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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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야 왜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인지 알 수 있었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소설이다. 하지만 방금 갓 지은 소설처럼 따뜻하고 싱싱하다. 고전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상투적 표현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근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약한 면이 있다. 왜냐면 이 자가 일본의 천 엔 짜리 지폐에 당당히 등장하는 남자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이만한 영광을 누린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있을지 생각해 보라.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으로 이 남자를 만났다. 돌이켜 보면 그 작품도 상당히 세련됐다. 심지어 <마음>보다 10년 전에 발표된, 그러니까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딱 한 해 전인 1904년에 출간된 작품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이것이 그의 데뷔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도 언뜻 알 수 있지만 소세키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숨은 허영, 고독, 불안, 죄의식 등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느끼는 작가 같다. 그런 능력이 작품에 고스란히 발휘되어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그 어두운 덩어리들을 두 손으로 퍼올려 문장 하나 하나를 빚어낸다. <마음>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마음>에서 가장 감동한 부분은 조곤조곤 쉽게 말하면서도 가슴 깊숙이 훅 찔러들어오는 고독의 날카로움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뭔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어쩌고를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유는 우리가~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읽는 이는 그것을 알지 못할 수 있지만 느낄 수는 있다. 제목 그대로 '마음'에 부딪는 소설인 것이다.


에메랄드 파스텔 톤으로 책표지를 꾸몄지만 이렇게 밝은 소설이 아니다. 마음하면 느껴지는 따뜻함과 포근함은 없다. 오히려 축축하고 차가운 감정이 느껴진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무의식(이 소설은 그의 연구가 소개되기도 전에 나온 것이라 한다), 마음 속 깊은 바닥에 고인 검은 물을 그린 소설이다. 읽고 있으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 밖에 없으며 고독은 숙명이라는 생각에 쓸쓸해진다.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가려는 사람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불신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타인을 믿어라. 이 멍청이들이 이토록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둔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대해서. 특히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에고이스트들은 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축축하고 어두운 죄의 근원들이 고여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은 매일 밤 그 속을 들여다 본다. 자기의 마음 속에 그토록 끔찍한 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런 죄의식이 마음 위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낸다. 행여나 그것이 빠져나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칠까봐, 행여나 그것이 삐져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질까봐. 둔해서 행복한 사람은, 그래서 긍정적일 수 있는 사람은 그 더러운 죄들이 마음을 벗어나 주렁 주렁 살갗 밖에 달렸는데도 악수를 청하며 미소를 짓는다.


<마음>은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과 내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나'는 아직 어리기에 선생님이 감각하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만 선생님께 다가가려 한다. 선생님은 어째서 오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걸까? 나는 궁금하지만 선뜻 그 핵심에 다가갈 용기는 없다. 내가 그 핵심을 열어 젖혔을 때 선생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나아가 선생님의 마음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두고 선생님을 지켜보려 한다. 언젠가는 선생님이 직접 말해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던 나에게 어느날 선생님이 보낸 장문의 편지가 도착한다.


<마음>의 뒤에는 <꿈 열흘 밤>이라는 단편 소설이 붙어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회한, 욕망, 절망, 가책 등의 감정을 열 개의 꿈 속에 풀어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스타일리쉬하고 몽환적이다. 굳이 우열을 꼽자면, 나는 오히려 이 단편을 손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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