다해 붕괴되는 순간 선택한 궁여지책. 모든 개체를 살릴 수는 없으니 원형들만 담아 우주로 보내면 적당한 장소 적당한 시간을 만나 문명을 복제하겠다는 꿈을 담은 것이다. 물론 라마를 일종의 선교사로 볼 수도 있다.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외계의 존재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보낸다.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가 우주적 관점에서 이뤄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역시 라마가 일종의 씨앗이 아니었나 싶다. 나아가 우리 지구도 어떤 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지구인들은 이데아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허접한 존재니까 프로토타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지구도 인간도 결국은 생체 정보를 저장해 놓은 살아있는 USB에 불과할 것이다.
SF를 읽는다는 건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파워 핸들을 얻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