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9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파시즘>이란 책을 읽고 있으니 사람들이 물어온다. 파시즘이 뭐냐고. 나는 두 번 놀랐다. 사람들이 파시즘이 뭔지를 모른다는 것에. 내가 파시즘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것에. 당황한 나는 대답했다. "나쁜 정치를 파시즘이라고 합니다."


변명을하는 건 아니지만 파시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건 유용하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예컨대 파시스트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해보자.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도 파시스트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력한데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파시스트로 모는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말은 여러 정당이 서로 자신의 정의로움을 과장하고 상대편을 공격하기 위해 손쉽게 꺼내는 말이니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럼 독재자를 파시스트라 불러야 할까? 사실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이나 일당 독재의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현대판 파시스트에 가장 근접하긴 하다(공산주의자들이 파시스트와 벌였던 과거의 전쟁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히틀러처럼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대놓고 파시즘을 지지하는 정당은 없다. 유태인 학살이나 독재를 공약으로 거는 정당도 없다. 오늘날 파시즘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변해왔으며 보수에, 극우에, 심지어 좌파 정당들에도 유산을 물려줬다. 이런 상황에서 유용한 것은 추상적 정의가 아니라 파시즘의 구체성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파시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극단적 민족주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독재

인종 차별(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혐오)

유일 정당

전체주의

반공

폭넓은 대중적 지지


이 중에 눈에 띄는 특징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폭넓은 대중적 지지. 놀랍지 않은가? 이미 파시즘이란 말에서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뭔가 정의롭지는 않을 거라는 뉘앙스가 풍기는데도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니. 2016년 미대선 결과를 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히틀러의 환생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미치광이였다. 그러나 그는 당당히 대통령이 됐다. 누가 그를 뽑았을까? 트럼프는 엄청난 부자에 보수 정당의 대표였음에도 몰락한 산업지역, 이른바 러스티 벨트의 지지를 받았다. 완벽한 노동자의 적이 몰락한 노동자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원인 중 하나로 탈산업화로 인한 남성 노동자의 실직율 증가를 꼽을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문화적 박탈감으로, 과시적 소비 행태가 성적 매력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사회 구조상 직장을 갖지 못한 남성의 소외감은 극대화 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민자들과(내 나라에와서 돈을 훔쳐가는) 전문직 여성에(여자 주제에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 이들의 분노에 부채질을 하는 건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우리가 누구인가. 대미국의 전성기를 이끈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직장도 없이 천덕꾸러기 취급이다. 이런 우리를 돌봐줘도 시원찮을 판에 사회적 약자 운운하며 이민자에, 미혼모에, 워킹맘, 동성애자 따위를 돌보려 하다니!


이들의 눈에 정부는 지독한 샤이 가이다. 외국인들의 범죄를 막는 방법이 뭘까? 그들을 모두 추방시키거나 죽이는 것이다. 고용율을 높이는 법은? 외국에 공장에 세운 기업들에 강도 높은 세무 조사를 실시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여하는 것이다. 인권이니 법이니 그런 건 다 지긋지긋하다. 나쁜 외국인, 나쁜 기업인 하나 때려잡는 데 뭐 그리 많은 절차가 필요한가?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오산이다. 한국처럼 강인한 지도자에 대한 향수가 강한 나라에서는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괴물은 좌우 어느 쪽에서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친일파를 모조리 찾아내 재산을 몰수하고 강제 부역을 시키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니, 현대사의 비극을 만들어낸 사람들, 전두환이나 김기춘을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마 그의 발언이 초법적이고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반론을 전혀 용납치 않을 수록(전체주의) 우리의 마음은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이다.


오늘날 파시스트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겠다고 공언한다. 그중에 누가 파시스트고 누가 아니냐를 가리는 건 매우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나에겐 한가지 기준이 있다. 나는 모든 걸 한방에, 단숨에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혹은 그런 기대를 받는 사람을 파시스트로 규정한다. 멕시코 이민자들이 문제라고? 그럼 내가 장벽을 세워줄게. 부패한 정치가 문제야? 모조리 없애줄게. 제가 칼춤 한 번 제대로 춰보겠습니다!


진정한 민주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불가능 할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폭력적 독재 국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대한민국 같은 나라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뒤 세상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은 멸종할 거라 예상됐다. 놀랍게도 그 둘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일부가 그것을 악용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파시즘이 대중의 본질적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파시스트를 원한다. 그저 그들이 내 친구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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