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전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라
이기동 지음, 이원진 엮음 / 걷는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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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교육은 정말 어렵다. 인생에서 아이인 시절은 딱 한 번 밖에 없는데 커서의 모든 자질이 아이일 때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아기의 잘못된 교육은 100년을 지고 갈 낙인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데도 유아 교육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교육은 곧 성적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 그 무지로 인한 폐해가 더더욱 심하다. 아이 교육 어떻게 시켜야 할까요? 라는 질문엔 한글은 몇 살, 영어는 몇 살, 수학은 어디에서, 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


왜곡된 교육관이 사회에 팽배한 경우 우리는 두 가지 해악을 덤으로 받게 된다.


첫째, 대안 찾기의 어려움이다. 일부 부모가 성적보다 인성을 중시하고 교과 과정보다 체험, 독서, 글짓기, 토론 등을 이용한 소양 교육을 실천한다 하더라도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아선 지속하기가 어렵다. 줄 세우기와 타이틀 만들기에 능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소양을 알아보고 깊이를 탐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 사회의 엘리트들은 아인슈타인 조차 수학 능력이 떨어지는 지진아로 구분할 것이다. 외눈박이 마을에선 두 눈을 뜬 자가 오히려 병신이니까.


둘째, 유전 현상이다. 전 세대 부모의 교육 방식은 다음 세대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어렸을 땐 분명 부모의 극성과 잔소리를 끔찍하게 여겼을 사람들이 커서는 자기 자식에게 똑같은 교육 방식을 강요한다는 것이 이 비극의 아이러니다. 주산을 강요당했던 아이가 신개념 수학 풀이법을 받고 빽빽이를 했던 아이가 뇌새김으로 강제될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수 세대를 이어간다. 대안의 부재와 유전은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이런 문제들을 모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 아는 얘기. 뻔한 얘기. 그래서 참교육을 전하는 말들은 대체로 공허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좋은 말은 좋은 말일 뿐 현실에선 뿌리를 내리기 힘들다. 설령 참교육을 실천하리라 굳게 다짐한 경우라도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자식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자식의 자질보다는 부모의 자질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부모는 이미 잘못된 교육 환경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 다 자란 어른이 몸에 박힌 말과 행동, 태도, 사고 방식을 교정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예컨대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가르친다고 해보자. 가장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과 TV를 끄고 부모가 직접 책을 읽는 것이다. 아이보다는 부모의 인내심이 먼저 바닥나지 않을까?


교육에 관한 책이 호응을 얻기 위해선 선언보다는 구체적 행동지침이 많아야 한다. 더불어 사는 아이를 기르세요, 더불어 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부모의 어떤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을 새길 수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지침들은, 결코 풍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구색은 갖추고 있다. 보나마나 뻔한 얘기지, 라고 치부하기엔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들이 종종 나온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사소한 말 한마디, 나도 모르게 지은 무심한 표정 하나가 아이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아이를 기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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