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키 펭귄클래식 60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올리버 해리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때때로 마약이 영감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좋은 밴드가 외국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는 대마초나 코카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광하는 영화의 일부는 분명 약쟁이들에 의해 탄생할 것이다. 반면 술은?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한 뒤 알콜중독자가 되어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박살냈다. 커크 해밋은 한동안 술에 빠져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장이나 앨범을 팔아치운 전설의 밴드 메탈리카를 해체시킬뻔 했다. 나는 술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가끔 본 적 있다. 그들이 마약을 했다면 아마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술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마약은 아닐지도 모른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마약은 인간을 신의 영역에 데리고 갔다 지옥으로 추락시킨다. 입에 대는 순간부터 시종일관 지옥으로 잡아당기는 술과는 달리.


나는 마약 옹호자가 아니다. 단지 마약이든 술이든 그 끝은 동일한데도 약쟁이을 알콜중독자보다 밑에 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약에 취한 사람은 침대에 축 늘어져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은 아내와 아이를 때린 뒤 집안을 엉망으로 망쳐 놓고 거리로 뛰쳐나가 행인들과 싸움을 벌인다. 약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 중범죄에 중범죄를 가중한 것 같은 호들갑을 떨면서도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건 그 죄의 원인을 술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술은 누구나 하지만 마약은 그렇지 않은 게 이유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


한 가지 나은 점은 마약 중독자의 소설이 알콜중독자의 소설보다 더 주목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에게 마약 중독 경력은 유용한 포트폴리오가 된다. 마약 때문에 불운한 인생을 살았다면 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가 소설을 써냈다는 건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했다는 의미니까. 내용은 추잡할 수록 더 좋다. 성공한 사람에게 불운한 과거는 훌륭한 커리어가 된다.


<정키>. 이 소설은 아무 것도 읽을 게 없다. 윌리엄 버로스는 자신이 마약에 빠져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이 소설에 묘사해 넣었다. 약쟁이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면 다른 취재는 필요 없다. 소설은 약을 밀매하고 경찰에 쫓기고 감옥에 가고 소매치기를 하는 밑바닥 이야기로 가득하다. 술의 문제는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지만 마약의 문제는 약에 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그는 늘 약에 취해 있다. 종류는 다양하다. 몰핀에서 코카인, 헤로인, 대마초에서 멕시코산 환각 선인장까지.


내용을 더 얘기해 주고 싶어도 할 말이 없다. 무엇을 느꼈는가 물어도 침묵으로 대답할 밖에. 나는 주인공이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을 때 마다 내 몸에도 그 날카로운 바늘이 꽂히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피부가 따끔했다. 그러나 그 따끔한 뒤에 환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작가가 느꼈을 그 황홀한 환각의 세계말이다. 나는 그게 증오스러웠다. 나에겐 고통만이 있을 뿐 환희는 없었다.


윌리엄 버로스는 비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타이틀로 짭짤한 벌이를 했다. 비트 제너레이션에 속하는 작가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반항적인 배우를 숭배했다. 그들은 이후 탄생할 히피 문화의 롤모델이었으며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런 태도로 인해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열심히 시스템에 저항하면 언젠가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생각이다. 시스템이 자신의 적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섬뜩하다. 자기를 떠나 광야로 나간 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해(비트 제너레이션!)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세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관대하고, 


당신이 아는 것보다 교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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