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반양장) -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그대로다. 넓고 얕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으로 나눠 빠르게 겉핥기를 한다. 시험 전 가까스로 복사에 성공한 모범생의 요점 정리 같기도 하고 논술 대비 쪽집게 주제 뽑기 같기도 하다. 짧은 분량에 워낙 방대한 양을 담으려다 보니 차 떼고 포 까지 뗀 장기판을 연상케 한다. 프로크루스테스 처럼 자기 침대를 넘어서는 다리를 싹뚝 잘라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편집과 기획의 승리다. 쪽집게 과외나 요점 정리, 세 문장 요약에 익숙한 한국이 아니었다면 아마 성공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지대넓얕>은 인문학을 꾸준히 접해왔던 사람들에겐 매우 지루한, 그러나 복잡한 건 딱 질색인 사람들에겐 구미가 당길 책이다.


정보는 넘쳐나고 우리는 길을 잃었다. 저자의 말처럼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너무 많아서 뭘 봐야 할지 모른다면 너무 적어서 볼 게 없는 거랑 사실상 마찬가지다. 갈수록 편집과 기획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채사장은 일종의 정제소를 차렸다. 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이것은 데이터(Raw data)혹은 원재료에 불과하다. 이것을 쓸 수 있게 가공해야만 진짜 정보가(information) 된다. 최근엔 여기에 쉽고, 맛있게 라는 목표가 추가되야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집밥 백선생이 뜬 이유를 생각해 보자.


백선생과 채사장의 공통점은 넓은 지식이다. 솔직히 백선생의 가게를 가보면 조미료 범벅의 거지 같은 음식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식에 대한 그의 지식과 깊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 그는 자기가 가진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그저 대중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할 뿐이다. 고객이 원하고 즐거워한다면 일개 엔터테이너에게 그 이상의 책임을 묻기란 어려운 법이다. 나는 백선생의 음식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존경하고 대중 요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존중한다. 채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한 권의 책을 펴낸 인물이다. 아는 것과 쓰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조금만 해봐도 안다. 세상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널리고 깔렸다. 그러나 습득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뭐 어디 대단한 교수도 아니고 인정 받는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온 사람도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눈 높이에 맞춘 책을 쓸 수 있었다.


채사장과 백선생의 차이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을 다음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느냐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백선생의 맛과 방법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새로운 맛, 새로운 방법, 그러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그러나 충분히 의미있고 즐길만한 뭔가를 발견하려 할까? <지대넓얕>은 지금 당장은 비록 넓고 얕은 지식서지만(의도한 대로) 그 속엔 독자를 더 깊은 세계로 안내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한 권으로 편안하게 즐기는 지식 여행서'의 끝에 다음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 그 열쇠를 넣고 돌려보자. 그리고 천천히 문을 밀어보자.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느꼈던 것보다는 확실히 묵직한 무게가 전해져 올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을 필요는 없다. 당신은 이미 발을 담궜으니까. 수심은 차근차근 깊어질 것이다.


한 권의 인문학이 두 번 째 인문학을 부르는 이유는 책장을 덮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물밀듯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머리에 꽂힌 물음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거울을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 때도 존재감을 과시하다 점점 커져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러면 두 번 째 책을 꺼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두 번 째 책의 책장을 덮는 순간 답은 커녕 더 큰 의문이 해일처럼 밀려드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럼 또 다시 세 번 째 책을 꺼내야 한다. 고백하건대 인문학은 답을 알려준다기 보다는 질문을 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상 수 많은 통치자들이 금서 목록을 만들고 철학자를 사형대로 보낸 것이다. 왜냐고? 질문은 권위에 도전하는 용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권력을 무너뜨리는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세계에 한 번 발을 디디면 당신은 셀 수 없이 많은 책들로 둘러싸인 미로를 죽을때 까지 헤매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충고하건대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다면 앞으로도 모르고 사는 것을 추천한다. 행복은 무지에서 온다. 맹세코 비아냥 대는 게 아니다. 무지한 자만이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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