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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정신나간 싸이코패스가 무자비한 학살을 벌이는 소설을 기대했는데 그런 책은 아니었다. 80년대 스타일의 슬래셔 무비처럼. 불도저로 건물을 밀어버리는 기분으로.
현대 미국 스릴러는 불륜 없이는 불가능한가보다. 클리셰를 겹겹이 쌓아놓은 밀푀유의 느낌으로 소설은 지루한 행진을 계속한다. 문제를 직시하고 여러 번 반전을 꾀하지만 그마저도 밋밋하고 억지스러워 '스릴'은 생기지 않는다.
주인공 릴리는, 1876년에 태어났다면 대단히 참신한 악녀였겠지만 싸이코패스가 넘치다 못해 흘러 홍수를 이루는 2016년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대개 이런 캐릭터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람 죽이기를 좋아했고 소설은 꼭 항상 그 유년기를 조명하는데... 이처럼 뻔한 스토리에 매력을 느끼기란 북어를 뺀 북어국에서 시원함을 느끼기보다 어려운 법이다.
유의미한 설정은 또 다른 악녀 미란다의 등장이다. 미란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인들을 희생시키는 소시오패스급의 극한 이기주의자다. 릴리와의 차이라면 살인을 직접하지 않는다는 것. 뛰어난 미모를 이용해 주변의 남자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선 고전적 악녀에 가깝지만 전술했듯 릴리같은 싸이코패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그 고전적 방식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반사 효과가 있다.
이 책은 릴리와 미란다의 대결이 핵심이다. 두 '여성'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매우 반가워할 만한 여지가 있지만 이 대결이 타이트하게 조여진 긴장감을 전달하느냐에 대해선 의심이 간다. 이를 타개해보고자 엎치락 뒤치락 여러 번의 반전을 끼워넣지만 결과는 무리수. 반전은 사용할 수록 그 효과가 반감되는 마약같은 존재다. 쓰면 쓸 수록 지저분해질 따름이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펴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력적 제목을 가지고 이렇게 밖에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제목이 생각 났을 땐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 제목을 따르지 않는다. 너무 좋은 제목이 생각나버린 나머지 억지로 붙인 것 같다. 우선 누가 정말 죽여 마땅한 사람인지 아무리 읽어봐도 모르겠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등장 인물들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일까? 아니면 죽여야 했으나 끝까지 살아남아 이 제목을 역설적으로 보이게 만든 그녀였을까?
최근에 읽은 소설들이 하나같이 재미가 없었던 탓에 우울지수가 50은 증가한 것 같다. 이런 류의 책들을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그런 면에서 미국은 참 대단한 나라다. 산업의 힘을 믿고 그 힘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그들은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지만 그 피해를 두 번 세 번 연거푸 받는다면 잘못은 더 이상 산업에 있는 게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