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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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루키 에세이의 가벼움은 그것이 수필이라는 장르의 본래적 특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다. 이건 하루키가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다. 본인도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도 인정하는 얘기란 말씀.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하는 거 보면 당연히 고의적이라고 봐야 하고 그 뻔뻔한 행동을 수 십 권에 걸쳐(어디 한 두 권으로 끝내야 말이지) 하니 이는 작가 특유의 곤조랄까, 아무튼 나의 에세이는 이런 거고 이렇게 밖에는 쓸 수 없으니 사고 안 사고, 읽고 안 읽고는 순전히 독자 여러분에게 달린 일이다 고 말하는 것 같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무언가 다르다. 기존의 것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더 밀도 있게 드러내 보인다. 그것도 신변잡기 식의, 무슨 위스키를 좋아하고 무슨 브랜드의 차를 타며 누구누구와 친하고 누구누구와 이런 일을 겪은 적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루키 아이덴티티의 핵심을 이루는 찐득하고 리얼한 얘기가 담겨있다. 감상을 말하자면 음, 역시, 그래, 이 정도인가? 하루키잖아. 결국, 아, 이게 다? 설마 진짜? 라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역대 최강. 농담 하나 보태지 않고.


우선 어떻게 해서 소설가가 됐는지가 나온다. 사실 이 얘기는 워낙 많은 지면에서 소개된 바 있어 새로울 건 없다. 세계 전복을 목표로 전공투가 열도를 지배하던 시절에 대학을 나와 공부는 뒷전, 한량처럼 책만 읽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대담하게 재즈바를 차린다. 바를 운영하며 가까스로 졸업도 오케이. 그러던 어느날(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 구장의 잔디가 깔린 야외석에 누워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다 자신이 응원하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1번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날린 순간 불현듯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에피파니'의 전형. 하루키는 자신의 눈 앞에 현시한 이 말씀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고 이후 영업을 마친 바에 앉아 수 개월간 소설을 집필, 신인문학상을 받게 된다. 하루키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불현듯한 마술 세계로의 진입이 어쩌면 이 에피파니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눈을 씻고 쳐다봐도 흙 알갱이 하나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굳건한 현실세계에서 그 같은 기적을 경험했으니 소설에서야 뭐 마음껏 스르륵 빠져가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볼 게 참 많은 수필이지만 특히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진저리를 쳤던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사실 몇몇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 또한 눈을 흘겨 뜬 채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거 사기꾼 아냐? 확실히 하루키 월드는 이런 색채를 짙게 내뿜는다. 두 개의 달이라든지 샌더스 대령, 어둠 속의 야미쿠로, 느닷 없는 섹스씬. 시간이 흘러 내가 이 남자를 인정하게 된 건 어찌됐든 저찌됐든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하루키 말에 따르면 그것이 바로 '매직'이다. 이야기는 결국 매직의 힘으로 흘러가고 매직의 힘으로 읽힌다. 문장을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 매직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면에서 하루키는 뛰어난 마술사고 자신의 믿음을 정확히 반영하는 작품을 쓴다. 그 확고한 믿음. 그 소박한 철학이 30세에 등단한 이 젊은 작가를 68세가 되기까지 작가로서 존재하게 만든 힘이다.


이 에세이를 덮고 나면 하루키의 소설이 무척이나 읽고 싶어진다. 퇴근길 서점으로 돌진해 몇 권을 들춰봤지만 끝내 빈 손으로 돌아왔다. 뭐랄까, 조금 더 이 에세이의 감동을 간직하고 싶었달까. 농밀한 소설의 언어로 덮어버리기엔 머리 속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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