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로큰롤
오쿠다 히데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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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처음이다. 이름은 많이 들어 봤는데, 일본 현대 작가들 중에는 거품이 낀 사람들이 많아 선뜻 찾아볼 마음이 들지 않았었다. 그러다 우연히 신간의 출간 광고를 보게 됐고 두 페이지 쯤 미리 보기 해봤다. 그리고 바로 구매.


훌륭하지 못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도 훌륭한 '에세이'를 쓰는 경우는 자주 있다. 소설과 에세이의 작법 난이도 차이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설은 어렵다. 구성도 있어야 하고 캐릭터도 있어야 하고, 아무튼 겁나 짜증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에세이는 그냥 쓰면 된다. 다소 중구난방 다른 애기가 이어져도 "이 에세이는 참 구성이 엉망이에요"라고 투덜대는 독자는 없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 에세이는 쾌변 같은 것이다. 소설은 변비고. 그래서 하루키는 장편 하나를 쓰는 동안 그토록 많은 에세이를 쏟아내는 것이다. 안 그러면 똥독이 올라 죽어버리거든. 에세이 조차 한 단어 한 단어 바위에 새기듯 힘겹게 밀어 쓰는 사람은 아마 김훈이 유일할 것이다.


<시골에서 로큰롤>은 오쿠다 히데오를 오늘의 오쿠다 히데오로 만들어준 Rock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국가를 막론하고 Rock 음악은 청년기에 앓게 되는 병인 것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웃사이더들이 청년기에 앓는 병이다.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를 알아보고 우리에겐 우리만의 언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엄청 재밌다. 동시에 오쿠다 히데오가 정말 부러웠다. 그는 Rock 음악의 탄생과 중흥기에 청년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일종의 숙주 같은 거다. QUEEN이 전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전에 그들의 라이브 공연을 본 사람이란 말이다. 아웃사이더들은 누구나 알만한 밴드의 누구나 알만한 앨범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명반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고, 그걸 일종의 라이센스로 여기고, 그런 걸 알아보는 자기 자신에 도취하고, 그런 얘기를 관심도 없는 남들에게 해줄 때 자부심과 우쭐함을 느낀다. 그런데도 오쿠다 히데오가 싫지 않은 이유는? 잘난척 쟁이들 특유의 꼰대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Rock Will Never Die라고 외치지 않으면 Rock 음악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던 9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그 음악을 접했다. 그 때 Rock은 온갖 양념이 뿌려져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자극적 음식으로 변해버린 시기였으므로 그 맛을 먼저 본 나는 명반이라는 걸 들어도 "이게 뭐?"하며 오히려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래서 오쿠다 히데오가 알려주는 수 많은 앨범을 직접 들으면 당신도 비슷한 감상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다. 나도 나이를 먹었다.


그러고나니 이제 이 음악들의 맛을 알겠는 거다. 확실히 옛날 음악들은 차분히 앉아 들어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들이 대다수다. 그 때는 음악 감상이라는 것이 실제 '취미'로 존재하던 시대였다. 사무실에 앉아, 출퇴근 길에, 음질도 형편없는 MP3와 차마 형언 할 수 조차 없는 엉터리 이어폰으로 듣는 듯 마는 듯 음악을 흘려 듣던 시절이 아닌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 덕분에 오랜만에 음악의 참맛을 느꼈다. 사 놓고 잘 쓰지 않던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60년대 말에서 70년대 말까지 이어지는 Rock 음악의 본류를 깊숙히 빨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알겠다. 역시 Rock이 최고다.


세상 모든 게 시시해져도, Rock 만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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